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댓글, 자유인가 폭력인가?

by 유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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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댓글이 누군가의 마지막이 됩니다.


1. 90년대, 아직 인터넷이 없던 시절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연예인의 자살 소식은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1990년대는 인터넷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댓글이 순식간에 달리고, 누군가의 일상이 실시간으로 퍼져나가던 세상이 아니었다. 그때는 주로 앨범에 대한 부담감, 무대에서의 실패, 연예계 내부의 압박 같은 것들이 큰 원인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가수 장덕의 소식을 뉴스에서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천재 싱어송라이터였던 그녀는 28살이라는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엔 악플이나 인터넷 공격이 아니라, 오빠 장현의 투병, 음악 활동에 대한 부담, 그리고 수면제와 약물의 복합적 문제들이 겹쳐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는 “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는 현실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중학교 시절에는 서지원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그 시절에는 누구나 좋아하는 발라드 가수였고, 내 또래들도 그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런데 그는 20대 초반, 불과 스무 살 언저리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때라, ‘악플’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를 짓눌렀던 건 “다음 앨범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압박이었다.

그 시절, 연예인의 죽음은 주로 자신에게 가해진 기대치와 압박이 원인이었다. 그들의 고통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팬들은 단지 신문기사 한 줄로 소식을 접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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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터넷 시대, 악플이라는 새로운 칼


시간이 흘러 2000년대가 되면서 세상은 달라졌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포털사이트가 등장하고, 댓글 창이 열렸다. 이제 연예인들은 단순히 기자와 기획사 앞에서만 평가받는 게 아니었다. 이름을 검색하면 수백 개의 글과 댓글이 쏟아졌다.

좋은 말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빠르고 더 강렬하게 퍼지는 건 비난과 조롱이었다.

“못 생겼다.”

“연기 못 한다.”

“왜 아직도 방송에 나오냐.”

짧은 한 줄, 하지만 그 말은 칼보다 더 깊게 베였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비극은 최진실이었다.

국민 배우라 불리던 그녀조차 인터넷 루머와 악성 댓글을 피하지 못했다.

2008년,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회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그 사건은 악플이 단순한 말싸움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전국민이 깨닫게 만든 계기였다.

그 후에도 비슷한 비극은 반복됐다.

유니 — 데뷔 초부터 외모와 활동을 두고 수많은 조롱과 악플에 시달리다 결국 2007년 세상을 떠났다.

설리 — 아이돌로 데뷔해 배우로 활동했지만, 그녀가 조금만 다른 선택을 할 때마다 인터넷은 들끓었다. ‘이상하다’, ‘왜 저러냐’라는 조롱 속에서 결국 그는 25살에 생을 마감했다.

구하라 — 밝고 건강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온갖 악플과 사생활 논란에 지쳐 있었다. 28살, 그녀 역시 세상을 떠났다.

이제 연예인의 죽음은 더 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다.

90년대에는 “왜 저렇게 성공한 사람이 스스로 생을 마감할까?”라는 의문이 컸다면, 지금은 “또다시…”라는 체념이 먼저 나온다. 그만큼 악플과 인터넷 문화가 보편적인 자살 요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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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타블로 사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다


악플의 폭력성을 가장 뼈저리게 보여준 사건 중 하나는 타블로였다.

그는 아이비리그 명문 스탠퍼드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 음악 활동을 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그의 학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거짓말일 것이다.” “논문은 가짜다.”

아무리 증거를 내밀어도 믿지 않았다. 학교 졸업장, 동문 증언, 논문 기록까지 다 공개했지만,

오히려 “조작된 것”이라는 공격만 더 커졌다.

그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다.

가장 끔찍한 건 그의 가족까지 공격받았다는 것이다. 부모님, 아내, 심지어 어린 딸까지.

타블로는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악플은 단순히 나를 미워하는 게 아니었어요. 나라는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 같았어요.”

그 사건은 연예인이 단순히 비난받는 게 아니라, 존재를 부정당하는 폭력을 당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폭력은 칼보다도 무서운 상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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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악플이 뇌와 마음을 파괴하는 방식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댓글? 그냥 안 보면 되잖아.”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인간의 뇌는 사회적 동물로 설계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평가와 시선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런데 반복적인 악플은 뇌의 신경망을 직접적으로 흔든다.


