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 볼차의 웃음은 누가 사는가

아가로 커피 산지 여성과 아이들의 노동, 그리고 감정의 가격

by 유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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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커피를 마실 때 그 향을 먼저 말한다.
“꽃향기”, “살구”, “꿀” 같은 단어들이 카페의 메뉴판을 채운다.
하지만 그 향을 만들어낸 손과, 그 손끝에 맺힌 표정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커피가 일상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도 사실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다.
나 자신만 돌아봐도 하루에 한 잔, ‘1일 1커피’를 습관처럼 마시기 시작한 게 불과 2015년 즈음이었다.

그동안 나는 커피를 마실 때 이 원두가 어디서 왔는지, 누가 그것을 따고 말리고 손질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앞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문득 찾아온 호기심이 나를 이 글로 이끌었다.
모든 원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누군가는 새벽부터 땅을 일구고, 손으로 열매를 따내고, 웃음을 강요당하며 이 커피의 첫 단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단순한 감사의 마음을 넘어선 어떤 먹먹함이 가슴 안으로 스며들었다.

에티오피아 지므마 지역, 아가로 인근의 콜라 볼차. 이 이름은 스페셜티 커피 애호가들에게는 하나의 브랜드처럼 들리지만, 현지 여성과 아이들에게는 계절마다 반복되는 고된 노동의 기억이다. 그곳에서 매일 수확되는 것은 체리만이 아니다. 억지로 지어야 하는 웃음, 아이들의 결석, 그리고 여성들의 시간까지 함께 수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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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확철, 이름보다 먼저 불리는 노동

수확기는 10월에서 1월.
아직 초등학생일 나이의 아이들이 교실 대신 밭으로 불려 나온다. 법은 만 15세 미만의 아동 노동을 금지한다고 하지만, 수확철에는 예외가 일상이 된다. 교과서보다 먼저 손에 쥐어지는 것은 체리를 담는 자루다. 아이들의 이름은 출석부보다는 건조대에서 더 자주 호명된다.

이 아이들은 열두 살, 열세 살의 어깨로 커피 자루를 짊어진다. 교실에서 배워야 할 글자 대신, 체리를 따는 손놀림을 먼저 익힌다. 결석은 반복되고, 학습은 뒤처진다. 하지만 부모에게 아이의 노동은 생존과 직결된다. 결석은 죄책감보다도 “이번 주에 쌀을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대체된다.

여성들의 하루는 더 길다. 새벽부터 밭으로 나와 체리를 따고, 한낮에는 건조대에서 체리를 뒤집는다. 그 손길 하나하나가 품질을 결정짓는다. 하지만 그 기여는 가격표에 기록되지 않는다. 저녁이 되면 집안일이 또다시 시작된다. 불을 지피고, 옥수수를 삶고, 아이들을 씻기고, 빨래를 한다. 생산노동과 재생산노동이 겹쳐진 하루는, 여성의 시간을 끝까지 쥐어짜며 마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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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웃음을 규격화하는 산업

워싱스테이션에 커피를 가져가면, 여성들은 또 다른 노동에 투입된다. 바로 감정노동이다. 가격 협상 자리에서 화를 내거나 표정을 굳힐 수는 없다. “체리가 덜 익었다”는 평가를 들어도, 낮은 단가가 제시되어도, 반드시 미소를 유지해야 한다. 웃음은 커피 체리보다 먼저 거래의 조건으로 내놓아야 하는 자원이다.

감정노동이란,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에 맞게 감정을 관리하고 표현하는 일이다. 서비스업에서 흔히 강조되는 이 개념은, 사실 농촌의 시장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콜라 볼차의 여성들은 단순히 커피를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웃음과 친절까지 함께 납품한다. 바이어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다음 거래를 보장받기 위해서다.

이 웃음은 개인의 성격이나 기분이 아니라, 산업이 규격화한 표정이다. 몸은 밭에서 쓰이고, 마음은 시장에서 쓰인다. 노동의 이중 소비가 일어나지만, 그 비용은 여성 개인이 감당한다. 분노와 피로, 좌절을 숨기느라 지불되는 심리적 비용은 건강과 존엄에서 빠져나간다. 그러나 그 어떤 가격표에도 이 비용은 기록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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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학교와 수확기의 충돌

에티오피아의 초등 순등록률은 88.7%까지 올랐다. 통계로 보면 교육 접근성이 향상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학교 출석률은 여전히 낮고, 농촌 여아들의 학업 지속률은 더 취약하다. 특히 수확철이면 결석과 지각이 급증한다.

