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사랑받으려고 애쓰면 남들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들의 표정, 행동, 말투까지 모든 것이 다(모든 것이) 레이더망에 걸리게 된다.
타인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애쓰지 말고 신뢰를 받으려고 노력하자. 신뢰를 받으려고 한다면 자신의 일관된 행동을 보이는 데, 또 내가 말한 것을 지키려고 하는 데 에너지를 쏟게 된다. 눈치를 보는 것은 신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약속을 지키고 규칙을 어기지 않는 것 등의 일관성이 도움이 된다.
혹자는 누군가의 관계에서 내가 잘 보이고 싶은 관계인지 잘해주고 싶은 관계인지 생각해보라는 말도 했다. 잘 보이고 싶다면 내가 을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마음이 끌리는 상대가 있을 때,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사람 마음이 뜻대로 다 되진 않으니깐. 그렇지만 최소한 이런 나의 상태를 인지는 하고 있어야 한다.
왜 우리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하나? 인정을 받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다. 칭찬과 감사. 누군가가 나의 능력에 대해, 성품에 대해, 성취에 대해 칭찬을 할 때 인정받는다고 느낀다. 내가 칭찬을 받을 만한,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부심과 안정감이 나를 인정하는 토대가 된다. 타인의 감사하는 모습을 볼 때도 그렇다. 내 존재가 확인받게 되고, 또 나의 쓸모를 확인한 느낌이 든다.
인정 욕구는 결국 자신의 존재감을 타인의 존재감과 상대적으로 비교해 더욱 뛰어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승부욕과 연관이 있을 거라 추측된다. 이 둘의 관계는 불가분 내지 정비례의 관계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칭찬이나 감사도 다른 사람에 비해 '더 잘했고' '특별히 고맙고'라는 비교가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하는 칭찬은 알맹이 없는 깡통일 확률이 높은 걸로 봐선.
이처럼 인정 욕구는 승부욕과 관련이 있어 기업 내부에서의 승진이나 사업의 성공 등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는 동력이 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인정 욕구는 인정을 갈구하는 심리적 욕구가 큰 사람이므로, 인정을 주는 누군가에게(아마도 상사나 부모) 자신도 모르게 종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에 치우치다 보면 결국 회사에선 번아웃, 사람에겐 의존성이 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책에서 우울증 치료법을 본 적이 있다. 그중 하나가 봉사 활동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감사 인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자기가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기보다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과 안도감이 생기는 과정이다.
인본주의 학자 칼 로저스에 따르면, 우리는 실천적 경향성을 타고 난다. 로저스는 실천적 경향성을 인간이 타고나는 기본적 동기이자, 스스로를 유지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잠재력을 유지해나가는 능력이라고 봤다. 이런 능력에 타인의 인정이 더해지면, 누군가에게 받는 인정이 긍정적 동기가 되어 부스터 샷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반면,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인데도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해나간다면 그 사람은 불행하기 쉽다. 실천적 경향성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인정을 수단과 발판으로 삼아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현명하게 다뤄야 한다.
생각보다,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할 때 사람은 더욱더 당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