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독박’이라는 단어를 버려야 진짜 부모가 된다

: 육아휴직, 희생이 아니라 완벽한 분업을 향한 부부의 결단

by 유다람
istockphoto-1224830691-612x612.jpg
축복을 형벌로 만드는 마법의 단어, '독박 육아'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 부모들 사이에서 전염병처럼 번진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독박 육아'다. 인터넷 맘카페를 들어가도, 친구들과의 모임에 가도 온통 독박 타령이다. "남편이 매일 야근이라 저 혼자 독박 써요.", "주말 독박 확정이네요."


나는 이 단어를 지독히도 싫어한다. '독박'이라는 말의 어원이 무엇인가. 화투판에서 혼자 모든 손해와 벌칙을 뒤집어쓸 때 쓰는 속어다.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의 유전자를 반씩 물려받은,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생명체를 키워내는 그 거룩한 일상에 어찌 감히 '독박'이라는 천박한 꼬리표를 붙일 수 있단 말인가.


이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 아이는 '나를 힘들게 하는 짐'이 되고 배우자는 '나에게 책임을 떠넘긴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부부는 육아휴직이라는 중대한 갈림길에 선다. 누가 쉴 것인가, 어떻게 키울 것인가. 오늘은 육아휴직을 앞두고 우리가 반드시 버려야 할 '피해의식'과, 부모로서 마땅히 짊어져야 할 '당연한 책임감'에 대해 아주 날 서고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istockphoto-1397312637-612x612.jpg

1. 육아휴직은 가정이라는 기업의 '전략적 분업'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누군가는 아이를 돌봐야 한다. 맞벌이 부부라면 둘 중 한 명은 커리어를 잠시 멈추고 육아휴직에 들어가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때 많은 부부가 "누가 희생할 것인가"를 두고 눈치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관점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육아휴직은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이나 '경력 단절'이 아니다. 우리 가정이라는 작은 기업을 안전하게 운영하기 위한 최고 경영자(CEO)들의 '전략적 분업'이다.


누가 육아휴직을 쓸 것인가? 정답은 간단하다. 두 사람의 소득 수준, 직장의 복지 제도, 그리고 육아에 대한 적성을 종합적으로 따져서 가장 합리적인 사람이 총대를 메는 것이다. 아내가 밖에서 돈을 더 잘 벌고 남편이 살림에 소질이 있다면 남편이 휴직을 하는 것이 순리다. 반대로 남편의 소득이 가정 경제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면 아내가 휴직을 하는 것이 맞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휴직을 결정하는 과정이다. "엄마니까 당연히 네가 쉬어야지"라는 강요가 아니라, "지금 우리 가정의 상황을 보니 당신이 아이를 맡아주고 내가 밖에서 뛰는 게 가장 안전하겠어"라는 이성적인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 합의가 단단하게 이루어지면, 그 뒤에 따라오는 육아의 시간은 결코 억울한 희생이 되지 않는다.


istockphoto-1398979124-612x612.jpg


2. 한 사람이 벌면, 한 사람은 돌보는 것이 '순리'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부부 사이를 가장 크게 병들게 하는 것은 바로 '보상 심리'다.


집에서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한 아내(혹은 남편)는 퇴근하고 돌아온 배우자를 보며 억울함이 치밀어 오른다.


'나는 하루 종일 화장실도 못 가고 애를 봤는데, 넌 밖에서 커피도 마시고 어른들이랑 밥도 먹었잖아.'


그래서 배우자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기 무섭게 아이를 휙 넘겨버리며 말한다.

"나 오늘 하루 종일 독박 육아했어. 이제부터 자기가 애 봐. 난 쉴 거야."


단호하게 말하건대, 이것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유치한 태도다.


한 사람이 밖에서 가정의 생계를 위해 치열하게 돈을 번다면, 휴직을 하고 집에 있는 한 사람은 그 시간 동안 집안일과 육아를 전담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것이 분업이다.


밖에서 일하는 배우자의 하루는 결코 소풍이 아니다. 상사의 부당한 질책, 실적에 대한 압박, 꽉 막힌 출퇴근길의 피로를 온몸으로 견뎌내고 우리 가족의 밥줄을 지켜낸 숭고한 시간이다. 그가 밖에서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누비는 동안, 나는 안전한 집 안에서 아이라는 보물을 지키는 후방 지원을 맡은 것뿐이다.


내가 집에서 힘든 만큼, 배우자 역시 밖에서 뼈 빠지게 고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하는 육아만 특별히 더 고귀하고 힘든 희생인 양 유세 떨며 상대에게 죄책감을 씌우는 행위는, 부부라는 파트너십을 밑바닥부터 갉아먹는 독약이다.


istockphoto-1442448875-612x612.jpg
istockphoto-1442517181-612x612.jpg


3. 우리가 원해서 낳은 아이다. 투덜거림은 부모 자격 미달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부모의 이 무의식적인 불평불만이 결국 고스란히 아이에게로 향한다는 사실이다.


"너 때문에 엄마가 일을 쉬잖아."


"너 키우느라 아빠가 뼈 빠지게 고생하잖아."


착각하지 말자. 아이는 태어나게 해달라고 부모에게 결재 서류를 올린 적이 없다.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것은 철저히 성인인 우리 두 사람의 욕망이자 선택이었다. 내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다.