교실에서 공부해야 할 시기에, 아이들은 밭에서 체리를 따거나 집안일을 돕는다. 교사 부족, 먼 통학거리, 위생시설 부재, 사춘기 여아를 위한 배려 부족, 심지어 성희롱 문제까지 교육권을 위협한다. 특히 농촌의 여아는 “학교에 가는 것보다 집안일을 돕는 것이 우선”이라는 인식 속에서 자라난다.

건조대와 교실은 같은 달력 위에 놓여 있지만, 서로 다른 종소리를 울린다. 학교의 종은 배움을 알리지만, 수확철의 종은 노동을 명령한다. 결국 아이들은 배움과 노동 사이에서 갈라지고, 교육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지만 현실에서는 가장 쉽게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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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격표에 빠진 것들

국제 시장에서 콜라 볼차 커피는 화려한 언어로 묘사된다. “꽃향기”, “복숭아”, “꿀” 같은 단어들이 향미를 설명한다. 하지만 이 언어 뒤에는 여성의 과잉노동, 아이들의 결석, 웃음을 강요당하는 감정노동이 숨어 있다.

노동의 젠더 편향은 가격에 반영되지 않는다. 여성들은 생산량과 품질, 안정성에 기여하지만, 대금 수령과 사용 결정권은 종종 남성에게 돌아간다. 여성은 가계소득 증가의 조건으로 존재할 뿐, 진정한 수혜자는 되지 못한다.

국제 시장은 커피의 향을 세분화할수록, 그 향을 만들어낸 손과 표정에 대한 이야기는 더 얇아진다. 가격은 향미를 담지만, 노동의 존엄과 감정의 비용은 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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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법의 문장과 밭의 현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아동 노동 퇴치와 교육 확대를 위한 정책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법의 문장과 밭의 현실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 법적으로 최저 고용연령은 만 15세이지만, 수확철마다 10살 남짓한 아이들이 밭에서 일한다. 국제 권고 기준과 불일치하는 유해작업 연령 규정, 의무·무상교육의 불명확함, 노동감독 인력과 예산의 부족은 구조적 문제로 남아 있다.

문장 속에서는 권리가 보장되지만, 밭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이 결석하고, 여성들이 웃음을 노동으로 지불한다. 법과 제도의 빈틈이 채워지지 않는 한, 이 현실은 반복된다.


웃음을 노동으로 인정할 때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에는 풍미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여성들의 시간, 아이들의 이름이 빠진 출석부, 규격화된 웃음이 녹아 있다. 우리는 종종 향과 맛을 소비하지만, 그 뒤에 있는 인권과 존엄의 비용은 보지 않는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변화다.

여성의 소득 통제권과 의사결정권을 조합 규약과 계약서에 명문화해야 한다.

워싱스테이션과 시장에서의 감정노동 시간을 노동으로 인정하고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수확기와 학사일정의 충돌을 완화하기 위해, 교육 당국과 조합이 협력해 보충수업과 통학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 바이어와 소비자는 향미표 뒤에 숨겨진 노동과 젠더, 교육 지표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

웃음을 ‘서비스’가 아니라 노동으로 인정할 때, 커피의 가격은 비로소 향미뿐 아니라 인권과 존엄의 비용을 담게 된다. 그때 우리는 억지 웃음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존중의 맛을 마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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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에는 단순한 향과 맛 이상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콜라 볼차의 여성과 아이들이 흘린 땀, 그들이 감춘 표정, 억지로 지어야 했던 웃음까지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커피의 가격표에는 “꽃향기, 꿀, 초콜릿” 같은 언어만 남지만, 그 뒤편에는 수확철마다 교실을 비운 아이들의 이름, 가정과 밭을 동시에 지켜야 했던 여성들의 하루가 숨겨져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우리가 소비자로서 바라보지 못했던 부분을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카페에서 한 잔의 커피를 선택할 때, 그 커피가 어디서 왔는지,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작은 연대이자 변화의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연애와 결혼이 희생과 배려로 유지되듯, 세계의 공급망 또한 누군가의 희생과 배려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희생이 당연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여성의 노동, 아이들의 배움, 웃음의 강요가 ‘보이지 않는 비용’으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그 비용을 드러내고, 존중과 정의로 채워 넣어야 합니다.

커피의 맛은 결국 사람이 만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지켜야 할 권리와 존엄이 존중받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풍미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그 잔 속에서 누군가의 억지 웃음이 아니라 진짜 웃음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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