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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상인 Jan 04. 2016

중학생들 쉬는 시간 관찰기

짧아도 너무 짧아.

   직장생활이라곤 중환자실 간호사로 병원에서만 7년을 근무했고, 집-병원-집-병원을 반복하던 일상에서 병원 밖 세상을 경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7년을 일편단심 병원, 병원, 병원.


병원이라는 우물 안에서 폴짝되던 내가
2014년, 학교라는 우물로 이사를 왔다.


2014년 2월 5일 학교우물 입성 환영!


   학교에 왔을 때 가장 기뻤던 것은 그동안의 노량진 찌질이 생활을 청산하고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 임용고시에 합격했다는 것도 아니고, 생체리듬은 가볍게 무시하면서 평일과 주말의 개념을 잊고 사는 3교대 근무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아니며, 애들보다 교사들이 더 손꼽아 기다린다는 방학이 있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나의 가장 큰 기쁨은 바로 중학생인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북쪽 나라 김가네도 무서워한다던―신종질환일까―‘중2병’의 주인공들, 한류 열풍의 주역이 아이돌 가수라지만 그 배후 실세는 물심양면 서포트하는 여중생! 꿈과 끼를 찾아서 진로를 탐색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고 싶지만 학교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만큼 그 시간 그대로 학원에 투자하게 되는 ‘중학원생‘들... 그리고, 사랑과 낭만과 열정과 '선생말도맞고엄마말도다맞긴한데그래도내맘대로살것이니제발가만놔두길바람'이 넘쳐흐르는 우리의 중학생들을 만난다는 것. 이것은 나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이렇게나 내게 기쁨을 주는 ‘나의’ 중학생 사람들, 그들의 쉬는 시간 풍경을 관찰해 봤다.     






골룸이가 놓고 간 막대사탕



골룸의 등장


   마른 몸에 큰 눈과 넓은 이마. 안타깝게도 아이의 별명은 ‘골룸’이다. 심지어 여학생이지만 친구들이 저를 골룸이라 불러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이 아이는 나를 참 좋아한다. 나름 학교 보건실도 중증만 없을 뿐이지 꾸준히 환자가 있다. 그냥 놀러 오는 방문자를 제외하고 소소한 증상과 상처들로 순수히 ‘환자’ 행색을 하는 방문자 수만 해도 하루 평균 50명은 된다. 봄가을 환절기에는 수업시간, 쉬는 시간 할 것 없이 너도나도 환자 행색을 하며 몰려드니 믿기 어렵겠지만 하루 방문자 수가 100명이 되는 날도 있다. 그렇게 환자들로 북적대는 곳이라 보건실 관리로 정말 정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한 시간씩 들어있는 과목이지만 각반에 보건수업도 들어가야 하고, 나름은 공직사회의 일원이므로 수많은 공문과 행정적 업무처리를 해내려면 짬짬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깨작거리는 행동을 해줘야 하는데, 우리 귀여운 골룸이는 나에게 깨작거릴 틈을 내어주진 않는다.


선생님 진짜 제가 골룸 같아요? 진짜요? 뭐예요, 정말 실망 이예요. 그래도 사랑해요! 쌤 근데 화장은 왜 안 하세요? 아이라인 그리시면 좀 더 예뻐 보일 것 같은데. 쌤 머리 염색한 거 무슨 색깔 이에요? 은은하고 좋네요. 샘, 아까 그 애는 머리 아프다 그러는데 왜 약 안 주고 그냥 보냈어요? 저 그 고등학교 원서 넣은 거 떨어졌어요. 그냥 집에서 가까운 학교 가야 하나 봐요. 쌤, 얘 살 빠지지 않았어요? 야!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날씬했어? 뻥 치지 마~! 쌤 맞죠 맞죠? 꺄악~ 아파 아파!     


질문을 받았지만 나에겐 발언권이 없다. 녀석은 나에게 셀 수 없이 질문을 하고, 물론 대답도 자기가 한다. 그러면서 이따금씩 한다는 소리가 쌤 정말 좋겠어요. 매일 애들이 이렇게 쌤이랑 ‘놀아드리니까요.’ 허허, 거참 억울하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내가 다 받아주고 있으니 너네가 날 한가한 사람으로 본다 한들 어떠하리. 아이들이 교사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게 얼마나 긍정적인 현상인데 어찌 내가 거절할 수 있으리오.




