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성의 모발 규제와 정체성

머리카락도 인권입니다.

by 유다람

머리카락에 새겨진 차별과 존엄 — 흑인 여성의 모발이 말해주는 것

아침의 거울 앞, 한 여성이 뜨겁게 달궈진 고데기를 든다.
철판이 머리카락을 스칠 때마다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코끝에 탄 냄새가 퍼진다.
타들어가는 건 머리카락만이 아니다. 그 순간, 그녀의 정체성도 함께 눌리고 지워진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냥 단정해 보이려고 그러는 거잖아.”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사회가 강요한 냉혹한 기준이 숨어 있다.
왜 그녀는 태어난 그대로의 머리로 학교에 들어갈 수 없고, 직장에서 환영받을 수 없는가?
왜 곱슬거림은 부정되어야 하고, 직모만이 표준이 되는가?

머리카락은 단순한 머리카락이 아니다

흑인 여성에게 머리카락은 단순히 외모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이고, 정체성이며, 자존심과 자유다.
아프로, 브레이드, 드레드락 같은 스타일은 패션이 아니라, 뿌리를 잇는 문화적 선언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서구 사회는 이를 ‘단정하지 않음’, ‘비문명적’이라고 규정했다.
머리카락은 단백질일 뿐이지만, 그 위에 차별과 억압의 기호가 덧씌워졌다.


역사 속에 뿌리내린 차별

노예제 시절, 백인 주인들은 아프리카 노예들의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스카프와 두건으로 가리게 했다.
그것은 단순한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 지우기였다.
머리카락 속에 담긴 문화적 상징을 없애야 더 철저히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식민주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직모는 ‘문명’의 상징으로, 곱슬머리는 ‘미개함’의 증거로 낙인찍혔다.
결국 백인의 기준이 보편으로 둔갑하면서, 흑인의 머리카락은 교정 대상이 되었다.


실제 존재하는 차별 사례들

1. 남아프리카공화국

2016년, 프리토리아 고등학교에서 아프로 스타일을 한 여학생들은 교문 앞에서 제지당했다.
“단정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학생들은 거리로 나와 “StopRacismAtPretoriaGirlsHigh”라는 운동을 벌였고,
전 세계 언론이 이를 주목했다.
그러나 지금도 일부 교칙은 여전히 남아 있다.

2. 미국

켄터키 고등학교에서는 드레드락과 코른로우를 금지했다.
텍사스에서는 드레드락을 유지한 학생이 졸업식에 오르지 못했다.
이 사건들은 결국 CROWN Act라는 법 제정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아직 모든 주에서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3. 영국

영국에서도 브레이드와 아프로 헤어를 이유로 학교에서 퇴학이나 정학을 당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교사는 “규정 위반”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그것은 인종차별이었다.

4. 자메이카

2018년, 다섯 살 여아가 드레드락을 했다는 이유로 등교를 거부당했다.
법정에서는 아이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머리 때문에 학교에 갈 수 없는 현실”은
전 세계인의 공분을 샀다.

5. 미국 군대

한때 미군은 드레드락과 굵은 코른로우, 트위스트를 금지했다.
‘단정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군대조차 흑인의 정체성을 제도적으로 억눌렀던 것이다.

6. 일본

2022년까지 일본의 일부 공립학교는 자연 갈색 머리 학생에게도 검은색으로 염색할 것을 요구했다.
머리색조차 획일화하는 규정은 다양성을 거부하는 사회적 민낯을 드러낸다.


왜 이런 규제가 이루어지는가 — 더 깊은 이유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잔재
머리카락 규제는 단순히 외모 단속이 아니라, 식민 지배가 남긴 흔적이다.
유럽 제국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외모를 ‘보편적 기준’으로 세웠다.
직모, 하얀 피부, 얇은 코 — 이것이 ‘문명’의 상징이 되었고,
곱슬머리와 검은 피부는 ‘교정해야 할 미개함’으로 낙인찍혔다.
이런 관점은 단순한 편견을 넘어, 제도와 법, 교칙, 규율 속에 스며들었다.


동화 정책(同化政策)
서구 사회와 식민 국가들은 피지배자들을 ‘동화’시키려 했다.
즉, 흑인 아이들이 백인의 기준에 맞도록 교육받아야 ‘문명화’된다는 논리였다.
학교에서 머리를 규제하는 것은 바로 그 동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네 머리 모양은 문명사회에 어울리지 않으니 고쳐라.”
그렇게 해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도록 길들여졌다.


노동 시장과 경제적 차별
직장 면접에서 자연 곱슬머리를 하고 나타난 흑인 여성은 종종 “비전문적이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경제적 차별로 직결된다.
고데기를 하거나 가발을 써야 면접에서 유리하다면,
그만큼의 비용과 건강상의 부담은 모두 흑인 여성의 몫이 된다.
머리카락은 단순한 미적 기준을 넘어서 경제적 기회의 장벽이 되어버린 것이다.