스트레스 호르몬의 폭주

누군가 나를 비난하는 댓글을 볼 때마다, 뇌는 “위협”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된다.

한두 번은 버틸 수 있지만, 반복되면 신체가 망가진다. 불면, 체중 감소, 기억력 저하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자존감 붕괴

악플은 단순히 행위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를 공격한다.

“못 생겼다.”

“네가 뭘 아냐.”

이런 말은 결국 ‘너는 쓸모없다’라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반복적으로 들으면 뇌는 그것을 진실처럼 받아들인다.

고립감의 심화

악플은 당사자를 세상과 단절시킨다.

“나만 공격받는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다.”

이 감각이 우울증을 더 심화시키고, 결국 자살 충동으로 이어진다.

정신의학자들은 악플의 충격을 교통사고 수준의 외상 후 스트레스로 비교하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없지만, 뇌는 끊임없이 공격받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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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악플러의 심리, 왜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할까?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악플을 다는 걸까?

왜 익명 뒤에 숨으면 그렇게 쉽게 칼날을 휘두르는 걸까?

익명성의 힘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니까, 죄책감이 사라진다.

현실에서는 차마 하지 못할 말을 인터넷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한다.

집단심리

이미 누군가 비난하면, 다른 사람들도 동참한다.

“다른 사람도 했으니까 나도 해도 된다.”

집단 안에서 개인의 책임은 희미해지고, 폭력은 놀이가 된다.

보상 심리

악플을 달고 나면 순간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자신의 불만과 열등감을 타인의 고통으로 해소하는 것이다.

즉, 상대방을 무너뜨림으로써 잠시나마 자신이 우월하다고 착각한다.

자기 정당화

악플러들은 이렇게 말한다.

“연예인이면 감수해야지.”

“관심 받기 싫으면 방송하지 마.”

하지만 이건 잔인한 자기 합리화다.

마치 폭력을 가하면서도 “네가 그 자리에 있으니까 맞아야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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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언론의 책임, 확인되지 않은 기사 한 줄의 파괴력

악플만 문제가 아니다. 언론도 큰 책임이 있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과장해서 기사화하고,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제목으로 뽑는다.

“충격!”

“의혹!”

“스캔들!”

클릭을 유도하는 자극적인 문장들.

기자는 단순히 기사를 쓰고 잊어버리지만, 그 한 줄은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 기사를 본 수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단다.

“봐라, 역시 그렇지.”

“이럴 줄 알았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이미지는 훼손되고, 그 사람은 다시 일어설 힘을 잃는다.

기자도, 악플러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결국 모든 무게는 당사자의 어깨 위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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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들

이제는 질문해야 한다.

“과연 인터넷 댓글은 자유인가, 아니면 폭력인가?”

물론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 자유가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간다면, 더 이상 자유라고 부를 수 없다.

그건 폭력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는 단순하다.

말 한 줄 전에 잠시 멈추기

“이 말을 내 가족에게도 할 수 있을까?”


사실 확인하기

루머에 휩쓸려 누군가를 공격하지 말기.

응원의 댓글 달기

따뜻한 말 한 줄이 누군가의 삶을 붙잡아줄 수 있다.

악플러는 칼을 쥐고 있지만, 우리 모두는 꽃을 건넬 수도 있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내가 쓰는 단 한 줄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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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름을 남긴 별들, 그리고 우리가 놓친 목소리

연예인의 자살 소식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잠시 충격에 빠진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속보가 뜨고, 방송국에서는 긴급히 추모 영상을 만든다.

SNS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이 넘쳐난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세상은 다시 평소처럼 흘러간다.

그들의 삶과 죽음을 오래 기억하는 건 가족과 가장 가까운 친구들뿐이다.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적이 있었을까?”


설리

어린 나이에 아이돌로 데뷔해, 한순간에 수많은 시선과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이들과 조금 달랐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고, 때론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기도 했다.

짧은 머리,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사진, 소신 있는 발언들.

그 모든 게 인터넷에서 공격의 빌미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향해 "관종"이라 불렀고, 결국 그녀는 무수한 악플 속에서 스러져갔다.

