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면 2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
나는 가끔 우스갯소리로 기존 격언을 바꿔 말한다.
행복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
조금 웃픈 이야기지만,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자신의 행복을 말하면 그것이 더 기쁨이 되기보다는 질투로 돌아오는 경우 말이다. 반대로 남의 행복을 보면 기쁨보단 질투가 난다. SNS의 피드에는 사람들의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담겨있다.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다. 덕분에 나보다 더 잘난 사람들밖에 없는 공간에 홀로 남겨진 느낌. 내 안에는 공허함이 찾아온다.
시기와 질투는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이다. 누군가보다 뒤처졌다고 느낄 때, 자신이 생각만큼 드러나지 못했을 때 우리는 질투심을 느낀다. 특히 나보다 비슷하다고 생각한 이가 갑자기 더 잘될 때 시기는 더 심해진다. 도대체? 왜?라고 생각하며 짜증이 밀려오고 괜스레 기분이 나빠진다. 질투는 열등감과 세트라서 그 일에 대한 화살은 나에게로 돌아온다. 내가 뭐가 부족해서 나는 잘 안되는 걸까?라는 생각에 우울감까지 온다.
질투의 대상은 라이프스타일뿐만이 아니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듯, 소유의 시대에선 우리는 모르는 사이 대부분의 것들에 경쟁의식을 가진다. 특히 성공에 관련해서는 더하다. 누군가의 행복인 누군가에겐 불행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마치 내 몫을 빼앗어가는 느낌까지 들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예쁜 외모나 고급 레스토랑, 해외여행이라면 차라리 아무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 출판 계약을 했다. 같은 나이에 수십억의 자산가가 되었다. 더 유명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질투가 흘러넘친다. 괜히 지금 뭐 하고 있나 자책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고개를 빼꼼 내밀기도 한다.
하지만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질투는 결핍의 한 증거이기도 하다.
이 결핍을 이용하는 것은 어떨까?
성공의 가장 큰 추진력 중 하나는 '결핍'이다. 결핍은 '지금 자신의 상황'과 '원하는 상황'과의 간극이다. 가난이 싫어서 자수성가한 이들은 그들의 결핍이 큰 원동력이 되어 성공을 이끌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에서 결핍을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질투 역시 부족함에서 나오는 감정이다.
이 질투를 이용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질투하지 말자. 질투는 나쁜 것이야'라는 생각보다는 질투가 나면 어떻게 행동할까? 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보통 시기하기 시작하면 그 상황에 고개를 돌린다. 잘난 모습이 보기 싫어서 왜 성공했는지에 대한 비결 또한 보고 싶지 않아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자. 나보다 더 나은 모습에는 다 이유가 있다. 더 많은 노력을 했다던지, 시도를 했다던지, 노하우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싫은 감정을 조금만 버리고, 내가 더 배울 수 있는 것이 왔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 반응하지 말고 대응은 다르다
이런 생각은 정말 효과가 있었다. 최근에 부러움에 몸서리쳤던 이의 강의를 들었다. 비슷한 나이에 성공한 그의 노하우를 심도 있게 배웠고, 나와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단순히 질투에서 외면했다면 영원히 알 수 없었던 지식이었다. 질투를 시그널로 삼으니 이제는 질투심이 느껴지면 재미있게도 '아, 내가 배울게 하나 더 있나 보군'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질투를 이용하자.
이 질투를 순간의 짜증으로만 남길 것인지
아니면 배울 점을 찾을 것인지는 자신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