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에 대한 공부를 할수록 유전의 힘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렇게 서로를 보완하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던가?
책으로 배운 유전의 힘은 너무나 강해서, 치료사로서 무력감을 느낄 정도였다. 유전으로 정해지는 것이 많다는 것은 곧 치료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적어진다는 의미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사람은 환경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친해진 두 사람의 분위기와 말투 그리고 습관이 비슷해지는 것과 같다. 말투와 분위기는 그 사람을 닮고 있다.
나는 어느 순간 가까운 사람의 습관을 따라 하고 있었다. 감동을 잘 받는 분이었다. 자신을 생각해준 카톡 하나, 말 한마디에 울먹거릴 수 있는 대단한 감수성을 지닌 분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연기하나? 삶이 힘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뎌진 내게 너무나 익숙해져서, 나도 모르게 그런 감수성을 갖고 있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성향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의 감정을 정말 잘 드러낸다는 뜻일 수도 있고, 세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본다는 뜻일 수도 있다.
1. 성향 때문이라는 것은 미세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는 뜻이고, 2.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의 강도나 포인트가 다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다 표현하지 않고(혹은 느끼지 않고) 지나가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자신의 감정에 무심하지 않는 용기가 있다는 것이며, 3. '그냥' '그저' '사회생활이니까'한 것이 아니라 '이유가 있어서' '마음이 가서' '진심으로'라는 것을 믿는, 혹은 잘 알아채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몇 달 동안 나는 이런 감정을 경계했다. 어쩌면 내가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고, 괜히 확대해석을 하면 나중에 혹여나 돌아올 쪽팔림을 감당하기 싫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성향상 나는 약해 보이거나 감정적인 것 같다는 말을 듣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기도 하다.
이런 견고한 신념에도 불구하고, 그 분과 많은 대화를 하고 그분의 감정선을 옆에서 지켜보다 보니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감정을 중시하고 그것을 잘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분의 순수함과, 솔직함과, 자아존중감과, 민감성이 느껴졌다. 나는 눈물이 나와도 그걸 애써 숨기기 바쁜데 그분은 그대로, 숨김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오늘따라 감정들이 나에게 민감하게 느껴진다. 나를 만나러 와준 친구에게 고맙고, 취업했다고 한턱 쏘면서도 부담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에 감동하고, 거의 5년 전에 내가 털어놨던 고민들을 잊지 않고 물어봐줘서 감동받고 울컥할 뻔했다. 감정에 예민해지고 민감해지니까 고마운 것들이 많아진다.
누굴 만나느냐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 또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