초를 재어 보아요.


2학년 1반


   아침 조회가 끝나자 말자 나타나는 시커먼 무리들이 있다. 보건실에서 가장 가까운 교실인 2학년 1반 남학생들. 일명 상사병 클럽. 상사병에 걸렸다고 우기는 남학생 한 명이 보건실에 와서 푸념을 늘어놓다가 한 놈 두 놈 데리고 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우르르 와서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심지어 요즘엔 이 무리 중에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는지 그 반 여학생들도 눈치를 보며 하나둘씩 정기적으로 찾아오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나에겐 발언권이 없다. 아, 정말 골치 아프다. 내가 무슨 발언을 하려고 치면 종알종알 자기네가 하고 싶은 말을 또 꺼내기 시작한다.


   선생님, 트램펄린(O)이 맞아요, 트램폴린(X)이 맞아요? 나에겐 검색엔진의 역할이 있다. 쌤, 선희 선생님(이라고 한 분 계십니다.)이 거짓말하면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선희(의)의 거짓말. 푸하하, 웃기죠? 나에겐 별로 웃기진 않지만 웃어줘야 하는 방청객 역할이 있다. 저 애는 걔를 좋아하고 얘는 또 저 애를 좋아하는데 결국 결론은, 어제 페메(페이스북 메신저의 줄임말이라고 한다)로 고백했다가 오늘 차였어요. 그렇다. 나에겐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듣고도 가만히 있어야 하는 대나무 숲 역할이 있는 것이다. 그 무리 중 한 명은 아줌마인 나에게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백 번은 고백을 하는 것 같다. 이놈이 장난을 치는지 진심으로 그러는지는 내겐 별로 중요치 않아서(미안하다, S야!) 오냐오냐 하고는 있는데 가만 듣고 서서 이 중학생 남자 사람들을 잘 관찰하고 있으면 나름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과연 저 시커먼 것들에게서 저런 로맨스는 어디서 생성되어 나오는 것일까.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남자다운 척하는 저 표정 좀 보게.


   요즘엔 어디서부터 바람이 불었는지 너도 나도 손에 큐브퍼즐이 들려있는데 놀랍게도 손으로는 큐브를 돌리고 입으로는 그 많은 질문을 하며 멀티태스킹 능력을 선보이고 있다. 내게 초를 재보라면서 휘리릭 퍼즐을 돌려 육면체 색을 순식간에 다 맞춰 버리는 게 참 신기한데 격한 리액션을 하면 자꾸 와서 보여 줄 것 같아 ‘잘하네’ 이 한마디로 시큰둥하게 참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쉬는 시간 10분 그 짧은 시간 동안 떠들다가 웃다가 한숨 쉬다가 자기들끼리 헐뜯는 소리 몇 마디를 나누다가 종이 치면 우르르 빠져나간다. 그러면서 그런다. 쌤, 나중에 봐요. 나중에 보자니, 또 오겠다는 소린데. 한번 다녀가고 나면 머리가 아프지만 어쩔 수 없지.



