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X 김성재, 멈추지 않는 의문 그날!

29년이 지나도 여전히 막혀 있는 진실

by 유다람

1995년 11월 19일, 듀스 출신 가수 김성재는 첫 솔로 무대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SBS〈인기가요〉에 오른 그의 모습은 팬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주었다. 그날 나는 작은 방에서 녹화 방송을 보며, 텔레비전 너머로 가수의 꿈을 키우던 한 학생이었다. 김성재는 내 세대의 청춘을 관통하는 상징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잘생긴 외모, 큰 키, 자유로운 춤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본어·영어·한국어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던 그의 다재다능함은 당시 90년대 가요계에서 보기 드문 존재감이었다. 그저 외모와 퍼포먼스로만 승부하는 ‘날라리 가수’가 아니라, 음악과 스타일 모두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인물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여성 팬 못지않게 남성 팬들도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그의 매력은 단순한 겉멋이 아닌,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진정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쁨은 단 하루 만에 산산이 부서졌다. 다음 날 오전, 김성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주요 타임라인


1995년 11월 20일
김성재 사망.

11월 21일 (사망 다음 날)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1차 발표: “청장년 급사증후군”
→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사실상 급성 심장 이상으로 추정하는 성급한 발표였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약 8일 후
정밀 부검 결과: 체내에서 동물용 마취제 성분 졸레틸이 검출됨.
또한 오른팔에서 약 28개의 주삿바늘 자국이 발견되어, ‘단순 급사’가 아닌 약물 관련 사망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1995년 12월 1일
한 동물병원 관계자가 “지인이 마취제 구매 사실을 숨겨달라 요청했다”는 제보를 경찰에 전달.
(이 시점은 국과수 정밀 부검 결과가 공식 발표되기 전이었기에, 제보의 신빙성을 두고 여러 의문이 제기되었다.)

1995년 12월 16일
경찰은 관련 인물을 피의자로 지목해 구속 송치했다.

김성재 사망 전날, 오른쪽 팔에는 주사자국이 없다.

https://youtube.com/shorts/xGCmZ_yIBls?si=FDfV4gAiBfr_JhI2

(이 영상에서 잔날 오른쪽 팔에 주사바늘이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볼 수 있다)


남겨진 의문점들

성급한 사인 발표

사망(11월 20일) 다음 날인 21일, 곧바로 “청장년 급사증후군”이라는 발표가 내려졌다.

정밀검사 없이 내린 결론은 수사 의지 부족 또는 은폐 논란으로 이어졌다.

고인이 마셨던 맥주와 물 같은 핵심 증거 확보 실패, 호텔 CCTV 미확보(당시 자동 덮어쓰기 시스템)도 한계로 지적된다.

일반 마약검사의 한계

졸레틸은 일반 마약검사에서 검출되지 않는다.

만약 자의적 사용이었다면 주사기·약물 흔적이 발견됐어야 하나, 현장에서 확보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전례가 드물었던 약물을 누가, 어떻게 선택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두 약물의 동시 검출

부검에서 졸레틸과 황산마그네슘이 함께 검출됐다.

두 약물이 동시에 투여될 경우 상승작용으로 치명적 효과를 낼 수 있으며, 황산마그네슘은 주사 난이도가 높다.

고인이 오른손잡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스스로 오른팔에 28차례 주사했을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도 있었다.

국제 사례와 비교

같은 해 미국에서도 졸레틸 과용 사망 사례가 보고되었다.

미국 사례에서는 졸레틸만 검출된 반면, 이번 사건에서는 황산마그네슘까지 발견되었다.

이 점 때문에 단순한 약물 중독이 아니라 ‘설계된 조합’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었다.

28개의 주삿바늘 자국

모두 오른팔에서 발견되었으며, 피하출혈 소견으로 생전 주입된 것이 확인되었다.

자의적 행위라 보기 어려운 위치·횟수·약물 조합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커졌다.

보통 마약 투약 시 발견되는 주사기·약물도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마약 사범의 경우 현장 근처에서 마약과 주사기가 모두 발견되기 마련이다.)

황산마그네슘의 개연성

23세 건강한 청년에게서 자연적으로 ‘고마그네슘혈증’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법원은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으나, 의학적 개연성은 외부 요인에 무게가 실린다는 의견이 많았다.

은폐 시도 정황

일부 증언에 따르면, 부검 결과 발표 전 약물 관련 사실을 은폐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국과수 공식 발표보다 앞선 시점이었기에, 어떻게 약물 존재를 알았는지 의문이 제기되었다.