‘단정함’과 ‘프로페셔널’의 왜곡된 의미
학교와 직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단정함.”
그러나 그 단정함의 기준은 보편적이지 않다.
백인의 직모는 아무런 설명 없이도 단정함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흑인의 아프로나 브레이드는 “관리되지 않은 것”으로 분류된다.
같은 현실을 두고 다른 잣대가 적용되는 것이다.
이는 언어로 포장된 차별, 즉 규범 속에 숨어 있는 인종주의다.


사회적 동일화 압력
인간은 다수에 동화되려는 심리가 있다.
‘다른 것’은 쉽게 배제되고, ‘비슷한 것’이 안전하다고 여겨진다.
이런 심리는 제도와 결합하면서 더욱 강력한 압력이 된다.
그래서 소수자는 머리카락마저 다수의 기준에 맞추어야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
고데기를 들고, 화학 약품을 바르는 행위는 단순한 미용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된다.


문화적 무지와 침묵
많은 이들이 흑인 여성의 머리카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왜 브레이드를 하는지, 왜 드레드락을 유지하는지,
그것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정체성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한 다수는 불편을 느끼고, 그 불편은 규제로 이어진다.
침묵하는 제도는 결국 차별을 고착화한다.


대한민국 독자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질문

사실 한국 사회에도 이런 흔적이 있었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두발 규제를 강하게 받았다.
머리카락 길이가 조금만 길어도, 교사는 가위로 잘라냈다.
학생들이 원치 않아도 “단정해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머리카락은 잘려나갔다.

이 기억은 우리에게 중요한 연결 고리를 제공한다.
머리카락을 통제한다는 건 곧, 개인의 자유와 존재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논리가 인종과 문화 차별에까지 이어진다면,
그것은 단순한 생활 규정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이 된다.


건강을 해치는 강요 — 더 깊은 이야기

흑인 여성들의 머리카락은 단순히 미적 문제를 넘어서, 건강과 생명의 문제로 이어진다.
많은 흑인 여성들이 사회적 압력에 의해 고데기와 화학 제품을 사용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머리카락만 손상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화학 스트레이트너(릴랙서)의 위험

‘릴랙서(relaxer)’라고 불리는 화학 스트레이트너는 곱슬머리를 억지로 펴는 데 쓰인다.

이 약품에는 포름알데히드, 프탈레이트, 파라벤 등 인체 유해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장기간 사용할 경우, 두피 화상, 탈모, 모발 손상은 물론이고, 자궁근종·호르몬 교란·암 발생 위험과 연관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연구에 따르면, 화학 스트레이트너를 자주 사용하는 흑인 여성들에게 자궁암 발병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더 높게 나타났다.


뜨거운 고데기와 두피 손상

매일 아침 수백 도로 달궈진 고데기를 머리에 대는 건, 두피를 불에 지지는 것과 같다.

반복될수록 모낭은 약해지고, 머리카락은 더 얇아진다.

어떤 여성들은 20대에 이미 심각한 탈모를 겪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는 그들에게 묻지 않는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대신 “왜 머리를 관리하지 않느냐?”고만 말한다.


가발과 위생 문제

많은 흑인 여성들은 사회적 기준을 맞추기 위해 가발을 착용한다.

하지만 가발을 장시간 쓰면 통풍이 되지 않아 두피 건강이 악화되고, 곰팡이나 세균 감염 위험이 커진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을 지키는 것이 가장 건강하고 경제적이지만, 사회적 낙인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심리적 건강의 손상

더 큰 문제는 육체적 손상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억지로 펴는 과정은 곧 자기 부정의 과정이기도 하다.

매일 거울 앞에서 “나는 있는 그대로는 안 된다”라는 메시지를 몸에 각인시키는 행위다.

이는 우울감, 낮은 자존감, 자기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머리카락 차별은 단순한 외모 규제가 아니라, 정신 건강까지 위협하는 사회적 폭력이다.


정체성과 존엄의 문제 — 더 깊은 이야기

머리카락은 잘라낼 수 있다. 그러나 정체성은 잘라낼 수 없다.
머리카락은 눌러 펼 수 있다. 그러나 존엄은 눌러 펼 수 없다.

흑인 여성들에게 머리카락은 단순한 패션이나 스타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언어이며, 역사의 흔적이자 문화의 기호다.


역사의 기억

아프로 헤어는 아프리카 공동체의 자부심이 담긴 전통이었다.

노예제 시대에 강제로 잘려나갔던 머리카락은 곧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폭력의 도구였다.

그래서 오늘날 흑인 여성들이 아프로를 선택하는 것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나는 더 이상 지워지지 않겠다”라는 역사적 선언이다.


