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아동을 키우는 한 엄마의 세상에 보내는 편
사라지는 존재감
"오늘도 나는 투명해졌다."
이 문장은 제가 매일 밤 일기장에 쓰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제 곁을 지나갈 때, 그들의 시선은 제가 아닌 제 아이를 향합니다. 제 아이가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아이,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속도로 성장하는 아이. 사람들은 제 아이를 보며 동정하거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거나, 혹은 피해 다닙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는 조금씩 투명해집니다.
지적장애 아동을 키우는 엄마들의 고립은 단순한 물리적 고립이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 자체가 서서히 지워지는 감정적 고립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특수아동 부모'라는 꼬리표로 부르며, 그 꼬리표 뒤에 숨겨진 우리의 감정, 우리의 삶, 우리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의 엄마'로만 존재할 뿐, 그 자체로 한 명의 인간으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이 글은 지원 방안이나 정책 제언이 아닙니다. 이 글은 투명해져가는 엄마들의 감정 기록입니다. 우리가 겪는 외로움, 고립감, 죄책감, 그리고 때로는 분노까지, 그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는 시도입니다. 이해를 원합니다. 지원이 아닌, 그냥 이해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사라지는 이름, 사라지는 존재
"○○ 엄마."
이것이 제 이름입니다. 사람들은 제 본명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학교 선생님, 동네 사람들, 심지어 친척들까지도 제 아이의 이름 앞에 '엄마'를 붙여 부릅니다. "○○ 엄마,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 엄마, 아이는 좀 어떠세요?"
처음에는 괜찮았습니다. 엄마라는 이름이 자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호칭은 제 정체성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나의 취미는 무엇이었을까요? 모두 희미해집니다. 오직 '○○ 엄마'라는 존재만이 남아 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 저는 집에서 혼자가 됩니다. 그런데 그 혼자임이 이상합니다. 주변에는 수많은 엄마들이 있지만, 저는 그들과 섞이지 못합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의 학교 이야기, 학원 이야기, 취미 활동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는 그 대화에 끼어들 수 없습니다. 제 아이는 그들의 아이들과 다른 세상에 살기 때문입니다.
점심 시간이 되면, 엄마들은 함께 식사를 합니다. 저는 혼자 먹습니다. 처음에는 "같이 먹으세요"라는 초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번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자, 그 초대도 사라졌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서 빠져나갔습니다. 아무도 저를 내쫓지 않았지만, 저는 스스로를 쫓아냈습니다.
거울 속의 낯선 얼굴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봅니다. 거울 속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눈 밑의 다크서클은 점점 짙어지고, 머리카락은 말쑥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무기력하게 드러납니다. 이 얼굴이 나인가요?
예전의 나는 어디에 있을까요? 직장생활을 하며 자신감 넘치게 일하던 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웃음소리를 터뜨리던 나, 연애할 때 설렘에 떨던 나, 그 모든 나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지금의 나는 아이의 일정을 관리하고, 병원에 다니고,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계 같은 존재입니다. 감정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존재. 웃을 때도 눈가에는 슬픔이 있고, 울 때도 마음은 차분해진 채로 있습니다. 감정의 온도계가 고장 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엄마가 힘내야 아이도 힘납니다." "엄마의 건강한 모습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그 말들이 옳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 말들이 때로는 족쇄가 됩니다. 나는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지쳐도 지쳤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슬퍼도 슬프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힘들어도 괜찮아야 하고, 지쳐도 참아야 하고, 슬퍼도 웃어야 합니다.
소리 없는 외침
"제발 좀 도와주세요."
이 말을 수천 번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실제로 입 밖으로 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은 다시 '○○ 엄마'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위해 힘내세요." "특수교육 지원을 받아보세요." "이런 저런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정말 필요한 것은 그런 조언이 아닙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그냥 곁에서 들어주는 것입니다. "힘들겠구나." "그랬구나." "많이 지쳤겠다."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 해결책들이 때로는 저를 더 힘들게 만듭니다.
어느 날, 저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랜만에 통화하는 친구에게 제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나 요즘 너무 힘들어." 이 말을 꺼내기까지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친구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야? 아이 때문에?"
그 순간, 모든 말이 목구멍에 막혔습니다. 네, 아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나의 사라진 정체성 때문입니다. 나의 고립감 때문입니다. 나의 투명해진 존재감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응, 아이 때문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대화는 그곳에서 끝났습니다.
밤의 고요함과 외로움
아이가 잠든 밤이 가장 힘듭니다. 낮 동안의 바쁨이 사라지면, 고요함이 밀려옵니다. 그 고요함은 평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외로움의 소리입니다.
저는 혼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TV도 켜지 않고, 스마트폰도 보지 않습니다. 그냥 그대로 앉아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립니다. 이 시간이 제 유일한 시간입니다. 아이의 엄마가 아닌, 그냥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하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길면 견딜 수 없습니다. 너무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내 인생은 이걸로 괜찮을까? 나는 정말 행복할까? 내가 꿈꾸던 삶이 이런 건가? 이 질문들은 답이 없습니다. 그냥 맴돌 뿐입니다.