동물병원 구매 기록의 모순

졸레틸과 황산마그네슘이 “동물 안락사용”으로 구매되었다는 기록이 있었으나, 실제 반려견은 건강했다는 점이 논란이 되었다.

구매 목적과 실제 사용 여부 사이의 불일치가 지적되었다.

사법부의 판단

1심에서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나, 2심과 대법원에서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근거로 들었지만, 모든 정황이 한 방향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사회적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결론: 29년째 이어지는 물음

김성재 사건은 단순히 한 스타의 죽음이 아니라, 사법 정의가 어디까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부검 결과와 여러 정황 증거가 있었지만, 법정에서는 “물증 부족”이라는 벽 앞에 멈추었다. 그 결과 사건은 ‘미제’로 남았고, 팬들과 유가족은 여전히 묻고 있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의 연속이었는가?

아니면 권력과 제도의 경계에서 진실이 묻힌 것인가?

당시 사회 일각에서는 여러 배경적 요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이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황산마그네슘과 졸레틸 — 결정적 쟁점


1. 황산마그네슘의 의학적 특성

정상 범위: 혈중 마그네슘은 1.58~2.55 mg/dL.

고마그네슘혈증: 2.2mEq/L 이상일 때.

자연 발생 가능성: 건강한 20대 청년의 경우 극히 낮음.

신장이 자동으로 농도를 조절해 과잉분은 소변으로 배출됨.

예외는 신장 질환자나 마그네슘 제제 장기 복용자.

부검에서는 “일반 사망자보다 높은 수치”가 확인되었으며, 외부 주입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2. 황산마그네슘 주사의 난이도

성질: 분자량이 크고, 반드시 희석해 사용해야 함.

투여 방식: 정맥으로 천천히(10분 이상) 주입해야 하며, 빠르면 심정지·호흡억제 위험.

기술적 난이도: 졸레틸과 혼합 시 침전 가능 → 정확한 농도 계산 필수.

� 의료 지식 없는 일반인이 이를 단독으로 주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 강조된다.


3. 졸레틸과의 조합

졸레틸 단독: 동물 마취제로, 사용 패턴이 비교적 명확.

졸레틸+황산마그네슘: 동물 안락사 프로토콜에 사용되는 조합으로, 치명성이 크게 높아짐.

� 사건에서 두 물질이 함께 검출되었다는 점은 단순한 약물 사용이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계된 조합을 인지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4. 왜 의심이 커졌는가

전문 지식 필요: 단순 오·남용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28회의 주사 흔적: 오른팔에서 집중 발견 → 스스로 반복 주입했을 개연성 낮음.


5. 핵심 메시지

김성재 사건은 단순히 ‘약물 중독사’로 치부되기 어려운 복합적인 정황들을 남겼다. 특히 황산마그네슘의 존재는 사건을 단순 사고가 아닌, 계획적 행위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으로까지 확장시켰다.

건강한 23세 청년의 몸에서 황산마그네슘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발견된 사실은, 여전히 이 사건이 쉽게 미제로만 남을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단서다.

남겨진 의문점들

성급한 사인 발표


사망(11월 20일) 다음 날인 21일, 곧바로 “청장년 급사증후군”이라는 발표가 내려졌다.

정밀검사 없이 내린 결론은 수사 의지 부족 또는 은폐 논란으로 이어졌다.

고인이 마셨던 맥주와 물 같은 핵심 증거 확보 실패, 호텔 CCTV 미확보(당시 자동 덮어쓰기 시스템)도 한계로 지적된다.


일반 마약검사의 한계


졸레틸은 일반 마약검사에서 검출되지 않는다.

만약 자의적 사용이었다면 주사기·약물 흔적이 발견됐어야 하나, 현장에서 확보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전례가 드물었던 약물을 누가, 어떻게 선택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두 약물의 동시 검출


부검에서 졸레틸과 황산마그네슘이 함께 검출됐다.

두 약물이 동시에 투여될 경우 상승작용으로 치명적 효과를 낼 수 있으며, 황산마그네슘은 주사 난이도가 높다.

고인이 오른손잡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스스로 오른팔에 28차례 주사했을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도 있었다.


국제 사례와 비교


같은 해 미국에서도 졸레틸 과용 사망 사례가 보고되었다.

