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하면서 찾아온 신앙 사춘기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행복과 감사함을 느끼지만, 늘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 부모와의 기억들이다. 특히 매일 우울해하던 어머니의 표정은 아마 평생토록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어머니의 입가에 미소를 띠게 하려면 어떠한 상황과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지 어릴 적부터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 미소는 나라는 존재와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어머니는 항상 내게 너무 쉽게 뭔가를 요구하고 기대했다. 어머니는 늘 옳았고, 나는 늘 따라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 버렸다. 그게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이 때문에 나는 기독교 문화를 심하게 오해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신앙이 가장 온전하고 뜨거운 것인 줄 알았다. 심지어 아버지보다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묻지 못했다. 어머니의 신앙이 정말 모두에게 추앙받아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묻고 따지지 않은 채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첫째를 낳고서야 ‘때’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심한 신앙 사춘기를 겪었다. 부모가 내게 물려준 신앙의 유산이 무엇일까, 때 늦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마음을 너무 외면하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생각과 무슨 느낌을 가지고 사는지조차 모르는 어둠이 내 삶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예수님은 대체 누구며, 부모님이 믿는 신은 대체 누굴까? 나는 무엇을 쫓으며 여기까지 온 걸까?
안타깝게도 주변에 멘토가 되어 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부목사였던 남편을 따라온 낯선 교회 사람들을 만나면 썰렁한 냉기에 온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편하게 내 사정을 터놓을 수 있는 지인도 없었다. 삶의 궁지에 내몰린 기분이 들었다.
팍팍하고 불안한 생활을 툭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은 그래도 친정 부모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형편의 목회자 가정을 경험해 본 어머니라면 나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겠거니 기대를 했다. 하지만 위로랍시고 돌아온 말은...
“나는 너보다 더 힘들었다. 너 정도면 잘 지내는 거야.”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이 싫어진 내 감정에 조금은 솔직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기독교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갔고, 내가 가진 신앙에 대해 회의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두 해도 아니고 삼십 평생을 기독교 신앙으로 살아온 나였다. 이제 내 신앙의 모든 것을 거부하자니 마음이 쑥대밭처럼 혼란스러웠다. 나의 신념, 삶의 기준, 내 마음속에서 들리는 수많은 목소리들 하나하나가 모두 의심스러웠다.
결국 그 과정에서 내 몸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틱증상을 보였다. 나는 갓 돌이 된 아이를 바라봤다.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천진한 아이의 맑은 눈망울을 보며 다짐했다.
‘적어도 엄마가 너에게 거짓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지는 않을 거야.’
지금 돌아보면 내가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첫째가 나를 붙잡아 준 것 같다. 포기하지 않도록 나를 향해 웃어 주던 첫째의 어릴 적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가 거짓 신앙을 갖지 않도록 첫째가 곁에서 응원해 준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다운 삶을 찾기 위한 몸부림을 칠 수 없었을 것이다.
멋 모르고 결혼한 남편은 나의 방황 때문에 매우 힘들어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길을 걸어 주었다. 그 과정이 참으로 쉽지 않았지만, 굴곡지고 숨 막히는 세월이 우리를 더욱 한 몸으로 엮어 주었다고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