모닝페이지로 시작하는 아침 2주 차
일어나자마자 식탁에 앉는다. 비몽사몽 한 상태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노트를 펼친다. 좋아하는 0.38mm 검정 유성펜을 꺼낸다. 어제 '모닝 페이지 12일 차'라고 적어놓은 제목 밑부터 적기 시작한다. 정해진 분량은 2쪽. 그 분량을 채울 때까지 멈추지 않고 글을 쓴다.
요즘 리추얼이라는 말이 눈에 띄게 보인다. 원래는 규칙적인 의식, 의례였는데 요즘에는 스스로 하는 의식적인 연습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다른 말로 하면 지속적인 습관, 루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는 하루를 더 소중하게 만드는 몇 가지 리추얼이 있는데, 최근 한 가지 더 생겼다. 바로 '모닝 페이지'다. 모닝 페이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쓰는 막글이다. 노트에 2쪽 분량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쭉 갈겨쓴다. '아침이다.. 오늘은 어떨까? 이거 해야 하는데,.. 어쩌고 저쩌고' 아무 말이나 쓴다.
이 방법은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창조성을 키우는 훈련법의 핵심 과제 중 하나였다. 책의 처음 50페이지 정도를 읽고 다음날 아침부터 해보기 시작했다. 모든 아침 루틴을 조정할 정도로 나에겐 '모닝 페이지'라는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생각을 쏟아붓는 방법이라니, 해볼 가치가 충분했다.
모닝 페이지라니 아침 일기와 비슷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닝 페이지는 일기와 다르다. 일기는 일종의 사후 기록이다. 하루에 있었던 일이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무언가'를 남기기 위한 기록이다. 굳이 분량을 정하지도 않는다. 아침에 써도 되고 저녁에 써도 상관없다.
모닝페이지는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내가 했던 '막글쓰기'라는 훈련과도 다르다. 막글쓰기라는 판단 중지 연습을 하는 방법도 있는데(이것 역시 효과적이다). 이는 남에게 보여주는 글이라는 것을 전제하되, 판단을 내리지 않고 쭉 쓰는 것이다. 반면, 모닝 페이지는 아무한테 읽히지 않는 생각을 쏟아부어 머리를 비운다. 내 생각이 좋은가? 아닌가?를 고민하지 말고 쏟아 내는 것은 비슷하지만, 막글에겐 독자가 있고, 모닝 페이지에는 없다.
모닝 페이지는 제약이 붙는다. 꼭 아침에 일어나서 써야 한다. 머리가 멍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정해진 페이지 분량을 맞춰야 한다. 매일 써야 한다. 일종의 수련과 같다. 심지어 갈겨쓴 글을 처음 8주 정도는 읽지 말라는 조건까지 있다. 글을 쓰는 내용보다 행위에 더 집중한다. 기계적이긴 느낌도 든다. 쓰다 보면 페이지를 채우기 위한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멈추지 않고 페이지에 빼곡히 그대로 쏟아붓는다. 더 거칠고형식에서 자유로우며, 엉뚱하다. 글은 훨씬 더 뒤죽박죽 쓰지만 룰은 또 있다.
아티스트 웨이에서 소개한 분량은 3쪽이지만, 나의 기준은 2쪽이다. 영어보다 한글이 더 글을 많이 쓰니까, 2페이지도 충분하다는 개인적인 의견이다만. 가끔은 2페이지에서 멈추지 않고 써 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양을 지킨다. 그 정도가 적당하다.
2쪽을 쓰는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이 시간에는 그저 쓰는 행동에 집중한다. 신기하게도 어떤 주제를 생각하고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자유롭다. 글을 못 끝내겠다는 불안감마저도 없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작품을 내걸려고 쓰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 때문이다.
손으로 쓸까? 키보드로 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손으로 써도 되고, 키보드로 쳐도 된다. 중요한 건 방법이 아니다. 생각을 꺼내기 편한 방법을 쓰면 된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30분 정도는 손으로 글을 쓴다. 그 이후의 글은 모두 컴퓨터로 쓴다. 매번 이렇게 반복하지만 나에겐 둘 다 필요한 방법이다. 다만 조금 더 방법에 대한 의미를 나눠보자면 손글씨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글을 더 생각의 흐름에 따라서 쓸 수 있게 도와준다. 타이핑은 쉽게 쓸 수 있는 반면에 쉽게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글을 써 내려가는 와중에도 주변 글을 수정하고 싶은 욕망이 든다. 하지만 볼펜은 한 번쓰면 자국이 남는다. 그리고 오래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제약을 활용해서 맞춤법이나, 구두점 등 심지어 접속사나 이런 글의 형식을 모두 무시하고 생각에만 집중한다. 나는 가끔 쓰려는 생각과 좀 다르게 써지는 경우도 종종 발견한다. 단어를 툭툭 써넣을 때도 있고, 의성어, 의태어가 자리 잡을 때도 있다. 날것 그대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타이핑하는 글은 내 생각의 속도만큼 바로 글을 쓸 수 있고, 수정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무척 좋다. 남에게 보여주는 글은 결국은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도록 써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단숨에 쓰더라도 고치는 작업이 필요하다. 타이핑은 글을 자르고, 붙이고, 지우는데 무척이나 편하다. 그러니 둘 중 어느 한 것이 나은가에 대한 질문은 어떤 글을 더 쓰고 싶은가에 따라 다르다.
자유로운 글을 쓰는데 가로막는 벽은 무엇일까? 아마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것이다. 나 역시 쓰는 글들이 점점 누군가의 의미를 전달하려는 것에 집착하기도 한다. 그러면 더 막막해지고, 끝을 낼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거창하게 쓰려고 하고, 의미 부여에 집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부분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스 모닝페이지는 가치가 있다.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읽어야 할 의미가 없어도 우리는 쓰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아티스트 웨이의 저자는 '창조성 회복을 위한'이라는 부제를 붙였는지도 모른다.
아침에 글을 쓰는 건 생각을 정리하는 의미이기도 하고 무언가 내뱉는 의식이기도 하다. 글쓰기를 명상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아침에 오히 생각의 찌꺼기를 꺼내서 머리를 맑게 하는 느낌을 받은 적도 많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생각하는 행위와 비슷하다. 물론 머릿속에는 하루에도 수만가지의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그걸 글로 쓰지 않는 이상은 계속 떠올랐다 사라지는 실체 없는 것들로만 남는다. 하지만 생각을 잡아 언어로 붙들어 두는 건,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연결점이 되어준다.
글쓰기는 사고를 확장하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이것이 글쓰기를 꾸준히 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니다. 글을 쓰는 게 결국은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 대해서 몰랐던 점을 찾고, 생각을 정리하고, 하나의 마음을 먹게 되는 과정이 글쓰기에 녹아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다. 생각을 어떤 식으로든 꺼내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담아놓는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기진 않는다. 하지만 글로 적어 놓는 순간, 현실에 드러난다.
모닝 페이지는 비우기 위한 리추얼이다. 흔히 글쓰기를 머릿속의 생각을 끄집어내여 정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기보단 오히려 쓰면서 더 생각하고 정리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모닝 페이지를 시작하기로 한 기간은 딱 12주. 3개월 매일 아침 모닝 페이지를 쓸 계획이다. 목적은 단순하다. 더 자유롭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그 시간이 지난 지금, 아마 오늘보다는 더 나은 글을 쓰는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한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