미국 사례에서는 졸레틸만 검출된 반면, 이번 사건에서는 황산마그네슘까지 발견되었다.

이 점 때문에 단순한 약물 중독이 아니라 ‘설계된 조합’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었다.


28개의 주삿바늘 자국


모두 오른팔에서 발견되었으며, 피하출혈 소견으로 생전 주입된 것이 확인되었다.

자의적 행위라 보기 어려운 위치·횟수·약물 조합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커졌다.

보통 마약 투약 시 발견되는 주사기·약물도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황산마그네슘의 개연성


23세 건강한 청년에게서 자연적으로 ‘고마그네슘혈증’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법원은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으나, 의학적 개연성은 외부 요인에 무게가 실린다는 의견이 많았다.


은폐 시도 정황


일부 증언에 따르면, 부검 결과 발표 전 약물 관련 사실을 은폐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국과수 공식 발표보다 앞선 시점이었기에, 어떻게 약물 존재를 알았는지 의문이 제기되었다.


동물병원 구매 기록의 모순


졸레틸과 황산마그네슘이 “동물 안락사용”으로 구매되었다는 기록이 있었으나, 실제 반려견은 건강했다는 점이 논란이 되었다.

구매 목적과 실제 사용 여부 사이의 불일치가 지적되었다.


사법부의 판단


1심에서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나, 2심과 대법원에서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근거로 들었지만, 모든 정황이 한 방향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사회적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서 우리는 황산마그네슘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황산마그네슘 투여량과 치명성

구매 정황: 사건과 관련해 졸레틸(3.5g)과 함께 황산마그네슘이 동물병원에서 판매된 기록이 언급되었는데, 이는 단순 마취 목적을 넘어 동물 안락사 프로토콜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의문을 남긴다.

부검 결과 수치:

소변: 281.5ppm

혈액: 67.8ppm
→ 일반 사망자 평균(혈액 48.459.7ppm, 소변 18.251.8ppm)에 비해 최대 15배 높은 수치였다.

의학적 해석: 젊고 건강한 성인에게서 이런 수치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또한 황산마그네슘은 단순 주입이 아니라,

반드시 희석 후 사용,

10분 이상 천천히 정맥 주사,(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전문가가 아니고 일반인이 정맥주사를 본인 스스로 주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농도·속도 계산이 필요해 전문 의료 지식이 없이는 시행하기 어렵다.

이러한 점은 단순 사고보다는 준비된 행위일 수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사건이 던지는 의미

황산마그네슘의 고난도 조작성, 비정상적으로 높은 검출 수치, 졸레틸과의 병용, 그리고 28회의 주사 흔적까지 종합하면, 이 사건은 여전히 많은 질문을 남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취소, 그 의미


1995년 김성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의문투성이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29년이 지난 지금도 ‘미제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현대의 과학수사 기법과 새로운 증언을 통해 사건을 다시 조명하려 했다. 하지만 방송 예고 직후, 법원의 방송금지 가처분이 인용되면서 두 차례나 취소되었다.

이는 단순히 한 방송의 취소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진다.

국민의 알 권리는 어디까지 보장되는가?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권리, 그 균형은 어떻게 맞추어야 하는가?

‘무죄 판결 이후’ 사건에 대한 재조명이 왜 이토록 민감하게 다뤄져야 하는가?

방송금지 가처분, 보통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방송금지 가처분은 언론 보도가 당사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을 때 신청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 기각된다. 왜냐하면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 자유국민의 알 권리가 더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로, JMS 교단이 MBC·넷플릭스를 상대로 〈나는 신이다〉 방영을 막으려 했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사회적 파장이 크고, 공익성이 더 우선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성재 사건이 보여준 예외적 상황


하지만 김성재 사건은 달랐다. 이미 법정에서 공방이 있었고 판결이 내려진, 즉 공개된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방송은 막혔다.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로 방송이 봉쇄된 것이다.

보통은 “공익성 & 개인 명예”라는 원칙이 적용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개인 명예 & 국민의 알 권리”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는 언론 자유와 공익성의 일반적 흐름과는 정반대되는 결과다.

특수성과 의문점

공개된 사건임에도 불구

무죄 판결은 “증거 불충분”일 뿐, “사건의 진실이 규명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 자체가 차단된 점은 의문을 남긴다.


2019년, 두 차례의 방송 취소

사건 발생 24년 후, 사회적 재조명과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

두 번 연속으로 방송이 막혔다는 것은 단순한 ‘명예 보호’를 넘어선 다른 맥락이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선례 효과

“김성재 사건처럼 방송을 막을 수 있다”는 학습 효과가 다른 사회·연예계 사건에도 이어질 수 있다.

