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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May 16. 2021

작가라는 호칭의 무게

  챙겨보는 라이프스타일 잡지가 있었다. 2년 가까이 구독 했었는데, 특히 마음에 오래 남은 몇몇 글이 있었다. 글은 인터뷰이기도 하고, 에세이기도 했는데 글을 쓴 이는 동일했다. 에디터 K님이었다. 왜 그분의 글을 좋아하는지 정확한 감정을 표현하긴 어렵다. 그냥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나중에도 문뜩 기억이 나는 좋은 감정이었다. 그분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눈에 익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이름이 반가웠다. 그래서 다른 글보다 더 아껴서 읽었다.


  몇 년이 지났다. 한동안 그 잡지와 멀어졌다. 아마도 글을 쓰면서였을 것이다. 30년 동안 독자로만 살았었는데,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더해지니, 생각보다 일상에서 빼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잡지도 조금씩 읽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에디터K님도 떠올랐다. 그분은 아직도 그 잡지사에서 글을 쓰고 있을까?하는


  최근에 밀리의 서재에서 그 잡지 역시 서비스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최신호를 다운로드하여 페이지를 넘기며 그 이름을 찾았다. 중간쯤 읽었을까,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그분이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 여전히 글을 여기서 쓰고 계시는구나. 내심 반가웠다.


  최신호에서는 '작가'에 대한 에세이를 쓰셨다. 친구와의 대화로 시작하는 그 글은, 작가의 길을 선택하고 버티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였다. 작가의 꿈을 꿨고, 그 길을 걷고는 있으나(또 에디터로서 글로 돈을 벌고 있지만)작가라고 불리기엔 아직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분의 글을 예전부터 읽어왔었기에 '작가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분은 스스로를 '작가'라는 호칭으로 부르기엔 거대한 벽이 있는 것처럼 느낀것 같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책 출간을 앞에 둔 예비 저자가 되어있었고, 유튜브에서 대본을 담당하는 대본 작가가 되었다. 특히 브런치에서는 글을 쓰는 사람 모두를 작가라고 부르기 때문에, 작가라는 호칭은 더 이상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작가라고 소개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거부감이 들 정도는 아니다.


  문예창작과를 나오지 않았고, 전업도 아니다. 또 쓰고 있는 글 역시 소설이나 시와 같은 창작예술 쪽도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작가라고 여길 수 있다고 느낀지는 꽤 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계속 글을 쓰기 때문이다. 독특하고 대단한 발상의 글을 쓰진 않지만 나는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있지 않으면, 글을 계속 써 내려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답도 없는 내 안의 생각들을 그래도 의미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으면 꺼내기 힘들지 않을까?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읽는 분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쓰는 행위'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나는 작가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책을 낸 사람은 저자라고 부르지만,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은 작가다. 자신의 생각을 담아 글을 쓰는 이들이 모두 작가다.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 써야 할 것이 있어서 쓰는 사람은 모두 작가다. 문학이건, 비문학이건 책을 냈든, 안 냈든 간에 글을 쓰는 사람은 모두 '작가'다.


  누군가에겐 작가라는 호칭이 어려워 보일지도 모른다. 한없이 높은 타이틀 같기도 하다. 전업으로 글에 올인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호칭 또는 대단한 재능을 가진 이를 위한 명칭으로 보이기도 하다. 남다른 상상력으로 글을 풀어내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글을 쓰고 싶다는 내면의 욕망이 있고 그것을 꾸준히 쓸 수 있다면 충분히 작가라고 말이다. 나는 작가님들의 다음 글을 기대한다. 또 어떤 여운을 남겨줄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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