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지, 기분 나쁜 이 기분은?
나한테 심한 욕을 한 것도 아니고,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닌데, 대화를 할 때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이 있다. 이럴 때면 나의 예민성과 나의 기분을 살펴보며 나를 먼저 돌아보는 습관이 있지만, 나의 감정의 대부분은 괜한 심술이 아닌 경우가 많다.
사실은 상대방이 나에게 한 말은 (대부분) 틀린 말이 아니다.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을 한 것도 아니다. 또 욕을 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말투도 아니다. 기분 나쁜 단어를 쓴 것도 아니고, 나쁜 의도가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묘하게 기분 나쁜 말의 특징은 상대방의 감정을 수긍하지 않고 부정을 할 때다.
설이 화요일까지라 신난다는 나의 말에, 친구는 너 근데 일 안 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1. '일을 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는 참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지금 대학원생이다.)
2. '일' '안 해' 저 문장을 뜯어보면 기분 나쁜 요소가 없다.
3. 명령조도 아니고 의문문이다.
이해를 해보자면 친구는 야근이 잦고, 퇴근이 보통 늦는 일을 하고 있는 친구다. 이에 그에게 설은 천국 같았을 거다. 회사를 가지 않고 마음껏 쉴 수 있는 귀중한 연휴였겠지. 그런데 친구의 사정을 고려한다고 해도, 쉽게 이해가 되는 말투가 아니다. 나는 내가 느낀 감정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다. 나의 감정은 꼭 객관적이어야 하나? 객관적 의견에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내가 느낀 감정을 이해 못한다는 친구의 말에는 기분이 팍 상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친구는 내 사정을 전혀 모른다. 우리 부모님은 아무리 늦게 자도 빨리 일어나는 게 정상이라는 주의다. 이에 나는 논문 때문에 아주 늦게 잠들어도 8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8시보다 더 늦게 일어나는 날이면 엄마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참고로 엄마는 아주 무섭고 강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항상 긴장을 하면서 자고, 긴장을 하면서 일어난다.
정말 다행히도, 엄마는 '연휴'에는 관대한 편이다. 그래서 연휴가 되면 내 맘대로 10시에 일어나도 엄마가 화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유일하게 알람을 맞춰놓지 않고 일어나는 유일한 날이 연휴다. 이런 이유도 모른 채, '일을 안 하면 평소에도 늦게 잘 수 있고 놀텐데 왜 너는 신나냐'라는 의미를 담은 친구의 말은 참 무례하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감정은 객관적일 필요가 없다. 내가 기분 나빠도 되는 상황인가? 내가 예민한가?라는 질문은 하지 말자.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도 소중하며,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존중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