피해자 가족의 입장에서는 진실을 밝힐 기회가 또다시 박탈된 셈이다.


사회 정의의 관점에서 본 의미

29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실은 법정 밖에서 멈춰 서 있다. 법적으로는 “무죄”라는 판결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존재한다.

언론의 역할은 바로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이다. 사회가 성찰할 기회를 주고, 미해결된 사건에 다시 한 번 빛을 비추는 것. 그러나 방송금지 가처분으로 인해 이 사건은 공론장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 결과, 피해자의 목소리는 사라졌고, 대중은 이 사건을 “말할 수 없는 기억”으로만 남기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방송의 취소가 아니라, 역사적 침묵을 의미한다.

✍️ 결론적으로, 김성재 사건은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명예 보호 사이의 균형이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놓았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묻고 답해야 할 것은 명확하다. 법이 진실을 규명하지 못했을 때, 언론까지 봉쇄된다면 과연 역사는 어디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는가?

가장 최악은 경찰의 초동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 초동수사의 미흡

CCTV 미확보
당시 호텔 CCTV가 자동 덮어쓰기 방식이었는데, 경찰이 제때 확보하지 않아 사라짐.
→ “증거 보존”에 대한 경찰의 기본적인 의무가 소홀했다는 대표적인 사례.

맥주·물 확보 실패
김성재가 마셨던 밀러 맥주와 물조차 증거로 채취하지 못함.
→ 만약 약물이 혼합되었다면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였는데, 경찰이 놓침.


2. 사건 기록 관리의 허술함

당시 마약 관련 특수약물 검사 체계 부재로 인해 졸레틸이 초기에는 아예 검출되지 않았음.

이 때문에 ‘청장년 급사증후군’이라는 성급한 결론을 먼저 내렸고, 이후 뒤늦게 사건의 성격이 바뀜.


3. 제도적 한계 강조

1990년대 당시 한국의 과학수사 역량 부족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

이후 “왜곡된 수사 → 미비한 증거 확보 → 재판에서 증거능력 부족”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짐.

이것이 단순히 한 연예인의 죽음이 아니라 한국 수사·사법 제도의 허점을 드러낸 대표 사례임을 보여줄 수 있음.

“만약 경찰이 초기부터 CCTV를 확보하고, 김성재가 마셨던 맥주와 물을 증거로 남겼더라면 사건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기본적인 조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초동수사의 허술함은 결국 진실 규명을 막았고, 지금까지도 이 사건을 ‘미제’라는 이름 아래 방치하게 만들었다.”


결론 — 봉쇄된 진실, 그러나 남겨진 질문

김성재 사건의 방송 취소는 단순히 한 프로그램의 불발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언론 자유를 보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며, 동시에 피해자 가족과 국민이 가질 수 있는 알 권리에 대한 문제다. 만약 진실이 명확하다면, 오히려 방송을 통해 “오해를 풀고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이 막혔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권력과 정의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전관예우, 정의를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 — 김성재 사건이 남긴 질문


법의 심판대 위에 선 것은 범인만이 아니었다
1995년 김성재의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수사와 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남은 물음표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법 제도와 수사의 신뢰를 향했다. 법정은 정말로 사실과 증거만을 바라보고 있었는가, 아니면 제도적 한계와 권력의 영향을 받았는가?


전관 출신 변호인의 존재가 던진 질문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판결은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무죄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전관 출신 변호인이 사건을 맡았다는 사실은 사회적 의혹을 낳았다. 판결은 법리적으로 설명되었지만, 대중은 본능적으로 “만약 전관이 아니었다면 결과가 같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전관예우, 법의 신뢰를 좀먹다
전관예우는 단순히 전직 판사 출신이 법리에 밝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때로는 눈빛 하나, 묵시적 신뢰, 알 수 없는 기류가 결과에 영향을 준다는 인식이 쌓인다. 국민의 시선에서 이는 ‘법리’가 아니라 ‘네트워크’의 문제로 읽히곤 했다. 김성재 사건은 한국 사회에 물었다.
법정은 정말 증거와 진실만을 바라보는가?
아니면 누가 어떤 변호인을 선임했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가?

