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이 되는 답을 얻다
희망이 사라지고 짙고 어두운 그림자가 삶에 드리워지는 시간에 들어갈 때가 있다. 그 순간이 도래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도, 생각도 없다.
그 시공간 속에는 오직 나, 그리고 나와 싸우고 있는 또 다른 나만 존재할 뿐이다.
긍정이 부정을 이기는 그런 단순한 싸움이 아니다. 복과 저주의 싸움 같은 것도 아니다. 마치 버티는 자와 버티지 못하는 자와의 싸움에 가까운 것이다. 이 싸움이 밤새도록 이어진다. 눈물이 흐르면 버틸 수 있는 새로운 힘이 생긴다. 희망 없는 세상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에 주위 환기가 된다. '그래. 이렇게 버텨가는 것이지.'라고 중얼거린다.
무엇을 위해 나는 이토록 버티고 있을까.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떠오르는 건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미소다. 내가 아이들의 미소에 어떤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왜 그럴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고 일컫는 모성애가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모성애는 내가 돈을 주고 산 것도 아니고, 어렵게 발견한 것도 아니다. 거저 주어졌다. 이것은 특별한 선물이 나도 모르게 손에 쥐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 힘이 나를 이끌어가는 것임을 느낀다. 하지만 이 힘에 이끌려 걷는 인생길이 이상적이거나 포근하지만은 않다. 좋은 엄마? 바람직한 가정교육? 그런 것들과 꼭 잘 연결되는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나는 신에게 선물로 받은 모성애가 가치 있는 인생인 것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거의 모든 여자들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지만(의학의 발전으로 더더욱), 그러나 누구에게나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어서 나 자신이 구별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같은 이유로 구별된 사람들이 많음에도 이 구별은 지극히 개인적인 구별이 되기에)
그래서 나의 견딤은 소중한 것이고, 나의 삶은 적어도 욕망이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이끄는 삶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원천이 사랑이라고 나직이 고백한다.
#The Virgin and Child with St. Anne — Leonardo da Vin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