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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Jun 19. 2021

퇴고를 해야 할 때

좋아하는 일이라도 모든 과정을 즐기기란 여간 쉽지 않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퇴고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퇴고를 초고 쓰는 시간보다 더 많이 하는 사람도 있고, 이 과정을 매우 즐기는 이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유형은 아니다. 퇴고보다는 새로운 글을 쓰는 걸 더 좋아한다. 매일 아침 생각을 내려쓰는 모닝 페이지나, 막글 쓰기를 통해 꺼내어 놓는 글쓰기에 더 시간을 내는 편이다. 아직 글을 쓰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좋아하는데 퇴고는 싫다. 뭐 이런 이중적인 마음이다. 


물론 퇴고를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다. 한번 읽어보고 문장이 너무 길면  자르거나, '사실', '그저'와 같은 나의 글 버릇이 남발되면 삭제한다. 나름 몇 가지 퇴고 기준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고민하거나 단어를 바꾸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퇴고 시간도 20분 이상 쓰지 않는 편이다. 그렇기에 오타를 나중에 발견하는 경우도 참 많다. 오히려 자기 검열을 하지 않는 연습을 계속하기에 나타나는 부작용일 수도 있다. 많이 쓰면 더 좋은 글을 쓸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미뤄놓은 설거지처럼 되도록이면 퇴고를 미루고 싶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순간 역시 있다. 퇴고가 필요한 때다. 출판사에서 책의 본문 디자인을 보내주고 피드백을 요청한 것이다. 일주일 동안은 퇴고에만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책은 글이 종이로 프린트된다. 블로그와 브런치와 같이 웹상에 올려놓은 글이라면 언제든 수정할 수 있지만, 종이로 찍어내는 순간, 고칠 수가 없다.  가끔 다른 책의 오타를 발견하면 웃고 넘어가지만, 내 책은 또 다른 이야기지 않은가.


책의 형태로 만져진 초고를 다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나의 글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헤밍웨이가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말한 이유를 뼈저리게 알았다. 처음부터 좀 더 수정하고 글을 보낼걸..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대로 출간되었다간 몇 번의 이불 킥은 예약 확정이었다.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해지는 글들이었으니까 말이다. 내용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어설픈 문장 구조와 단어 선택 등을 그냥 흘려보낼 순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는 마음이 강력하게 들었고 곧장 스케줄표를 만들었다. 전체가 300 페이지 정도이니 하루에 150페이지 정도 수정을 하자. 그러면 4번 정도는 퇴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백하자면 퇴고의 과정은 전혀 만만하지 않았다. 좌절의 연속이었다. 왜 이런 단어를 쓴 거야? 문단은 왜 이래? 문맥상 전혀 맞지 않은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페이지마다 들었다. 불필요한 문장은 삭제했다. 디테일한 예시가 필요한 부분은 좀 더 추가했다. 단어가 더 적당한 것이 없는지 사전을 뒤졌다. 내가 인용한 사례가 확실한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하지만 여전히 허점 투성이었고 4번 정도 다시 읽어도 고칠 것은 계속 보였다. 물론 나도 잘 안다. 완벽하게 완성된 책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도 보통 내가 읽는 책의 기준은 맞추고 싶었다. 내가 주어진 시간 동안은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도 들었다. 퇴고에 이렇게 진심인 건 이번이 처음 아니었을까?


초고를 쓸 때는 나 조차도 어떤 글이 나올지 잘 모르니, 기대하며 쓰는 맛이 있다. 하지만 퇴고는 이미 나와있는 글을 자신만의 기준으로 고치는 작업의 연속이다. 정답은 없고 감각에 의존해 이리저리 수정한다. 퍼즐 맞추기와 비슷하다. 이리 맞춰보고 저리 맞춰본다. 처음에는 어떤 모양이 나올지 모르지만, 맞추다 보면 좀 더 나은 형태가 드러난다. 


그나마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고친 글이 예전 글보다 났다는 사실이다. 퇴고를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실감할 수 있는 정도다. 예전 글보다 다음 글은 좀 더 괜찮았다. 몇 번을 수정하고나면 눈으로 빠르게 읽어도 괜찮을 정도다. 


아무튼, 목표로 했던 기한을 맞췄고 다시 출판사에 퇴고본을 보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모든 과정을 즐기기란 여간 쉽지 않다.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아티스트는 우리가 보지 못한 시간에 수없이 연습을 반복한다. 멋진 강의를 하기 위해 강사는 수많은 자료를 조사하며 밤을 새운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하더라도 그 과정이 다 편하고 즐겁진 않을 것이다.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시간도 있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나에게 퇴고도 그런 일이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글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꺼내어놓고 고치는 작업 또한 필요하다. 질릴 때까지 반복해야 할 때도 있어야 한다. 


퇴고를 하는 기간 동안 나는 전보다 문장을 더 잘 고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을 것이다. 성장했으면 좋겠다. 물론 처음부터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더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시기 역시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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