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이라는 이름의 거짓

원망과 무너짐의 경험

by 느리미

다시 되돌릴 수 없었다. 나의 시간을, 나의 결혼을, 나의 선택들을.


왜냐하면 눈앞에서 옹알이하며 엄마인 나와 대화를 시도하는 아이 때문이었다. 물리적으로 도망갈 수도, 사라질 수도 없는 ‘빼박’인 상황에서 나는 '대체 날더러 어쩌라는 겁니까?’라며 신에게 따져 묻기 시작했다. 내가 믿어온 신을 원망하고 욕하며 대드는 나날들이 시작된 것이다.


내가 가진 기독교 신념과 신앙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알맹이 없는 껍데기뿐이었다. 누군가가 원해서 교회를 출석했고, 누군가가 원해서 꼬박꼬박 십일조를 했고, 누군가가 원해서 예배와 봉사를 열심히 했다. 그래서 늘 채워지지 않는 신앙적 결핍을 앓고 살았던 나였다.


뿐 아니라 결혼도 그랬다. 누군가가 원해서 결혼을 결심했고, 누군가가 원해서 출산과 육아를 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내 내면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자발적으로 순종한 거고,

그에 따른 축복된 삶을 살고 있지.’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던 이 음성은 내 진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목소리로 둔갑된 가짜의 것이었다. 이 가짜 목소리는 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괴롭혔다.


“내가 잘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아.”

“난 언제나 빛과 소금이야.”

“나를 통해 하나님이 일을 하셔.”


나의 내면에서 광명의 천사나 다름없는 거짓 음성과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힘겨운 싸움이었으나 혼자 해야 하는 고독한 싸움이었다.

순간순간마다 튀어나오는 거짓 음성의 꼬리가 잡히면 끝까지 힘겨루기를 했다.


힘이 빠질 것 같을 때에는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었다. 아니, 실상은 부르짖음이 아니라 비아냥이었다.


“당신이 정말 살아 있다면

나에게 당신의 능력을 보여줘 봐요.

나를 이런 지옥에서 건질 수 있다면

당신을 신으로 인정하겠어요.

어쩌면 나와 상관없을 수도 있는 당신에게

내가 괜한 말을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그런데 그 부르짖음이 응답이 된 것일까. 문득 나의 내면 깊은 곳에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몸부림쳐 왔던 내 삶이 보였다.


부모에게 도움이 되는 딸이 돼야 했고, 흠 잡힐 일을 하지 않는 착한 딸이 되어야만 했던

슬픈 아이가 있었다. 그러자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해졌다. 오랫동안 위로가 필요했던 나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기 연민에 빠져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만 찾았다. 그 세월은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지난한 세월은 내게 좋은 약으로 돌아왔다.


썩은 자재로 엉성하게 지은 것이나 다름없는 내 삶을 무너뜨려서 깨끗하게 치우고, 고르게 다지고,

새 삶을 튼튼하게 지을 준비 기간을 보낸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느새 거짓 음성을 쉽게 거를 수 있게 되었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조금씩 터득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즐거워하는 것이 뭔지, 어떤 느낌을 어느 때에 느끼는지 주의하며 나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존중하고 지켜 줬다.


내가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내 앞에서 사랑스럽게

쫑알쫑알 지저귀는 작은 아이 덕분이었다.

아이는 나의 천사였고, 아이의 미소는 나를 살게 만드는 호흡이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캄캄한 어둠을 더듬으며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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