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꿀벌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

by 유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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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은 세상의 가장 작은 노동자다. 하지만 그들의 날갯짓이 멈추면, 인류의 식탁이 멈춘다. 우리는 매일 커피를 마시고, 사과를 베어 물고, 해바라기유로 요리를 한다. 그 모든 순간마다 꿀벌은 침묵 속에서 우리의 삶을 지탱해왔다. 그런데 지금, 그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처음 이 이야기를 들은 건 몇 해 전이었다. 미국의 농장에서 벌통 수천 개가 한꺼번에 비어버렸다는 뉴스였다. 농부들은 말한다. “그냥 사라졌어요.” 벌들은 집을 버리고 떠났고, 돌아오지 않았다. 죽은 흔적도 없었다. 그 사건은 ‘CCD(Colony Collapse Disorder)’, 즉 군집 붕괴 현상이라 불린다. 벌이 사라지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농약, 기후변화, 바이러스, 서식지 감소, 인간의 욕심이 얽혀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이 무엇이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들의 사라짐은 곧 우리의 사라짐으로 이어진다.


세계 농작물의 70% 이상은 곤충 수분에 의존한다. 그 중 꿀벌이 담당하는 비율이 80%다. 인간이 먹는 식량의 3분의 1이 꿀벌의 날갯짓에서 비롯된다. 꿀벌이 없어진다면, 우리의 식탁에서 사과, 아몬드, 블루베리, 딸기, 수박, 브로콜리, 심지어 커피까지 사라진다. 단순히 ‘꿀이 없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꿀벌의 부재는 생태계의 무너짐, 즉 인간의 생존 조건 자체가 흔들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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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꿀벌이 사라지면 로봇 벌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과학자들은 실제로 미세 드론을 만들어 꿀벌의 역할을 대신하려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벌 한 마리는 하루에 약 5천 송이의 꽃을 방문한다. 지구 위에 존재하는 꿀벌은 약 2조 마리. 인간이 만든 기술로는 그 노동을 대체할 수 없다. 게다가 꿀벌은 단순히 수분을 옮기는 존재가 아니라, 생태계의 균형을 설계하는 생명 시스템의 핵심 축이다. 로봇이 대체할 수 있는 건 ‘역할’이지, ‘생명’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이 벌의 신경계를 교란해 방향 감각을 잃게 한다는 연구가 잇따랐다. 방향을 잃은 벌은 집을 찾지 못하고, 점점 지쳐 죽는다. 농약은 병충해를 줄였지만, 동시에 생태계를 병들게 했다. 인간이 편리함을 위해 뿌린 그 독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다. 꿀벌의 시선으로 본다면, 인간은 아마 지구의 가장 거대한 해충일지도 모른다.


기후변화 또한 꿀벌의 생존을 위협한다. 벌들은 온도에 민감하다. 35도가 넘는 폭염에서는 날갯짓을 멈추고, 10도 이하에서는 활동을 중단한다. 이상기온으로 꽃의 개화 시기가 바뀌면 벌의 생태 주기와 어긋나고, 이는 곧 먹이의 부족으로 이어진다. 벌이 줄면 새가 줄고, 새가 줄면 나무가 줄고, 나무가 줄면 공기가 줄어든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꿀벌은 생물 다양성의 첫 번째 경보 장치다. 그들의 날개가 멈추는 순간, 지구의 심장박동이 멈춘다.


나는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벌이 한 송이의 꽃을 찾아 수 킬로미터를 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화면 속 벌은 작았지만, 그 궤적은 우주처럼 거대했다. 그들이 모으는 꿀은 단순한 단맛이 아니라, 세상의 순환을 증명하는 기록이었다. 인간은 그 꿀을 먹으며 ‘자연의 은혜’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서한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가 이 경고를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벌의 사라짐은 신문 사회면 한 구석의 짧은 기사로 지나가고, 우리는 여전히 플라스틱 컵에 담긴 달콤한 라떼를 마신다. 인간은 자신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잊고, 자연을 관리하고 지배하는 존재로 착각한다. 그러나 지배는 생태의 언어가 아니다. 공존만이 생존의 언어다.

생물 다양성은 거대한 말 같지만, 사실은 아주 단순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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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

이 원리를 무시하면, 시스템은 무너진다.

지구의 생태계는 하나의 직물처럼 짜여 있다. 꿀벌은 그 직물의 첫 실이다.

한 가닥이 끊어지면, 전체가 풀린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곤충 종의 40%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중에서도 꿀벌은 가장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6년 이후 꿀벌 개체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유럽연합은 농약 사용 규제를 강화했지만,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은 여전히 생산성 중심의 농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겨울이 짧아지고 봄이 빨라지면서 꿀벌의 생태 주기가 꼬였다. 2023년 한 해에만 약 78억 마리의 벌이 죽었다.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그 근저에는 ‘속도’가 있다. 인간이 자연보다 빠르게 움직이려 한 대가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늘 작아진다. 하지만 변화는 거대한 의회가 아니라, 작은 선택의 누적에서 시작된다. 도시의 화단에 꿀벌이 좋아하는 식물을 심는 것, 농약 대신 유기농 비료를 선택하는 것, 꿀벌이 만든 진짜 꿀을 구매할 때 그 생산자의 지속가능성을 확인하는 것. 이런 아주 작고 사소한 행동이 꿀벌의 생태를 지탱한다.


