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수 있던 이유

나를 살린 글쓰기 1

by 느리미

아직 풋풋했던 젊은 시절의 일이다.


억울한 감정이 용오름 치듯 끓어올랐다. 삶이 나를 속여 왔음을 알게 됐다. 아니, 내가 스스로 속은 것이었나? 억울해 죽을 것 같았다. 그 감정은 다름 아닌 분노였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매우 화가 상태였다.


하늘이 기뻐하는 일임을 확신하며 선택해 오던 일들이, 알고 보니 죄다 나의 착각이고 오만이었다. 그 착각과 오만의 뿌리는 매우 깊고 오래된 것이었다. 그 뿌리는 자기혐오를 흡수하며 뻗어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의기소침해 있곤 했다. 뭔가 신나는 일이 생길 거란 기대감으로 하늘을 바라보면, 하늘은 늘 엄격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어리숙함이 옳지 않다고 눈짓했다.


그리고 하늘은 내게 말했다.


“이것은 ‘선’이고 저것은 ‘악’이란다.”



이 때문에 나는 선과 악을 구분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늘 선을 택했다. 악을 선택하는 악한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악을 선택하는 사람은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불행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악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뜻밖에도 그 손은 따뜻했다.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어느새 내 마음은 악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악에게 끌리는 내 마음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그리고 악을 밀어내기로 했다. 악을 향한 열망을 막을 수 없었지만, 나는 밀어내고 또 밀어냈다. 결국 악은 슬퍼하며 내 곁을 떠났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화가 난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진 듯해서 안심이 되었다. 나는 선을 위해 살기로 다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노력했다. 내 주변 어디를 봐도 선으로 가득하도록.


그러나 악이 나를 종종 찾아왔다. 그리고 내 삶을 비집고 들어오려 했다. 나는 강하게 악을 밀쳐버리고, 선으로 꽁꽁 막아버렸다.


어떤 날들은 악이 집요하게 날 찾았다. 나는 틈만 나면 악이 내 선한 삶에 균열을 내어 망가뜨리려 한다고 믿었다. 나는 악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겠다고 수백 번도 다짐했다.


그렇게 치열했는데, 어느 날 선의 실체를 보고 너무 놀랐다. 죽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지금껏 죽은 것을 선이라고 여기며 보호해 왔던 것임을.


믿을 수 없어서 큰소리로 선을 불렀다. 그러나 아무리 불러도, 내 손안에도, 주변에도, 어디에도 없었다. 내 시야는 온통 죽음뿐이었다. 그동안 내가 지키고 붙잡았던 것들은 다 타고 남은 잿가루나 다름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자조 섞인 눈빛으로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등을 두드렸다. 악이었다. 악이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악을 바라봤다. 그런데 악은 더 이상 악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악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껏 나 자신에 의해 악으로 규정되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악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악에게 사과하고, 깨끗하게 씻겨주고, 멋진 옷을 입혀주었다. 그리고 악의 이름을 ‘문(問)’이라고 고쳐주었다. 그 후로 문을 가까이하며 지냈다.


문과 친해지자 나는 뭔가를 많이 말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컴퓨터를 켰다. 하지만 마음처럼 써지지 않았다. 한 문장을 쓰더라도 용기라는 것이 필요했다.


너무 오랫동안 나는 질문하지 않았고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실어증에 걸린 사람 같았다. 그래서 포기한 채 밤에 잠을 청하려고 하면, 뭔가 내 안에서 하고 싶은 말들이 수도꼭지처럼 콸콸 쏟아져 잠에 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컴퓨터 책상 앞에 앉곤 했다.


그렇게 나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연습했다. 이것이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였다. 그때 나는 내 자아가 이제 막 태어난 아기와도 같았다. 그 모든 것이 글쓰기 걸음마를 한 발 한 발 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나를 살린 것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