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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Apr 02. 2020

혼자 떠나보기

시작은 한 권의 책





지구별 여행자



나는 여행이 좋았다. 삶이 좋았다. 내 정신은 여행길 위에서 망고열매처럼 익어갔다. 내가 다녀야 할 학교는 세상의 다른 곳에 있었다. 교실은 다른 장소에 있었다. 보리수나무 밑이 그곳이고, 기차역이 그곳이고, 북적대는 신전과 사원이 그곳이었다. 사기꾼과 성자와 걸인, 그리고 동료 여행자들이 나의 스승이었다. 여행을 떠날 때는 따로 책을 들고 갈 필요가 없었다. 세상이 곧 책이었다. 기차 안이 소설책이고, 버스 지붕과 들판과 외딴 마을은 시집이었다. 그 책을 나는 읽었다. 책장을 넘기면 언제나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그것은 시간과 풍경으로 인쇄되고, 아름다움과 기쁨과 슬픔 같은 것들로 제본된 책이었다. 나는 그것을 읽는 것이 좋았다. 그것에 얼굴을 묻고 잠을 드는 것이 좋았다.


류시화 시인의 인도 여행 수필집 <지구별 여행자>의 내용이다.


 이 책을 읽은 뒤 나는 곧바로 인도행 비행기 티켓을 샀다. 내 나이 23살 때다. 한 달 뒤 교환학생으로 일본 규슈에 갈 예정이었다. 일본의 새 학기는 4월부터 시작해서 남들보다 겨울방학이 1개월 길었다. 나는 그 시간의 공백에 특별한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 해는 운 좋게도 돈을 열심히 모았다. 대학 4년 동안의 용돈을 조금씩 모은 것에 평일, 주말 알바를 가득 채워 일하니 400만 원이라는 거금이 생겼다. 그때 남은 한 달을 고민하다 이 책을 만난 것이다.


 친구들은 유럽여행을 다녀오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가기가 싫었다. 남들이 하면 하기 싫은 청개구리 기질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역시 혼자 가기엔 불안했다. 페이스북의 친구들에게 “ 인도 같이 여행 갈 사람?”이라고 올려봤지만 아무도 갈 사람이 없었다. 다들 '대단하다. 잘 다녀와'라는 안부 댓글만 올라왔다. 그냥 혼자 가야 했다. 생각해보니 인도는 쉽게 가 볼 곳은 아니었다. 걱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비행기 표는 이미 발권했고 일주일이 남았다.


출발하기 3일 전 가이드북이 도착했다. 지도에 자를 대고 북쪽의 도시들을 이었다. 가이드북을 처음페이지부터 설렁설렁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다 분철했다. 들고 다니기엔 두꺼웠기 때문에 한 지역의 여행이 끝나면 버리자는 생각에서였다. 나중에 후회할 일이었음을 그땐 몰랐다.


티켓은 가장 싼 것을 구입했다. 70만 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다. 유일한 단점은 심야에 도착한다 것이다. 첫 배낭여행지에 나 혼자 공항에 덩그러니 떨어지는 건 무서웠다. 한 카페 사이트에서 숙박이 연계된 픽업 서비스를 신청했다. 14만 원짜리 비싸고 예쁜 가방을 샀다. 가방 안에 카메라와 노트, 가이드북 그리고 500달러를 차곡차곡 넣었다. 들고 가는 옷이라곤 입은 옷 한 벌과 여벌의 속옷이 전부였고 더운 나라에 간 나는 기후도 잘 몰라 평소에 신고 다니는 워커를 그대로 신었다.







알 이즈 웰

All is well



에어인디아를 타고 인도로 향했다.  7시간의 긴 여행은 처음이라 가이드북을 읽고 나니 심심해졌다.

처음으로 인도 영화를 봤다. 기내에서 지루함을 달래고자 본 영화의 이름은 "세 얼간이: 3 idiots "이다.


인도에는 발리우드라 불리는 거대 영화 산업이 있다는 말을 어렴풋이 생각해냈다. 뜬금없이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데 스토리가 참 좋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며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 마지막엔 혼자 감동받아 훌쩍이었다.


알 이즈 웰  (All is well)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라는 뜻의 인도식 표현이다. 여행하는 내내 세 얼간이라는 명대사가 계속 마음속에 남았다. 내 생의 첫 배낭여행도 그럴 것이다 되뇌었다.


알 이즈 웰

알 이즈 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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