열정의 발견


   점심시간 타종 소리와 함께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겪어보진 않았지만 지진이 난다면 이런 느낌이겠지 싶은 진동과 ‘쿠아아아-’(내 귀에는 이렇게 들린다.)하는 함성소리가 울려 퍼진다. 뒤따라 호루라기를 포함한 각종 생활지도 장비 소리가 몇 번 울리고 나면 질서 정연하게 급식 줄을 서고 함성소리도 잦아드는데 그중 지도에 불응하고 날뛰다가 한 놈이 계단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주변 친구들의 어설픈 부축을 받아 쩔뚝쩔뚝 끌려온다. 친구들은 부상자를 보건실에 던져주며 다급하게 한 마디를 한다. 쌤! 급해요 급해! 오늘 갈비찜 나오는 날이라서요! 친구의 통증은 갈비찜 앞에서 우선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발목이 약간 부어있어 염좌로 추정되니 붕대를 감고 얼음찜질을 하며 잠시 다리를 베개 위로 올리고 있도록 시키지만 아이는 불응한다. 결의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선생님, 저는 정말 괜찮아요. 일단 밥을 먹고 오겠습니다. 갈비찜이라고요!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친구들의 부축을 받아 급식실로 향하는 뒷모습을 계속 감시하고 있으면 저 쪽 끝 복도에서 불량한 복장에 헝클어진 머리, 피곤에 찌든 얼굴로 나타나는 한 놈이 있다. 어~이! 너 학교 지금 오는 게냐. 이 녀석! 우리 학교 대표 폭풍 방황가의 등장에 반가움 반 안타까움 반으로 밝게 인사를 건넨다. 갈비찜 먹으러 왔어요. 그렇다. 가정통신문은 비록 비행기가 되어 학교 곳곳을 날아다니지만 월별 급식 식단표는 절대 버려지지 않는다. 슬픈 현실이지만 학원, 맞벌이, 가난, 비행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하루에 먹는 끼니 중 학교 급식이 유일한 정상 끼니인 아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도 한몫을 한다. 아이들이 나에게 요즘엔 학교별 급식 식단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스마트폰 어플이 있다며 소개도 해줬는데 나름 유용하다. 급식 메뉴는 이렇게나 아이들을 단결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키고, 숨겨놨던 투지를 불사르게 만드는 엄청난 힘을 가졌다. 물론, 교직원들에게도. 부정하진 않겠다. 흠.     



오늘도 내일도 나는 성장한다


성장의 시간


   작년 여름부터 점심시간과 방과 후엔 자유롭게 와서 키와 몸무게를 잴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자동 신장 측정계를 개방했다. 그 후론 점심시간만 되면 정말 많은 아이들이 좁은 보건실에 길게 줄을 서서 키와 몸무게를 잰다. 이렇게까지 집착하고 인기몰이를 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들은 꼭 한 무리씩 같이 와서 누가 더 많이 컸는지 경쟁을 한다. 그들의 척도는 나름 개별화되어 있다. 키 작은 아이에겐 160cm을 넘기는 것이 목표, 크고 있는 아이에겐 170cm을 넘기는 것, 개중에 좀 크다 하는 놈은 180cm을 넘기는 것이 목표이다. 여학생은 몸무게를 가리느라 한참이 걸리고, 게다가 지금 저 몸무게가 내 것이 아니라는 둥 점심을 먹기 전에 쟀어야 한다는 둥 의심을 하며 두 번 세 번 재기 때문에 뒤에 줄 선 아이들의 원성 소리가 없다면 밤새도록 재고 있을 모습이다.


   그중 늘 겸허한 표정으로 혼자 들어오는 3학년 J군. 이 아이는 적어도 내가 보건실에 부재하지 않는 한 매일 급식 후 꼬박꼬박 보건실을 방문한다. 작년 여름 자그만 하던 J군은 어떻게 하면 키가 클 수 있냐며 한숨으로 시작해 눈물의 하소연을 하곤 했다. 그렇게 매일 지극 정성으로 키가 크고 있는지 확인을 하는데 어떤 날은 “앗싸~! 0.2cm 컸어요!”라며 환호를 지르고 나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또 0.1cm 컸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쩜 매일 그렇게 세세한 차이로 키가 컸다고 말하는지.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매일 키가 자라겠니.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성장하고 있는 거란다. 조급해하지 마렴.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고 충분한 운동과 휴식, 수면 쏼라쏼라… 그리고 남자가 무조건 키가 커야 하는 건 아니잖니 쏼라쏼라… 너는 지금도 충분히 멋있어."라는 지극히 교육적인 입장에서 시답잖은 소리를 들려주지만 나도 알고 있다. 내가 방금 뱉은 이 말은 J군의 귓바퀴도 못 뚫고 튕겨져 나갈 것이란 걸. 하지만 나는 틀렸고 J군은 옳았다. 매일 봐서 잘 못 느꼈는데 J군은 정말 0.2cm씩, 0.1cm씩 그렇게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 무심코 바라본 J군의 교복 바지 기장이 복사뼈 위로 달랑달랑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디제이, 돈 스탑 더 뮤직!


