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에 쓰는 글
암울하고 잔혹했던 일제강점기 시대는 내가 몸소 겪은 시대는 아니지만, 독립운동의 역사를 통해 민족이 어떤 아픔을 겪었는지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역사를 거울삼아, 지금의 내가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물을 수 있다.
청년 시인 윤동주의 시가, 내게 그 질문에 대한 답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서시(1941)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가 쓰이던 때는 일본 제국주의의 야망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중국을 침략하여 무자비한 약탈을 일삼고, 더 넓게 확장하기 위해 조선을 일제의 후방기지로 삼았다.
때문에 조선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들었다. 창씨개명 강요, 조선어 교육 금지, 신사참배 강요, 강제징용 등 조선의 주인 행세를 하며 국민의 삶을 압박하여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려 했다. 힘이 없어 당해야만 했던 비참한 시대를 역사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완전히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일본 전시체제에 동원되고 있었고, 일본은 동아시아뿐 아니라 미국 진주만 공습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였다. 그해가, 윤동주 시인이 ‘서시’를 쓴 1941년이었다.
폭력의 시대에 여린 감수성으로 저항하던 청년 시인 윤동주의 영혼이 '서시'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시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간신히 불씨를 붙들고 있는 촛불과도 같았다. 그러나 그 떨리는 불씨마저 꺼뜨려 버렸다.
일본 제국주의는 단순히 우리의 것을 빼앗은 데에 그치지 않은, 영혼의 약탈자였다. 윤동주 시인은 자신의 영혼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몸이 파리해지도록 읽고 쓰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십자가(1941)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조선인 학생에 대한 탄압이 극심해지던 무렵, 그는 끝까지 폭력에 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듯 시를 토해냈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 앞에 서 있는 그는, 자신의 영혼을 신에게 맡겼다.
1943년 7월, 일본 도시샤 대학생 윤동주 청년은 교토에서 체포되었고, 1945년 2월 16일 형무소에서 27세의 눈을 감았다.
시인 윤동주의 삶을 감히 다 알 수는 없지만,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럼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한 그의 열망 한 조각이라도 내 영혼에 깃들기를 바란다.
죽어 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가시나무와 같아서 그들의 쉴 곳이 없을지라도,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죽어 가는 것들을 품을 수 있는 품을 넓히고 싶다.
2026년 3월 1일, 윤동주 시인이 남긴 발자국에 감히 내 발을 맞춰 보며, 그가 가리킨 곳, 그 십자가가 내 뿌연 시야에 들어올 수 있도록 눈을 비벼 초점을 맞춰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