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은 상업지구다. 지식산업센터와 오피스텔이 대부분이다. 길가를 조금 벗어나면 아파트 단지들도 있지만 내가 걷는 길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8차선 옆이다.
10분 정도 길을 걷다 보면 공터가 나온다. 적어도 큰 오피스텔 건물 3채는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터다. 사람 머리보다 높은 길이의 얇은 철벽이 공터를 둘렀다. 철벽 위로 자란 나무들이 보인다. 주변이 모두 새롭게 바뀔 때도 그곳만 벽으로 꽁꽁 쌓여있다.
무심하게 방치된 그 빈 공간이 문득 궁금해졌다.
그곳의 주인은 누굴까. 상상을 해본다. 우선은 조상님이 물려준 땅을 지키는 늙은 노인이다. 대대손손 보존한 땅을 건설사에게 넘기지 않으려 막아선다. 건설사 사람들이 와서 매번 달콤한 말로 협상을 시도하지만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하지만 늙은 노인은 그 땅을 지킬 힘 또한 없다. 그래서 얇은 철벽을 혼자 세운다. 그렇게 공터로 남겨놓는다.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기 위해서.
또 다른 상상은 이거다. 야심 많고 젊은 사업가의 이야기. 그는 자신의 힘으로 큰 건물을 세워보고자 땅을 샀다. 하지만 사업이 갑자기 기울더니 결국에 파산하고 만다. 무리한 대출로 구입한 터라 이자를 감당할 길이 없어 종적을 감춘다. 그 땅은 경매로 넘어갔다. 공터는 새 주인을 못 만나 비워진 상태다.
마지막 상상은 처음부터 주인이 없는 땅인 것이다. 소유한 자를 수소문해도 찾을 수가 없다. 이름은 있지만 그 땅을 찾지 않는다. 어쩌면 자신이 모르는 사이 상속받은 땅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름 모를 늙은 자산가를 우연히 도와주고 땅을 물려받았지만 모르는..
너무 터무니없는 상상인가?
또 다른 이야기를 떠올리려 했지만 벌써 다 왔다.
지하철역이다.
사실 난 그 공터에 주인이 없었으면 좋겠다.
있더라도 주인이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다.
여름에 초록빛이 가득한 나무를 멀리서
계속 봤으면 좋겠다.
회색빛 건물과 유리창으로 빼곡한 그곳에
숨통 하나 트인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