노랫소리


   나에게 요즘 가장 인기가 많은 아이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얼른 학생들의 책상을 커닝하면 된다, 책상에 낙서하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를 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연필로 쓰면 양반인 거고 박박 긁어서 새긴 각 그룹들의 이름과 로고, 멤버들의 명단까지 꼼꼼하게 적혀있다. 거기에 하트를 그려 본인의 이니셜을 새겨 넣으면 화룡정점. 요즘엔 웹툰 캐릭터 스티커까지 가세하여 책상이 아주 화려해졌다. 아이돌 이름은 모른다 치더라도 노래가 무어냐고 물어보면 나도 따라 흥얼거릴 수는 있다. 점심시간마다 첫 곡으로 들려주는 게 바로 요즘 가장 ‘핫‘하다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쿵짝쿵짝 아이돌 노래가 끝나고 나면 아직 얘네들이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갓난쟁이였을 (핏덩이들은 현재 중1이 2002년생이다) 시기의 가요들도 흘러나온다. 예를 들면, 임창정의 '소주 한잔'이라던가, 쿨의 '애상'이라던가. 정말 신기하게도 이런 노래가 울려 퍼질 때 학교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노래방으로 변한다. 한마음 한 뜻이 되어 떼 창을 부르는데 실제로 본다면 이해하겠지만 흥얼거림 수준이 아니라 핏대를 세워가며 그야말로 열창이다. 어떤 날은 그 소리가 하도 듣기 좋아서 보건실에 있는 아이들 몰래 스마트폰으로 녹음을 한 적이 있다. 은밀하게 녹음 버튼을 누르고 있는 나도 참 응큼하지만 그 유혹을 참기도 여간 힘든 일은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 화려한 피날레는, 단연 랩이다. 최근 몇몇 TV 프로그램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 학교에도 래퍼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나도 나름은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쪽이라 즐겨 듣기는 하는데 완벽하게 따라 부르지는 못한다. 이를테면 랩에도 ‘얼씨구’, ‘지화자’의 역할을 하는 중간 추임새나 멜로디가 있는 후렴구 정도는 따라 부르는데 우리 학교 래퍼들은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박자를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정말 잘 따라 부른다. 거기에 허공을 아름답게 수놓는 화려한 손동작과 구부정한 자세를 취해야 하고, 래퍼 옆에서 같이 흥을 북돋아줄 서포트 보컬은 필수. 캬, 같잖지만 정말 사랑스럽다.




삼삼오오 운동장 리그


운동장


   날씨가 추워져서 뚱뚱한 점퍼를 입고 굴러다녀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운동장에 나가서 뛰어논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공 하나만 던져주면 참 잘도 어울려 논다. 농구, 축구, 족구, 야구, 종목도 다양하다. 실내에선 실내화만, 실외에선 실외화만 신어야 우리네 생활공간이 청결하게 유지될 텐데 삼선 슬리퍼를 신고 줄기차게 공을 차는 아이들 덕분에 실내 먼지바람은 모두의 숙명이 되어있다. 실내화 신고 운동장에 다녀온 녀석이 교사에게 적발되는 날엔 그 학생은 물걸레질에 자동 당첨된다. 그러나 ‘거기 너 실내화....’ 어쩌고 하며 지적 소리가 나기라도 하면 그 어느 때보다 빛의 속도로 종적을 감춰버리니 일망타진의 길을 사실상 불가능이다. 그래도 놀겠다며 나가는 모습은 참 아름답다.


   여자 아이들은 춥다며 오색빛깔 찬란한 무릎 담요를 허리에 둘러 월남치마처럼 몸을 감싸고 실내에서만 돌아다니는 게 참 안타깝다. 가끔 아이들에게 고무줄 뛰기가 얼마나 재밌는 놀이인지 가르쳐 주고 싶을 때가 있지만 참아야겠지. 여자애들 모아놓고 고무줄 뛰기 하자고 그러면 아마 엄청난 신경질을 낼 거야. 아무렴. 반면 운동장 남학생들은 두 볼이 발그레 해질 때까지 땀을 흘리며 논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고 정겹고 신기하다. 아, 물론 이렇게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만큼이나 실내에서도 격투기, 레슬링, 잡기 놀이, 힘겨루기, 넋 놓고 앉아있기, 거울 보면서 치장하며 놀기, 기특하게 책 읽기, 엎드려 자기 놀이, 학원 숙제하기 놀이 등을 하면서 노는 아이들도 못지않게 많기는 하다.


