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정말 죽었을까?

죽음 2부

by 윤 음배


[자랑을 힘으로 사는 사람, 당신도 곧 죽겠지. 자랑이 다 사라진 지 오랜데 과거의 영광을 꾸역꾸역 가져다 미움받으며 연명하는 당신이 미웠다······(생략)]



미운 당신도 언젠간 죽겠지라며 삶 전반을 두드리던 할아버지가 죽었다. '별세하셨다.'라고 쓰는 편이 바람직하겠다만, 어쩐지 할아버지 뒤엔 '죽었다.'란 동사를 쓰고 싶다. 이 안엔 미움이 들어있지 않다. 나의 할아버지에겐 그 편이 어울렸다. 강렬한 사람이었다.


12월 11일 사깨밤이 무사히 업로드되던 날 밤, 동생과 휴대폰으로 통화하며 게임을 하고 있던 밤. 웬일로 늦은 시간에 고모한테서 전화가 울렸다. 게임이 한창이라 바로 받지 못했다. 뒤늦게 다시 걸어 받은 고모의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었다. 호흡이 한껏 떠 흥분한 목소리로 고모가 말했다.


"할아버지가 쓰러지셨어!"


다들 자러 들어간 참에 혼자 쓰러지신 것 같다며 숨은 헐떡이시는데 의식이 없다는 말을 빠르게 반복했다. 놀란 나는 119를 불렀느냐 질문했다. 지금 오고 있다며 고모가 조금씩 울먹였다. 네 아빠가 전화를 안 받는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일단 바로 갈 테니 할아버지 상황 계속 주시하라 내뱉고 동생에게 전활 걸었다.


"나야. 할아버지 쓰러지셨대. 아빠가 전화를 안 받는댄다. 자고 있나 봐. 너 당장 아빠한테 가서 아빠부터 깨워. 가는 길에 계속 전화 걸어봐. 난 공덕동 가 볼 테니까."



주차된 차에 시동을 켜고 서둘러 액셀을 밟던 나는 생각했다. 단순한 해프닝일 거라고. 할아버지가 벌써 돌아가신다는 건 상상이 가지 않았다. 120살까지 살 거란 호언장담에 정말로 그리 오래 사실까 봐 걱정한 적은 있어도. 오른쪽 창 너머로 여의도의 야경과 새카만 한강이 지나쳤다. 집에서 나오기 전 삼촌에게 전활 걸었다. 여의도 근방에서 회식 중이던 삼촌도 택시를 타고 할아버지께 가겠다 일렀다. 연말 모임이 많아서인지 늦은 시각인데도 불구하고 도로에 차가 많아 정체가 계속 됐다. 정신이 없을 고모는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이미 앰뷸런스가 할아버지를 싣고 응급실로 향했을 거란 생각에 목적지가 불분명해졌다. 동생은 여전히 아빠를 깨우러 가고 있고, 다시 한번 삼촌에게 전화했다.


"삼촌, 어디쯤이세요? 고모가 정신이 없는지 전화를 안 받아요."

"윤음아 할아버지 돌아가셨대."

전화 소리 너머 침울히 가라앉은 삼촌의 목소리가 느껴졌다.

"삼촌이 고모랑 방금 통화했어. 할아버지 돌아가셨대."

"정말로?"

"그런 것 같다. 삼촌도 공덕 거의 다 왔어. 가서 보자."


정말로? 정말 할아버지가 죽었을까? 아닐 것 같았다. 하얀색 유광 타일이 깔린 거실 바닥에 반듯이 누워 노오랗게 변해 시체의 그것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기 전 까진 그랬다. 경찰 두 사람이 부엌에 서서 무전을 하고 있었다. 고모는 죽은 할아버지 옆에 앉아 통화 중이었다. 소파엔 할머니가 앉아있었다. 차마 할아버지 가까이에 설 생각은 못 하고 뒤 돌아 동생에게 전활 걸었다. 때마침 본가에 도착한 동생이 아빠를 흔들어 깨웠다. 동생이 잔뜩 울먹이며 슬픈 소식을 전했다.


"아빠, 아빠아... 일어나 봐. 할아버지 돌아가셨대..."

잠결에 놀라 잠긴 목소리로 "뭐?" 하고 깨어난 듯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아팠다. 아빠는 근 몇 년을 효도하다 할아버지의 강퍅함에 화가 나 6개월 가까이 공덕동에 발길을 끊었다. 할아버지께 보인 마지막 모습이 바로 다시 보지 않겠다는 따가운 목소리와 얼굴이었다.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채 가슴에 한이 될 일이었다. 아빠 가슴에 흉흉히 꽂혀버릴 대못이 무서워 눈물이 났다. 그제야 눈물이 났다. 가엾은 아빠가 느껴져 눈물이 났다.





파출소 소재 경찰이 돌아가고, 형사가 들어오고, 뒤이어 삼촌과 오빠가 도착했다. 두 사람 다 할아버지를 보고 울었다. 오빠는 입을 틀어막고 주저앉아 울었다. 삼촌은 할아버지 가까이로 가 얼굴을 매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그리 정정하시던 양반이 왜... 어쩌다. 왜 여기 누워서 계셔요..."


고모가 옆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소파 위 할머니의 눈은 흐리멍덩 총기를 잃은 듯했다. 형사는 울지 않는 내게 조용히 말을 전했다. 댁에서 돌아가신 터라 검안의와 국과수가 방문해야 하고, 그 절차가 끝나야만 할아버지를 영안실에 모실 수 있다는 안내였다. 네. 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들이 와 어수선해지기 전에 아빠도 어서 도착해 저기 있는 삼촌과 고모처럼 마지막 인사를 마치길 바랐다. 바람의 힘이 너무 미약했던 걸까. 아빠와 동생 서현이는 맨 마지막에 도착했다. 검안의와 형사가 할아버지 옷을 벗겨야 하니 남자 어른을 제외하곤 방에 들어가라 일렀다. 아빠는 강하게 인상만을 썼다. 울지 않았다. 장례식과 화장터를 고민하며 전화기를 쥐고 놓지 않았다. "난 장남이니까 그래."라고 되뇌었다.


바깥에서 검안을 마친 이들이 할아버지에게 흰 천을 덮었다. 그 모습을 본 고모가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 검안의는 아빠와 삼촌에게, 노령이시고 지병도 있으셨으니, 그렇게 처리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모두 떠났다. 드라마에서 보던 엄숙한 사망신고 같은 건 없었다. 얼굴 끝까지 덮인 천을 가족 중 누군가 끌러내려 이불처럼 덮어드렸다. "꼭 자는 것 같다." 할머니가 말했다. 그제야 가까이 다가가 할아버지 손을 꺼내 잡았다. 차갑지 않았다. 아까 봤을 땐 사람이 너무 샛노래 이상하고 무서웠는데, 할머니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자는 것 같았다. 입을 우아- 하고 벌리고 잘 주무시는 것 같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왼쪽 귀에다 대고 작게 이야기했다.


"고생하셨어요. 할아버지. 미워해서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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