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콤플렉스라고까지 할 만한 부분은 없지만, 나의 모습 중 맘에 안 드는 것이 있다면 바로 굉장히 선해 보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말투도 굉장히 상냥해서 나는 쉽게 만인의 말동무 상대가 된다.
생각해 보니 이는 유서가 꽤 깊다. 초등학생 때 (지금 와서 판단해 보면) "지적 장애를 갖고 있던 반 친구를 네가 챙겨줬으면 한다"라고 말씀하시던 담임선생님, 고 3 때 시력이 굉장히 안 좋은 자주 아팠던 오빠를 잘 부탁한다는 미술 원장선생님의 말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다행히 길거리에서는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을 차고 다녀서, 누군가가 이상한 말을 거는 낌새가 있으면 모른채하고 지나치기가 매우 쉬워 그렇게 한다. 그러나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구원자(?)가 없으면 사실 말을 거는 사람을 쉽게 무시하기는 어렵다.
우리 학교에는 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을 채용하는 곳들이 군데군데 있다. 그 일은 대부분 청소, 계산 등과 같은 단순 업무에 치중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자립을 직접적으로 지원해 주는 기회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굉장히 좋은 취지라고 생각하며 나 또한 환영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분들이 눈 마주칠 때마다 나에게 하소연을 한다는 사실이다. 빤히 쳐다보고 계셔서, 혹시 필요한 거 있냐고 물으니,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하신다. 처음에는 이런 말을 할 곳이 없으시겠지 싶어 요즘 그렇죠 고생 많으세요, 그래도 덕분에 샤워실 깨끗하게 사용합니다,라고 말을 주고받게 된다. 그러다가 몇 마디 이후에도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하소연의 말들이 반복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끔은 관계자가 불쑥 들어오면 갑자기 하던 일로 재빨리 돌아가 대화가 바로 중단된다. 이 경우는 나로서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끊기니까 다행인 마음이 들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다.
또 한 번은 편의점의 키핑(keeping) 기능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해당 직원분께서 "에효 안 그래도 바쁜데 하하하하하"라고 말하며 나의 눈을 보며 씩 웃으신 적이 있었다. 솔직히 한편으로는 이것도 자신의 업무 중 하난데 손님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이 살짝 이해가 되지 않기는 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 분 또한 하소연할 곳은 없고 일은 많으니 일회성으로 하신 말이지 않을까 싶어 미소를 지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편의점을 나왔다.
여기서의 문제는 만인의 말동무가 되는 이 상황이 나에게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짜증남, 화남, 억울함(왜 나에게만?), 나의 선한 인상에 대한 불만 등이 한꺼번에 나오면서 이게 이렇게까지 기분 안 좋을 일인지, 나를 되돌아보기까지 하였다. 그들은 나에게 피해를 준 것은 없고, 길어도 나의 시간 중 5분 정도를 빼앗은 것뿐인데, 너무 예민하게 대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간 이에 대해 원인을 혼자 분석하게 되었다. 아마도 예전부터 나는 착해 보인다는 이유로, 또 말투가 착하고, 순하다는 이유로 많은 부담스러운 부탁을 받았고, 자주 무시와 왕따를 당했다. 예전에 나는 사실 할 말을 전혀 못하는 부끄러움 많이 타는 착한 소녀였다. 나는 굉장히 만만하고 착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부담스러워도 선생님이 시키시니까, 친구가 부탁했으니까,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었고 반항을 하거나 거부감이 들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억눌렸던 분노, 짜증이 지금에서야 올라오는 것 같다. 그때 억압됐던 불쾌감과 답답함 분노 등이 아직 미해결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누군가 나에게 강요하거나 부탁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세상의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의무를 나에게 지워준 것처럼 의무감과 거부감이 동시에 들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또 예전의 아무 말 못 하는 나에게 사람들이 대했던 것처럼 나를 얕잡아봐서, 만만하게 봐서 나에게만 또 이렇게 자기의 하소연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해서 그들에게 기분이 나쁜 것도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웬만해서는 그들의 잘못은 없다. 설령 길을 물어보더라도 사람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인상이 사납고 길을 안 알려줄 것 같은 사람보다는 선해보이고 나에게 호의적으로 베풀 것 같은 사람을 '선택'한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선한 인상을 지금 와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그냥 사람의 본성에 충실해서 착해 보이는 사람에게 하소연을 하며 말동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일 뿐.
이제는 과거와 달리 나의 상황과 마음에 따라 거절할 줄도 알고 대화를 정리할 줄도 아니까, 시간과 마음이 된다면 만인의 말동무가 될지 말지는 나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나와 대화를 시작할지 말지는 그들의 선택이지만 대화를 언제 끝맺임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으니, 나의 선한 인상은 나의 숙명처럼 받아들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