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낙원인 곳으로

죽음 1부

by 윤 음배


시은아 원하는 곳으로. 네게 낙원인 곳으로. 꼭 그리로 가


너 잘 쉬라 보내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좋은 마음으로 인정하고 가벼이 웃으면 될 일이 이렇게나 어렵다. 너 떠나기 바로 전날 안락한 집 안에서 딸기를 씻어 먹다 받은 동생 승연 씨의 연락 뒤에 서둘러한 일은, 우리 나눈 대화방을 꼼꼼히 훑어보는 일. 캡처하는 일. 꼭꼭 남겨두는 일이었어. 무한하고 견고한 지지로 가득한 너의 카톡을 보면서, 이걸 잃는다는 건, 잃어버린다는 건 정말 끔찍하게 싫단 생각을 반복했어.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니. 내가 노래할 때에도 꽃을 할 때에도 글을 쓸 때에도 어째서 너는 좋아하고 응원하기만 할 수 있었니. 그래본 적 없는 마음이라 더 선명해서, 허울뿐이 아닌 지지임을 너무 잘 알아서 더 고맙고 미안해.


네가 좋다면 써야지. 계속 써야지. 쓰는 사람으로 살아야지. 확신 없던 쓰는 삶에 네가 준 게 사명감이라면 초콜릿보다 달게 써야지.


너는 내가 왜 좋았니.

나는 네가 예뻐서 좋았는데. 날 좋아해서 좋았어. 꽃을 좋아해서 좋았고 책을 좋아해서 좋았어. 같이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좋았어. 아마 분명 더 있을 텐데. 무척이나 많은 텐데. 이게 다는 절대 아니야.

아, 시은아. 말을 하지 않아도 너는 다 알까? 몸을 떠나 날아오른 영혼에겐, 너에겐, 그런 능력이 생기기도 하는 걸까? 내 마음을 꼭 알아줬음 좋겠다. 난 정말, 넌 정말... 좋아할 이유가 차고 넘쳐서 지금껏 내가 보낸 애정은 죄가 될 만큼 모자란 것이었다는 걸. 후회하고 막막한 이 내 마음을 네가 다 들여다보고 있다면 좋겠다.


마지막 인사란 얘기에 삼성병원으로 운전하는 길, 달리는 차 핸들을 있는 힘껏 쥐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지. 내뱉는 말도 피어오르는 마음도 마지막만은 담지 말아야지. 버틸 수 있다고 얘기해야지. 금방 또 기운 차릴 거라고 속삭여야지. 몇 번이고 무너지다 일어섰을지 모를 너와 네 가족들 앞에서 주제넘게 부서지진 말아야지.


그리고 들어선 병실, 너 혼자만 뉘인 관찰실. 얇고 말라 노오랗게 부은 네 손목 여기저기 찔렸다 빠진 바늘 자국. 반쯤 뜬 눈으로 의식을 잃어버린 너의 길다 만 머리카락. 가래가 끓어 힘겹게 들이쉬는 위태로운 호흡. 비뚜름 꺾인 고개. 반대 손에 쥐어진 나무로 된 성모 상. 무력하기만 한 모습. 네게만은 쓰고 싶지 않았던 몰골이라는 낱말. 할 수 있는 거라곤 마음먹는 일과 그걸 전하는 일뿐이었는데 그 쉬운 일조차 허락하지 않는 죽음의 그림자는 얼마나 거대하던지. 아, 마지막이 맞구나. 너는 날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고, 어쩌면 듣지도 못하고. 떠나겠구나. 세상에서 멸종하려는 거구나. 다짐 같은 건 아무 소용이 없겠네.


그럴 수밖에 없었어. 누구는 너무 쉬워 인식도 하지 못하는 숨 마저 힘겹게 쉬는 참담한 모습에 다른 희망은 떠올릴 수 없었어. 차마 네 앞에서는 부들부들 떨며 울고 싶지 않아서 주차 정산하는 기계 앞에 나와 숨도 못 쉬고 울었어. 제대로 해 낸 게 없어서 미안해.


3일 동안의 인사를 마치고 쪼그려 앉아 인사하면 딱일 4호실 288호에 안치된 너를 잘 확인하고, 언제 마지막으로 그었는지 모를 성호를 그으며 안식을 기도하고, 장례 첫째 날 아침 부랴부랴 시장에 들러 네가 좋아하던 꽃을 찾아 미친 사람처럼 누비고, 결국 못 찾은 스위트피에 내가 좋아한다 하니 함께 좋아해 주던 은방울 꽃을 웃돈 주고 데려와 영정 앞에 꽂아뒀어. 야 시은아. 은방울 꽃 무지하게 비싸더라. 너 잘 알지? 덕분에 제일 좋아하는 꽃인데도 한 번을 못 사본 귀한 꽃을 세 단이나 사 봤다. 은방울꽃을 좋아하는 건 난데 잘 잡아 꽃병에 꽂아두고 보니 이건 꼭 널 닮았더라. 연약하지만 향기로운. 선하고도 아름다운.


이제 다 끝났나. 보고 싶은 사람은 다 봤니? 너무 춥거나 뜨겁진 않았던 거지. 다들 네가 많이 보고 싶을 거래.


세상은 언제나 가혹하고 거칠기만 한 것 같은데. 병마와 싸우면서도 재미있는 일이라면 빠지지 않고 챙기던 너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게 산더미 같겠지. 세상이 가혹하고 힘든 건 맞는데 재밌는 것도 너무 많다며 샤인머스캣 맛이 나는 것 같은 전자담배를 피우면서 대답했겠지. 아, 영영 이렇게 눈앞에 선했음 좋겠어. 가장 좋은 방법은 나처럼 살다가 길이 막힐 때 너처럼 살아보는 거겠지. 그게 가장 좋겠다. 그게 맞겠어.


해 줄 수 있는 말은 시은아. 왜 달리 없을까. 너는 잘하는 게 많은 아이이고 알아서 하는 것도 잘하는 아이라. 그래서 그런가 보다. 그러니까 시은아. 잘 있을게. 우리 다 잘 있을게. 계속해서 쓰도록 할게. 잘해 내 볼게. 달릴 수만 있다면, 가장 예쁠 때의 모습으로 어디든 다녀갈 수 있다면 시은아, 원하는 곳으로. 네게 낙원인 곳으로.

꼭 그리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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