도시에서도 우리는 꿀벌과 함께 살 수 있다. 세계 곳곳의 ‘어반 비 키핑(urban beekeeping)’ 프로젝트는 그 증거다. 파리 오페라하우스 지붕 위에는 수십 개의 벌통이 있고, 뉴욕의 옥상에서는 벌들이 맨해튼의 꽃가루를 모은다. 서울에서도 일부 도심 건물 옥상에 벌통이 설치되어 있다. 그것은 단지 꿀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다시 대화하는 시도다.

생물 다양성의 핵심은 숫자가 아니다. ‘관계’다.

벌과 꽃의 관계, 나무와 흙의 관계, 인간과 공기의 관계.

그 관계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다른 존재를 해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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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상상한다.

만약 지구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지금 무슨 말을 할까.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나는 아직 살 수 있어. 단, 너희가 나를 덜 이용할 때.”

꿀벌은 그 말을 대신해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작은 날개가 떨릴 때마다, 그 진동은 보이지 않는 메시지가 되어 온다.

“지금, 멈춰야 해.”

우리의 삶은 언제부턴가 너무 빠르고, 너무 소음이 많다.

벌들이 더 이상 방향을 찾지 못하듯, 인간도 길을 잃고 있다.

벌이 돌아오지 않는 세상은 결국 인간이 돌아갈 곳이 없는 세상이다.

우리는 지금 결단의 시대에 서 있다.

기후위기, 생태위기, 그리고 존재의 위기.

이 모든 위기는 사실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자연을 소유할 수 있다’는 오만.

하지만 자연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의 동반자다.

우리가 벌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한 종(種)을 보호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이 여전히 겸손할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지금의 삶의 방식이 계속된다면,

미래의 아이들은 꿀벌을 책에서만 보게 될 것이다.

“엄마, 이게 진짜 있었던 생물이야?”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꿀벌을 지키는 일은 거대한 과학이 아니라, 작은 윤리의 문제다.

꽃을 꺾지 않는 일, 잡초를 무시하지 않는 일,

자연을 ‘자원’이 아니라 ‘생명’으로 바라보는 감수성.

그 감수성이 바로 생물 다양성의 뿌리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다른 생명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다.

그렇다면 이제, 벌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고맙다. 네가 만들어준 세상에서 살고 있어.”

그리고 이 말을 덧붙인다.

“다시는 너를 잃지 않겠다.”

꿀벌은 사라지고 있지만, 희망은 아직 남아 있다.

지구의 균형은 언제나 복원력을 가지고 있다.

단, 우리가 귀를 기울인다면.

그 작은 날갯짓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 진동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래서 나는 믿는다.

꿀벌의 사라짐은 경고이지만, 동시에 초대다.

우리가 다시 자연의 언어로 돌아가라는, 마지막 초대장.

그 초대에 응답하는 사람들...작은 화분을 놓고, 잡초를 남겨두고, 꿀벌을 위해 꽃을 심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지구를 구하는 새로운 세대일 것이다.

그들의 날개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도, 아직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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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은 단지 꿀을 만드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지구의 순환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생태의 실로 우리 모두를 이어주는 존재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쉽게 먹고, 버리고, 지나쳐왔다.

커피 한 잔 속의 꿀향을 느끼면서도, 그 향을 만들어낸 작은 생명의 노동을 떠올리지 않았다.

생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밟고 있는 땅, 그 안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관계’의 고리 속에 있다. 그리고 그 고리의 가장 처음에는 언제나 ‘작은 존재’가 있었다.

꿀벌의 사라짐은 단순히 한 종(種)의 멸종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어디까지 이기적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경고장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생존’을 위해서라며 자연을 베어냈지만, 결국 그 생존의 토대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었다.

벌들이 방향을 잃고 헤매는 동안, 우리 또한 문명의 속도 속에서 방향을 잃었다.

이제는 ‘성장’이라는 단어보다 ‘공존’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입에 올려야 한다.

지속 가능성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사람이 다시 겸손해질 때, 지구는 스스로 치유될 것이다.

그 치유의 시작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당신의 작은 행동 하나에서 시작된다.

꽃을 꺾지 않는 일, 작은 풀잎 위의 벌을 그냥 지나치는 일, 쓰레기를 줄이는 일,

지속 가능한 제품을 선택하는 일...

이 평범한 행동들이 결국 지구의 구조를 다시 짜는 실이 된다.

꿀벌이 사라진 세상은 상상보다 훨씬 더 조용할 것이다.

그 조용함은 평화가 아니라, 생명의 침묵이다.

우리가 그 침묵을 듣기 전에, 지금 이 순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날개는 작지만, 그 진동은 우주의 언어로 번진다.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라면,

이제 우리의 차례다. 함께 울고, 함께 다시 날아야 한다.

꿀벌을 지킨다는 건 지구의 시간을 조금 더 연장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연장된 시간 속에서 우리가 여전히 사랑하고, 웃고, 숨 쉴 수 있기를 바란다.


written by Yoodaram

“작은 날갯짓 하나가 세상의 생명을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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