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서 피어나는 꽃
상처의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
상처가 나면 아물기 위해 딱지가 앉는다. 완전히 나을 때까지 그 주변은 가렵고 손이 자꾸 간다. 괜히 긁었다간 딱지가 벗겨지고 피가 나며 상처는 더 깊어진다. 건드리지 않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최선이다.
마음속의 상처는 어떨까. 마데카솔을 바를 수도, 밴드도 붙일 수 없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옅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떤 상처는 너무 깊어 시간이 더해지면 곪을 수도 있다.
유수경 작가의 『상처의 쓸모』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겪으며 불안이라는 트라우마 속에서 요동치던 삶을 담담히 기록한 책이다. 폭력은 소리와 냄새, 차가운 온도로 남아 어른이 된 후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로 작가를 따라다닌다. 이 책은 그 그림자를 어떻게 포개고 견디며 버텨왔는지에 대한 고백에 가깝다.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버지의 횡포에도 가정을 붙들고자 했던 어머니, 그리고 그 곁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맏딸로서의 죄책감은 연민을 자극한다. 작가는 아버지의 폭력이 사라지면 삶이 평온해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폭력의 현장이 멎은 자리에는 우울, 두려움, 자기 파괴라는 감정의 흔들림이 남는다. 한 번 잦아든 듯 보이다가도 곧 새로운 파도가 들이치는 것처럼.
이 책이 아름다운 이유는 상처의 쓰라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도 삶을 다시 꾸려갈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어린 시절의 공포와 두려움은 여전히 작가 안에 남아 있지만, 그는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고 아들을 키우며 회복과 치유의 여정으로 나아간다. 폭력의 잔해를 끊어내는 일, 사랑을 다시 배우는 일, 자신을 믿어보는 일은 그의 삶에서 천천히 자라난 변화의 징후들이다. 상처가 여전히 아프지만 더 이상 자신을 휘두르지 못한다는 사실, 아마 ‘상처의 쓸모’ 일 것이다.
“누군가의 퍽퍽하고 고단한 삶을 다정한 마음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스러져가는 그의 하루를 살려내는 일이었을 것이다.”(p.85)
"나를 지지해주고 있었다. 그게 무엇이든 그럴 만했다고, 그게 맞다고 편 들어주었다. 내 편에 서서 내가 무너진 마음을 다시 쌓아 올릴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었다. 질책도 추궁도 아닌 그저 온전히 끌어안아주는 마음뿐이라는 걸." (P.129)
어머니 옆에서 손을 잡아주던 수녀님, 못난 행동을 해도 그럴 만했다고 감싸주던 태권도 관장님, 묵묵히 정성을 쏟은 뽀뽀의 아빠인 남편은, 폭력의 시간 속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방식’을 보여주는 존재였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아도 우리는 달라질 수 있다고, 상처에서 더 깊은 연민과 더 넓은 시야가 자라날 수 있다고 이 책은 담담하게 증명하고 있다.
유수경 『상처의 쓸모』(책과 이음,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