가끔은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눈물도 나오지 않습니다. 마치 눈물까지도 말라버린 것 같습니다. 슬픔도 분노도 모두 무뎌져 있습니다. 이것이 감정의 소진 상태인가요? 아니면 이것이 적응인가요?
사회의 시선과 무게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시선을 보냅니다. 동정적인 시선, 호기심 어린 시선, 때로는 비판적인 시선까지.
공공장소에 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제 아이가 소리를 지르거나, 갑자기 멈춰서거나, 반복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립니다. 그 시선들은 말을 합니다. "저 아이는 왜 저래?" "저 엄마는 아이를 잘못 키웠나?" "불쌍하다."
그 시선들이 등에 무게로 다가옵니다. 저는 고개를 숙이고 싶어집니다. 아이를 데리고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집니다. 도망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런 사람들은 신경 쓸 가치도 없어요." 하지만 그 시선들이 매일매일 쌓이면, 상처가 됩니다. 피부에 스며든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습니다.
가족 안에서의 고립
가장 아픈 고립은 가족 안에서 일어납니다. 시댁 식구들, 친정 식구들, 그들 사이에서도 저는 투명해집니다.
시댁 식구들은 아이의 문제를 제 탓으로 돌립니다. "네가 아이를 잘못 키웠어." "더 엄격하게 해야지." "요즘 엄마들은 너무 애지중지해." 그들의 말에는 항상 비난이 담겨 있습니다.
친정 식구들은 걱정을 합니다. "너무 힘들지 않니?" "혹시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길 생각은 없니?" 그들의 걱정이 때로는 부담이 됩니다. 저는 강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습니다.
남편은 어떨까요? 그는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도 한 사람의 인간일 뿐입니다. 그도 지쳤고, 그도 힘듭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할 에너지가 없습니다. 그저 같은 공간에 있을 뿐, 서로에게 위안이 되지 못합니다.
희망의 씨앗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빛은 있습니다. 아주 작은 빛이지만, 그 빛이 제게는 생명줄과 같습니다.
아이가 미소 지을 때가 있습니다. 그 미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입니다. 그 미소를 보면, 모든 고생이 보상받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힘들겠구나." 이 한마디를 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 저는 눈물을 흘립니다. 긴 시간 동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옵니다.
그리고 저 같은 엄마들이 있습니다. 같은 길을 걷는 엄마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고통이 같다는 것을, 우리의 외로움이 같다는 것을. 말 없이도 우리는 서로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이해를 원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저는 특별한 대우를 원하지 않습니다.
지원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힘들지만,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이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지쳐서 쓰러지고 싶고, 외로워서 울고 싶고, 투명해진 존재감을 되찾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비난하지 말아주세요. 해결책을 제시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곁에서 들어주세요. "힘들겠구나." "그랬구나." "많이 지쳤겠다." 이 말들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냥 엄마입니다.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주는 평범한 엄마입니다. 다만 우리의 사랑이 조금 더 깊고, 우리의 희생이 조금 더 클 뿐입니다.
그러니 제발, 우리를 '특수아동 엄마'라는 꼬리표로 부르지 말아주세요.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우리의 감정을 인정해주세요.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전부입니다. 이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하루를 버틸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어느 날 카페에 앉아 있을 때, 옆자리의 두 엄마가 나누는 대화가 우연히 들렸습니다. 한 엄마가 "요즘 너무 힘들어. 그냥 사라지고 싶을 때가 있어"라고 속삭이는 목소리에 제 마음이 멈춰 섰습니다.
그 엄마의 눈에는 깊은 피로와 외로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의식적으로 지적장애 아동을 키우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병원 대기실, 치료센터, 특수학교 앞에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조용했고, 말수가 적었지만, 마음의 문을 열어주실 때면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제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 편지는 특정 한 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많은 엄마들의 이야기를 모아 만들어낸 가상의 목소리입니다. '투명해진다'는 표현은 한 엄마가 하신 말입니다. '사라지는 이름'은 또 다른 엄마가 털어놓은 고민이었습니다. '밤의 고요함과 외로움'은 거의 모든 엄마들이 공감하는 감정이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지원 방안이나 정책 제언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미 수많은 전문가들이 그런 조언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지 그들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이 '특수아동 엄마'라는 꼬리표 뒤에 숨겨진 한 명의 인간으로서, 한 명의 여성으로서, 한 명의 '나'로서 그들을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이 편지를 읽는 분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이런 고민을 가진 엄마를 만나시면,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조언하기 전에 잠시 멈춰주세요. 그리고 "힘들겠구나"라는 한마디를 건네주세요. 그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의 주인공처럼 투명해진 채로 살아가는 모든 엄마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의 고독은 누군가의 외로움과 만나고, 당신의 눈물은 누군가의 슬픔과 닿아 있습니다. 당신은 투명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냥 잠시 잊혀진 존재일 뿐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리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 편지가 세상에 작은 파문을 일으켜,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특별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을 바라봐 주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쓴 작가로서, 저도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엄마'라는 이름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 존중받는 세상을 꿈꿉니다.
https://litt.ly/yoodaram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