구하라

밝고 에너지 넘치던 모습으로 사랑받던 그녀.

하지만 사생활 문제와 논란이 터졌을 때, 언론은 그것을 자극적으로 소비했고 사람들은 그녀의 삶을 마음껏 재단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말, "아이돌은 역시 그렇다"는 댓글.

그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제 그만 쉬고 싶다"라는 말은 여전히 가슴에 박혀 있다.

최진실

국민배우였던 그녀조차 악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확인되지 않은 루머 하나가 그녀를 파괴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다"며 눈물 흘렸지만, 결국 같은 일이 반복됐다.

유니

2000년대 초반, 아직 인터넷 댓글이 이제 막 힘을 가지던 시절.

그녀는 외모와 활동을 두고 끊임없이 조롱당했다.

결국 사람들에게 "저렇게 예쁜 사람도 견디지 못한다면, 대체 누가 견딜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타블로

그는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을 맛본 것과 다름없는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가 받은 상처는 단순히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만들어낸 집단폭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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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도와 사회가 해야 할 일


물론 개인의 의식 변화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제도와 사회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악플 실명제 논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자유가 타인의 생명을 위협한다면 제한이 필요하다.

익명성 뒤에 숨어서 칼날을 휘두르는 문화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댓글 창 구조의 개혁

이미 많은 포털사이트와 언론사들이 기사 댓글을 폐지하거나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플랫폼에서는 무분별한 댓글이 달린다.

댓글을 전면 폐쇄할 수는 없더라도, 일정 수준의 필터링과 책임 있는 운영이 필요하다.

언론의 윤리 회복

클릭을 위한 기사, 선정적인 제목, 확인되지 않은 루머.

이런 기사들이야말로 악플을 부르는 불씨가 된다.

언론이 먼저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면, 악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정신건강 지원

연예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정신건강은 필수다.

상담과 치료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적인 지원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특히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심리 상담이 더 쉽게 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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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우리는 어떤 말을 남길 것인가


결국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내가 쓰는 댓글, 내가 남기는 말이 누군가의 하루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내가 쓴 글 한 줄이 누군가의 마지막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말은 공기처럼 가볍게 흘러가지만, 그 말의 무게는 누군가에겐 삶과 죽음을 가르는 추처럼 작동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쉽게 돌을 던졌다.

하지만 이제는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과연 깨끗한 사람인가?”

“내가 던지는 말이, 누군가의 상처가 되지는 않는가?”

연예인들도 결국은 누군가의 딸이고 아들이며, 형제이고 자매다.

우리와 똑같이 사랑받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고, 외로움에 떨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세상에 조금 더 드러나 있을 뿐, 본질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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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당신의 댓글이 누군가의 마지막이 됩니다


인터넷 댓글은 자유일까, 폭력일까.


그 답은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간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자유가 아니라 폭력이 된다.
그것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칼날이 되어 사람의 가슴을 깊이 베어버린다.

우리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
칼을 들 것인가, 아니면 꽃을 건넬 것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창을 휘두를 것인가, 아니면 따뜻한 손을 내밀 것인가.

무너뜨리는 말을 쓸 것인가, 아니면 일으켜 세우는 말을 쓸 것인가.
당신이 남긴 단 한 줄의 글이, 누군가의 밤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고, 동시에 그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이 될 수도 있다.

“괜찮다.”, “힘내라.”,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짧은 말이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끈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무심코 던진 비난 한 줄이 누군가의 목숨을 놓게 만드는 마지막 자극이 될 수도 있다.

댓글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쓰는 한 문장은 살아 있는 누군가의 심장에 직접 새겨진다.
그리고 그 말은 오래 남아, 삶을 붙잡을 힘이 되거나, 삶을 놓게 만드는 무게가 된다.

기억해야 한다.
당신의 댓글이 누군가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의 댓글은 누군가를 살리는 첫 번째 손길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매일의 선택 앞에 서 있다.
나는 오늘, 칼을 들 것인가. 아니면 꽃을 건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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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쓰며 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오늘, 어떤 말을 남길 것인가?”

악플로 무너져간 수많은 이름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기록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믿는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경고가 되고, 동시에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말은 칼이 될 수도 있고, 빛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앞으로도 빛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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