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약국

잔소리로 이어진 사랑의 처방전

by 유연


영화 저널리스트 김혜선의 『잔소리 약국』은 51년 차 약사인 엄마와 17년 차 프리랜서 딸이 함께한 동거 일기를 담고 있다. 오랫동안 각자의 삶을 살아오던 두 사람은 엄마의 고관절 수술을 계기로 한집에 살게 된다. 하지만 모녀의 동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침 식탁을 차리고, 엄마의 점심 도시락을 싸고, 아픈 엄마를 돌보는 일상은 딸에게 낯선 부담으로 다가온다. 반면 엄마는 여전히 일터를 놓지 못하고, 잔소리를 통해 딸의 삶에 개입한다. 서로를 걱정하면서도 부딪히고, 사랑하면서도 상처 주는 모녀의 이야기가 이 책의 중심에 있다.

저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는다. 잔소리와 다툼으로 뒤섞인 일상이야말로 서로를 가장 깊이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엄마의 잔소리는 간섭이기보다는 서로를 염려하는 마음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알게 된다.

읽는 내내 나 역시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와 나는 손발이 척척 맞는 사이는 아니다. 엄마는 내가 하는 일마다 어설프다며 미덥지 않아 했다. 찬찬하긴 하지만 꼼지락거리며 서둘러하지 못한다고 자주 혼났다. 첫째 여동생은 엄마를 닮았다고 예뻐하고, 둘째는 무슨 일이든 빠릿빠릿하게 해내서 귀염 받았다. 막내 남동생은 아들이니 당연히 최고다. 나는 부모님께 불효라면 불효일 수 있는 일을 한 입장이라 큰소리를 낼 처지가 못 된다. 어릴 땐 엄마의 억척스러움이 싫었다. 그래서인지 부드러운 아빠가 좋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그 억척스러움이 우리 네 남매를 공부시키고 살림을 일궈온 힘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아빠의 항암과 수술이 있은 지 꼭 1년 만에 회복이 잘 되고 있다는 검진 결과를 받았다. 엄마와 통화하다가 아빠가 이렇게 나아진 건 엄마의 보살핌 덕분이라고 말했다.
“고마와여. 아이구 고맙다야.”
예상하지 못했던 인사에 나는 울컥했다. 잔소리보다 부드러운 그 목소리가 낯설고, 그래서 더 아팠다.

『잔소리 약국』의 모녀 동거는 3년이 채 되지 않아 끝이 났다. 늘 옆에서 잔소리해 주면 좋으련만, 시간은 언제나 우리 편이 아니다. 저자도 종종 엄마의 잔소리가 눈물 나게 그립겠지.
나도 엄마에게 오래 혼나고 싶다. 그런 것도 제대로 못 하냐며 핀잔을 들어도 괜찮다. 씩씩하고 억척스러운 엄마의 잔소리를 오래도록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따뜻한 약이니까.

김혜선 『잔소리 약국』 (도마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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