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한 장이 학업과 자존감을 가르는 현실
대한민국이 예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졌다는 말은 사실 틀리지 않다.
거리를 걸으면 편의점이 불빛을 밝히고, 스마트폰은 초고속 인터넷에 연결돼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특히 교실 안, 우리가 잘 보지 않는 구석에는 여전히 빈곤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 빈곤은 때로, ‘생리대 한 장’이라는 사소한 물건을 통해 가장 잔인하게 드러난다.
내가 학창 시절을 보낼 때도 힘든 친구들이 있었지만, 깊이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그땐 나도 버티기에 바빴고, 솔직히 말해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내가 조금 더 편안한 삶을 살게 되었을 뿐, 그 친구들의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누군가는 생리가 시작될까 두려워한다. 생리통의 고통보다, 생리대가 없어 감당해야 할 불편과 수치심이 더 크기 때문이다.
월경 빈곤이 발생하는 구조적 이유
경제적 한계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 가정, 차상위 계층 가정에서는 가계 예산에서 생리대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한 달에 1~2만 원’이라는 금액이 누군가에겐 커피 몇 잔 값이지만, 어떤 가정에서는 생존을 좌우하는 금액이다.
보호자의 부재
가정폭력, 알코올 중독, 이혼, 방임 등으로 생필품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교 양호실에서 지원받는 것도 한계가 있고, 아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조차 모른다.
제도 사각지대
지자체나 학교에서 지원 제도를 마련했더라도, 복잡한 신청 절차와 개인정보 노출 우려, 제한된 배부 시간 때문에 실제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격차
일부 지자체는 적극적으로 지원하지만, 정책 의지나 예산이 부족한 지역은 사실상 지원이 전무하다.
서울·경기 같은 대도시에서도, 강북·동북·서남권 등 특정 지역의 빈곤율은 여전히 높다.
현장 인터뷰 – 교실 밖의 목소리
① “쉬는 시간에도 의자에서 못 일어나요” (중학교 2학년, 익명)
“친구들이랑 화장실 가자고 해도 못 따라가요. 생리대가 없어서 그냥 교복에 앉아 버텨요. 수업에 집중도 안 되고, 그냥 종이 울리기만 기다려요.”
② “양호실에 매번 부탁하는 게 너무 창피해요” (고등학교 1학년, 익명)
“양호실에서 생리대를 주긴 하지만, 1~2개씩만 줘요. 하루 종일 쓰려면 모자라죠. 선생님이 ‘또 왔니?’ 하면 괜히 위축돼서… 그래서 그냥 휴지로 버틸 때도 있어요.”
③ “방과 후에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학교 밖 청소년, 17세)
“학교 다닐 땐 양호실이 있었지만, 지금은 집에도 없고, PC방에서 밤새다가 그냥 새벽에 편의점에서 제일 싼 거 사요. 그래도 그 돈이 부담돼서 하루 종일 한 장으로 버틴 적도 많아요.”
서울시는 2018년부터 공공생리대 비치 사업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광진·구로 청소년수련관, 서울도서관, 시립과학관, 미술관, 역사박물관 등 10개 시설에 코인형·레버형 무료 자판기를 설치하며 시범사업을 운영했다.
2021년 기준, 총 292개소(공공기관 266, 민간기관 45)로 확대됐다.
강남구(54개소), 동작구(21개소), 은평구(17개소)가 설치 개수 상위 3위였다.
청소년수련관, 도서관, 복지관, 여성기관 등 다양한 시설이 참여했고, 스마트서울맵을 통해 위치를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시민 접근성을 높였다.
그러나 방과 후, 주말, 휴일에는 여전히 접근이 어렵다.
특히 학교 밖 청소년과 가출 청소년은 지원망에서 완전히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1. 스코틀랜드
2020년, 세계 최초로 생리용품 완전 무상 지급 법안을 통과시켰다.
모든 공공건물·학교·대학·도서관 등에 무료 비치, 필요시 가정 배송 서비스까지 지원한다.
2. 뉴질랜드
2021년부터 모든 초·중·고 학생에게 무료 생리대·탐폰을 지급한다.
특히 시골·섬 지역 학생을 위해 우편 배송 시스템을 병행한다.
3.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2019년, 모든 공립학교에 무료 생리대 비치 의무화.
학생회·지역 NGO가 함께 모니터링해 품질·재고를 관리한다.
종교 시설을 활용한 학교 밖 월경 빈곤 해소 모델
1. 제안 배경
학교·공공기관의 비치 사업은 평일 주간에는 효과적이지만, 방과 후·주말·방학 기간·공휴일에는 접근성이 떨어집니다. 또한 학교 밖 청소년, 가정해체·가출 청소년, 보호시설 거주 청소년 등은 기존 제도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당·사찰·교회는 대부분의 지역사회에 골고루 분포해 있고, 종교인 여부와 상관없이 복지·나눔 활동의 전통이 깊습니다. 이러한 특성을 활용하면 생활 동선 내에서 ‘언제든 갈 수 있는’ 월경용품 거점을 만들 수 있습니다.