정의는 결국 믿음을 먹고 산다
김성재의 죽음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다. 그러나 그 미스터리보다 더 무거운 건, 법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는 사실이다. 법이 공정하지 않다는 불신은 사회를 병들게 한다. 전관예우는 법 제도의 특권일 뿐 아니라, 정의를 가장 깊이 흔드는 독이기도 하다.

29년이 지난 지금도, 김성재라는 이름은 우리 사회에 묻는다.

“법은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

� 김성재, 끝나지 않은 이야기 — 기억과 정의를 잇는 약속

(올해 11월 20일은 김성재의 추모 30주년이다.)

김성재 사망 사건은 결코 이 시대에서 끝날 수 없는 이야기다. 범인은 잊을지 몰라도, 우리 사회가 잊지 않고 지켜보아야 할 진실이 여전히 남아 있다. 나는 듀스와 김성재의 음악을 여전히 가게에서 틀고, 내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아이들이 “이 사람이 누구야?”라고 물을 때, 나는 단순히 가수였다고만 답하지 않는다. 그가 왜 떠나야 했는지, 어떤 의문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까지 들려준다. 그 이야기를 내 자식들이 기억하길, 그리고 우리 모두가 여전히 관심을 가져야 함을 깨닫길 바라면서 말이다.


김성재의 왼쪽 귀에는 늘 두 개의 귀걸이가 걸려 있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그게 하나의 약속처럼 이어졌다. 나 역시 언젠가부터 왼쪽 귀에 두 개의 귀걸이를 하고 다닌다. 첫째가 “엄마, 왜 귀걸이를 두 개 했어?”라고 묻길래,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엄마가 좋아하던 가수가 김성재인데, 그를 따라한 거야.” 그러자 아이는 망설임 없이 “나도 엄마 따라할래” 하며 왼쪽 귀에 귀 하나를 더 뚫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김성재의 이야기는 이렇게 또다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나의 입에서, 아이의 입에서,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또 다른 세대의 입에서도 회자되며 살아남을 것이라는 것을.


그는 가장 아름다운 나이에, 가장 빛나는 순간에 우리 곁을 떠났다. 어느덧 올해 11월이면 30주기다. 나는 그를 30년 넘게 기억했고, 아직도 잊지 못한다. 팬이라서일까. 그의 생일(4월 18일)이나 기일(11월 20일)을 앞두고는 어김없이 꿈에 나타나 환하게 웃는 그를 본다.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죄스럽다. 팬으로서 아무것도 지켜주지 못했다는 무력감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기록하고 전하려 한다.


내 글은 너무 길었지만 사실 그의 이야기를 다 담지도 못했다. 오히려 담아내려 노력했기에 줄어든 것일 뿐이다. 가끔 삶이 힘들 때면 나는 문경새재로, 또 분당 메모리얼 파크로 향한다. 그곳에 가면 늘 흰 나비가 날아와 내 무릎 위에 앉는다. 늘 같은 자리, 늘 같은 순간. 그때마다 눈물이 쏟아진다. 마치 김성재가 여전히 여기 있다는 듯, 그가 우리 곁에 있다는 듯 느껴진다.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어쩌면 나는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1990년대의 전관예우, 미흡한 과학수사, 그리고 불완전한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희생되었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더 다른 시각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싶어 이 글을 쓴다.

혹시 누군가 나에게 이 글을 지우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요청을 접어두겠다. 나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이 글을 썼다. 언론이 침묵해도, 법이 막아도, 국민의 기억은 지울 수 없으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이 나라가 여전히 정의를 믿을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을 한 번 더 믿어보고 싶다.

김성재는 떠났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를 기억하는 우리의 귀걸이,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눈물 속에서. 그래서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이다.


김성재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 가수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정의가 얼마나 쉽게 침묵할 수 있는지, 권력이 어떻게 진실을 가릴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과연 이 사회에서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묻는 행위다.

29년 전 미제로 남겨진 사건은 이제 개인의 상처가 아니라 사회적 과제다. 법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물러섰지만,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고, 국민은 여전히 해답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김성재라는 이름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와 진실 앞에서 우리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의 문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다. 정의는 법정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묻고 요구하는 사람들의 끈질긴 목소리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라고. 우리가 잊지 않고 계속 질문한다면, 권력과 시간이 가려낸 어둠 속에서도 언젠가 빛은 반드시 스며든다.

김성재의 이름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한 시대의 음악을 상징하는 이름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외면한 진실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은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질문이다. “정의는 과연 살아 있는가?” 그 물음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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