존재의 상징

드레드락, 브레이드, 트위스트는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다.

한 가닥, 한 가닥 엮어내는 그 과정에는 자신을 돌보고, 지켜내려는 의지가 담긴다.

그것은 “나는 태어난 그대로 존엄하다”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다.


문화적 자존심

흑인 여성의 머리카락은 음악, 예술, 문학에서도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해왔다.

재즈와 소울, 힙합의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흩날리는 아프로 헤어는 억압에 맞서는 저항의 깃발이었다.

머리카락은 곧 정체성과 문화의 ‘깃발’이 된 것이다.


자존감과 자기 수용

그러나 사회는 끊임없이 말했다. “너의 머리는 단정하지 않아.”

아이들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머리를 부끄러워하게 되고,
고데기와 약품을 들이대며 매일 자신을 교정해야 했다.

결국 머리카락 규제는 한 사람의 자존감을 파괴하는 일상적 폭력으로 작동한다.


철학적 차원에서의 존엄

존엄(dignity)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이 존중받는 것”이다.

존엄은 외부의 기준에 따라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인정받는 권리다.

머리카락이 이유가 되어 존엄이 부정된다면,
그것은 곧 인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흑인 여성들의 머리카락은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나다”라는 선언이고, “나는 존재할 권리가 있다”는 외침이다.
따라서 머리카락을 규제하는 것은 곧 정체성을 억압하고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다.

한국 독자에게

대한민국 사람들은 묻는다.
“머리 때문에 왜 차별을 받아?”
“그냥 펴면 되는 거 아냐?”

그러나 만약 한국 사회에서 “쌍꺼풀 없는 눈은 단정하지 않다”,
“검은 머리는 프로답지 않다”라는 규정이 생긴다면 어떨까?
억지로 성형과 염색을 해야만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단순한 규정이라 넘길 수 있을까?

한국에도 두발 규제가 있었다.
학생들은 머리카락 길이와 색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다.
그때 많은 청소년들이 느낀 불합리함은, 흑인 여성들이 지금 겪는 억압과 닮아 있다.

머리카락은 결국 존재 자체를 규정하는 권력의 언어다.


왜 지탄받아야 하는가

머리카락 규제는 단순히 미의 기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을 억압하는 폭력이고,
건강을 해치는 구조적 차별이며, 존엄을 부정하는 제도다.

머리 때문에 교실에서 쫓겨나고, 머리 때문에 직장을 잃고,
머리 때문에 아이가 학교를 포기해야 하는 사회는 정의롭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문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머리카락을 규제하는 사회는 결국 다양성을 거부하는 사회이고,
그 사회는 인간 존엄의 토대를 무너뜨린다.

우리가 해야 할 일 — 해결의 길


인식의 변화부터 시작하기

차별은 법과 제도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우리의 눈빛과 말 한마디에도 스며 있다.

머리카락을 보고 “지저분하다” “단정하지 않다”라는 말 대신, 그 자체로 존중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다른 문화와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첫걸음이다.


교육 현장에서 다양성 가르치기

학교는 가장 먼저 변화해야 할 공간이다.

아이들이 머리카락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교과 과정 안에서 다양한 인종·문화적 외모의 의미를 가르칠 수 있다.

두발 규제 대신 “자기 표현의 자유와 책임”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법과 제도의 개선

미국의 CROWN Act처럼, 자연스러운 머리카락을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법이 필요하다.

프랑스와 영국도 이제 차별 금지법을 논의하고 있다.

제도가 뒷받침되어야만 사회의 기준이 바뀌고,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다.


건강한 뷰티 산업으로의 전환

화학 약품과 고데기에 의존하지 않아도, 흑인 여성의 자연 모발이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도록 안전한 제품과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기업도 소비자에게 건강과 존중을 우선시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한국은 단일 민족 사회라는 이유로 차별 문제에 둔감하지만,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다.

이주 여성,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머리카락과 외모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교사, 직장 상사, 부모가 먼저 언어와 시선을 바꾸면, 아이들은 훨씬 더 자연스럽게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렵지 않다.
다름을 존중하는 눈빛, 차별 없는 언어, 그리고 제도를 통한 보장.
이 세 가지가 함께할 때, 머리카락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아이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머리카락은 장식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곱슬거림은 흉함이 아니라 뿌리다.
브레이드와 드레드락은 게으름이 아니라 자존심이다.

나는 믿는다.머리카락 때문에 쫓겨나는 아이가 없는 세상,
머리카락 때문에 직장을 잃지 않는 세상, 머리카락 때문에 존재가 억압되지 않는 세상.

그 세상은 반드시 와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고 전하는 것이다.
작은 목소리라도, 작은 글이라도, 그 세상을 앞당기는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2화SNS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