2. 시범 사업 개요
(1) 대상 시설
성당(천주교), 사찰(불교), 교회(개신교)
각 자치구별 최소 3곳 이상 선정
필요시 주민센터·도서관·청소년문화의 집 등 보조 거점 병행
(2) 비치 형태
화장실 내부에 ‘생리대 전용 비치함’ 설치 (잠금 없는 개방형)
무인·무료 제공 방식, 1인당 제한 수량 안내문 부착
QR코드 안내판 설치 → 인근 다른 비치 장소·위기 지원기관 연결
위생·안전성을 위해 월 1회 이상 점검 및 보충
(3) 운영 주체와 역할
지자체: 예산·행정 지원, 공급 주기·물품 품질 관리, 이용 현황 데이터 수집
종교 시설: 공간 제공, 비치 상태 점검, 안전 관리
지역 NGO·봉사단체: 보충 인력 지원, 홍보, 이용자 피드백 수집
3. 기대 효과
접근성 확대
모든 동네에 최소 한 곳 이상의 거점을 확보하여 도보 10분 이내 접근 가능
낙인감 완화
종교 시설의 ‘나눔’ 이미지 활용 → 이용자가 주저 없이 방문 가능
지속 가능성 확보
종교 단체 모금 + 지자체 예산을 병행해 장기 운영 가능
지역 신도·주민 봉사자 네트워크 활용
사회적 신뢰도 상승
종교 시설이 지역 공동체 보호자로서 인식 강화
청소년과 종교 시설 간 긍정적 관계 형성
4. 실행 로드맵 (서울시 기준)
5. 예산(서울시 시범 사업: 5개 구·시설 15곳 기준)
6. 유의사항
종교 중립성 유지: 배포 시 종교 활동 참여 강요 금지
안전 확보: CCTV 사각지대 최소화, 청소년 보호 기준 준수
정보 접근성: 온라인 지도·스마트폰 앱에 위치 정보 공개
품질 관리: 유통기한·포장 상태 정기 점검
7. 결론
종교 시설을 월경 빈곤 해소 거점으로 활용하는 것은 단순한 물품 지원을 넘어, 청소년의 존엄과 건강권을 지키는 사회적 약속입니다.
이 모델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전국 모든 지역에서 ‘생리대는 언제든 안전하게 받을 수 있는’ 생활권 인프라가 완성됩니다.
이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지키고, 지역 공동체가 함께 성장하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나는 한동안 이 문제를 생각했다.
정책이 바뀌면 될까, 예산이 늘면 될까, 아니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 해결될까.
머리로는 여러 해법을 계산해 봤지만, 마음은 늘 한 곳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편하게 걸어 들어가 생리대를 집어 들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곳이 있었다.
동네마다 있고, 종교를 떠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성당, 사찰, 교회.
그곳의 문을 열면 향 냄새나 촛불 냄새가 나듯,
한쪽에는 조용히 놓여 있는 비치함이 있었으면 했다. 그 안에는 포장된 생리대가, ‘괜찮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으면 했다. 생각해 보니 답은 거창하지 않았다.
거리에 불빛처럼, 골목마다 따뜻한 기척이 있는 것.
그곳에선 이름도, 사연도 묻지 않고 그저 필요한 것을 건네는 것.
그렇게 몇 번을 오가다 보면, 아이들은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마음이, 그들의 어깨를 펴줄 것이다.
정책은 시작일 뿐이고, 시설은 도구일 뿐이다. 마지막 열쇠는 사람의 마음이었다.
서로의 삶을 조금씩 나누는 마음, 그 마음이 모이면
월경 빈곤이라는 말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해답을 찾은 듯했다.
아주 단순하고, 아주 오래된 방식으로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매일같이 변하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건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 ‘관심’과 ‘손길’이다.
월경 빈곤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문제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이 부끄러움 없이 필요한 것을 얻고, 그 과정에서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일—
그건 거대한 제도나 정책보다 더 먼저 시작되어야 하는 마음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수많은 얼굴을 떠올렸다. 학교 복도에서 친구를 피해 조용히 걸어가는 아이,
방과 후 집이 아닌 길거리를 서성이는 아이, 그리고 마음속으로만 도움을 바라는 아이.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가까운 곳에, 따뜻한 마음을 담아 손을 내밀어 주는 것.
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행정과 제도가 움직이기 전에, 우리 스스로 이웃을 살피고,
그 마음이 모여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내기를 바란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특별한 몇 사람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내일도 서로를 기억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