   위에서 여학생 담요 이야기가 나와서 잠깐 꺼내는 말인데, 요즘 여자 아이돌 그룹의 무대 의상 영향 때문인지(라고 나는 잠정적 결론을 내린 상태다.) 여중생들의 짧은 하의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짧은 치마는 당연하고 추워서 오들오들 떨게 되는 겨울날에도 체육복마저 짧은 반바지로 접어서 입고 다니니 더 이상의 설명은 사족이다. 그 아이들에게 치마를 무릎 근처로 내린 다는 것, 체육복 반바지를 헐렁하게 무릎에 맞춰 입고 다닌다는 것은 직장인 여성에게 비비크림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들의 리그에선 최소한의 예의이며 기본적인 외모 보호 장치인 것이다. 교사들이 불량한 복장과의 전쟁을 선포하면 아이들은 딱 그만큼 투쟁을 선포한다. 참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운동장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면 겨울엔 덜하지만 봄, 가을엔 운동장에서 눈꼴시려 못 봐주는 풍경도 있다. 창문에 붙어서 누구 오빠~ 너무 멋있어요~!라고 외치는 여학생, 여학생 목소리 들리는 거 뻔히 아는데 못 들은 척하고 계속 슛을 시도하는 잘난 남학생. 어디서 배웠는지 운동장 모레에 막대기로 누구-하트-누구를 크게 그려놓는, 눈 뜨고는 도저히 못 봐주겠는 유치한 풍경도 있기는 하다.






   이상은 고작 66제곱미터짜리 네모난 우물 보건실 안에서 한낱 보건교사 시선으로 관찰한 아이들의 쉬는 시간이었다. 이 밖에도 쉬는 시간 풍경을 관찰한 사항은 정말 많지만 계속 떠들고 있을 수는 없으니 이쯤 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임용되고 이제 겨우 2년 차이니 아직까진 많은 것들에 있어서 관대하다. 그래서 주변 선생님들은 항상 걱정을 하신다. 보건실이 그렇게 북적대고 바빠서 어쩌나요.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해서 어쩌나요. 애들이 지들 안방처럼 드나들며 놀러 가니 힘드시겠어요. 처음엔 중환자가 아니라 펄펄 날아다니는 중학생 사람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참 신기했고 한편으론 아직 아기 같아서 조심스럽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들도 내 일상의 일부분이 되었고 그들의 일상에도 아주 미약하지만 내가 거기 끼어들어 있다는 것으로 나름은 인격적 교류가 형성되어 있으니 더 이상은 피할 수 없는 인연이 되었다. 얼마나 소중한 '쉬는 시간'인데 그중 일부분을 나와 함께 보낸다는 것은 나에게는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방관한다. 나에 대한 그들의 무자비함을.


   다소 진지하게 미간에 주름을 잡고 마무리해 보자면, 나의 중학생 사람 쉬는 시간을 관찰하면서 느낀 것은 쉬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초, 중, 고의 순서대로 진급을 하면서 수업시간은 5분씩 연장이 되지만 쉬는 시간은 변함이 없다. 아이들에겐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말이다. 아이들의 표정을 한 번 보면 알 수 있다. 또래끼리 섞여 있을 때, 원하는 행동, 좋아하는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고 잡다하고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을 때 진정 아이들의 얼굴이 예뻐진다. 쉬는 시간엔 화장실도 가야 하고 다치거나 아프면 보건실도 가야 한다. 다음 교과가 이동수업이면 준비도 해야 하고 체육이면 체육복도 갈아입어야 한다. 친한 친구랑 수다도 떨어야 하고 좋아하는 아이 학급 앞에서 얼쩡거리기도 해야 한다. 트램펄린이 맞는지 트램폴린이 맞는지 입씨름도 해야 하고, 어제 나온 아이돌 신곡을 흥얼거리며 친구와 장단도 맞춰봐야 한단 말이다. 짧아도 너무 짧다. 학교의 쉬는 시간이 연장되더라도 수업에는 지장이 없으면서 하교시간이 늦어지지 않고, 기초학력이 저하되지 않으면서도 인성이 바르고 창의력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인가. 나는 쉬는 시간 연장이 아이들을 좀 더 행복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믿는다.


물론, 많은 사건사고와 비행이 쉬는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흠.


그래도 좋다. 쉬어야 하고 놀아야 마땅하다.

얘들아, 우리 짧은 시간이지만 부디 굴러다니며 좀 신나게 놀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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