자신이 원해서 식당에 들어가 메뉴를 주문해 놓고, "왜 음식을 씹어 먹어야 하냐"고 투덜거리는 손님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부모가 되기로 선택했다면, 그에 따르는 기저귀 갈기, 밤잠 설치기, 우는 아이 달래기의 고단함은 마땅히 지불해야 할 '책임의 비용'이다.


책임을 지기 싫다면 처음부터 낳지 말았어야 했다. 이미 세상에 내놓았다면, 육아가 힘들다고 징징거리거나 누구 탓을 할 자격은 우리에게 없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부모가 육아를 짐으로 여기며 서로를 원망하는 집에서 자란 아이가, 과연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사랑받는 존재로 여길 수 있을까?


istockphoto-1486775297-612x612.jpg


4. 집이라는 직장, 나는 이 공간의 프로페셔널이다


육아휴직을 하고 집에 있는 동안, 당신의 직업은 '백수'가 아니다. 당신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한 생명을 길러내는 수석 프로젝트 매니저'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프로 의식을 가져야 한다. 직장인이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회사 일에 매진하듯, 휴직자인 당신 역시 남편(혹은 아내)이 출근한 시간 동안 집안의 경영을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의 정서를 돌보는 일련의 과정들은 당신에게 배당된 오늘의 '업무'다.


퇴근한 배우자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마치 내가 부당한 노동을 착취당한 피해자인 양 "독박 썼다"고 화를 내는 것은 당신의 자존감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다.


진짜 프로는 자신의 역할을 불평 없이 해낸다. 퇴근한 배우자에게 맛있는 저녁을 차려주며 "오늘 하루 밖에서 돈 버느라 고생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넉넉함. 배우자 역시 "집에서 우리 아이 예쁘게 돌봐줘서 고마워"라고 진심으로 화답하는 존중.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서로의 노동 가치를 1대 1로 동등하게 인정해 줄 때 비로소 완벽한 부부의 톱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한다.


istockphoto-2150556078-612x612.jpg


5. 육아휴직,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밀도가 채워지는 시간


나 역시 치열하게 일을 하다가 만삭 때 억대 연봉의 자리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화려한 웨딩홀 실장님에서,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수빈이 엄마가 되었을 때의 그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결코 내 삶이 멈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시간은 내 아이의 인생이라는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기초 공사를 다지는 골든타임이었다. 내가 흘리는 땀방울, 내가 참아내는 졸음, 내가 아이와 눈을 맞추며 부르는 자장가. 이 모든 것들은 차곡차곡 쌓여 내 아이의 단단한 정서적 척추가 되어주었다.


육아휴직 기간은 내 커리어의 '빈칸'이 아니다. 한 인간을 온전히 길러내고, 나 자신의 밑바닥 감정까지 싹싹 긁어 대면하며 인간으로서의 그릇을 한 단계 더 넓히는 '가장 치열한 자기 계발의 시간'이다.


우리는 이 거룩한 시간을 통과하며 조금씩 부모가 되어간다. 처음부터 완벽한 부모는 없지만, 기꺼이 책임을 다하려는 부모만이 아이에게 세상이라는 든든한 둥지를 내어줄 수 있다.


istockphoto-2150630867-612x612.jpg


독박이 아니라, 특권이다


오늘도 "독박 육아 너무 힘들어요"라는 글에 수많은 위로의 댓글이 달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위로 대신 약간의 냉수를 끼얹고 싶다.

당신은 지금 벌칙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를 당신의 손으로 직접 만지고, 냄새 맡고, 웃게 만들 수 있는 '눈부신 특권'을 누리는 중이다.


배우자가 밖에서 거친 비바람을 맞으며 돈을 벌어오는 덕분에, 당신은 따뜻한 집 안에서 이 작고 예쁜 기적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것이다.

그러니 당당하게 허리를 펴라.

당신은 피해자가 아니다. 한 가정을 지켜내는 든든한 사령관이자, 아이의 온 우주를 창조하는 위대한 신(神)이다.

우리가 원해서 마주한 이 생명 앞에서, 더 이상의 투덜거림은 거두기로 하자.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강하고 훌륭한 부모니까.


결혼준비보다 중요한 것들 2.png


: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해내는 어른의 무게


"일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는데, 집에 오자마자 아내가 애를 맡기고 화를 내서 너무 지칩니다."


가끔 후배 남편들에게 이런 하소연을 들을 때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반대로 밖에서 돈 버느라 고생하는 아내를 두고, 집에서 애 본다는 유세로 게임만 하는 남편들의 이야기도 적지 않지요.


결혼과 육아는 '내 몫을 다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은 회피하는 건 어린아이들의 투정입니다. 우리는 어른이기에 결혼을 했고, 어른이기에 부모가 되었습니다.


내가 밖에서 돈을 버는 것이 당연하듯, 내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 또한 당연합니다.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당연한 일을 묵묵히 해낼 때, 평범한 일상은 비로소 기적이 됩니다.

부디 당신의 배우자를 나를 힘들게 하는 '가해자'로 만들지 마세요. 그는 이 육아라는 거친 항해를 함께 헤쳐 나가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당신의 든든한 '1등 항해사'입니다.


책임을 다하는 세상의 모든 부모를 존경하며, 유다람 드림


브런치 구독2.png


https://litt.ly/yoodaram_writer



이전 07화36화. 억대 연봉의 왕관을 내려놓고,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