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억대 연봉의 왕관을 내려놓고, 엄마가 되었다

: 상처받은 아이가 진정한 어른으로 다시 태어나던 기적의 시간들에 대하여

by 유다람
KakaoTalk_20260220_104351358_01.jpg 수빈,다빈 자매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을 거야"라는 슬픈 방어기제


2011년 6월, 6살 연하의 남편과 손을 잡고 버진 로드를 걸을 때까지만 해도 내 인생의 청사진에 '아이'라는 존재는 희미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철저하게 지워져 있었다.


"나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결혼 전부터 남편에게 심심치 않게 내뱉던 말이었다. 남편은 그저 내가 쿨하고 독립적인 성향이라 그런 줄 알았겠지만, 그 차가운 선언의 이면에는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깊고 어두운 상처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가족'이라는 단어는 따뜻한 안식처가 아니라 차가운 전쟁터에 가까웠다. 계모의 그늘 아래서 겪어야 했던 눈칫밥과 정서적 결핍. 온전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자란 상처 입은 내면의 아이는,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내 발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제대로 된 부모의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내가, 과연 누군가에게 내리사랑을 줄 수 있을까?'


'혹시라도 내가 내 아이에게 내가 겪은 상처를 대물림하면 어떡하지?'


두려웠다. 내 안의 결핍이 아이라는 죄 없는 생명에게 전이될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아예 생명을 잉태하는 것 자체를 차단하고 싶었다. 대놓고 피임을 하며 아이를 막았던 것은 아니지만, '생기면 낳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방관적 태도로 일관했다. 그렇게 2011년에 결혼한 우리는, 무려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둘만의 섬에서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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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커리어의 정점에서 맞이한 달콤한 지배감


아이를 외면한 나의 에너지는 온전히 '일'과 '성공'을 향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갔다.

2014년 당시, 나는 한 웨딩홀의 총괄 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저 자리를 지키는 월급쟁이가 아니었다. 나는 일에 미쳐 있었고, 나의 감각과 기획력은 트렌드를 정확히 관통했다. 내가 손을 대고 동선을 짜고 상담을 진행하면, 거짓말처럼 예약이 꽉꽉 들어찼다. 적자에 허덕이던 웨딩홀도 내 손을 거치면 그 지역에서 가장 잘 나가는 핫플레이스로 변신했다. 업계에서는 내 이름 석 자가 브랜드였고, 나 때문에 그 웨딩홀의 매출은 수직 상승을 기록했다.


그에 합당한 보상으로 나의 연봉은 가뿐히 1억을 넘어섰다. 30대 초반의 여성이, 그것도 내 능력만으로 억대 연봉의 고지에 올랐다는 사실은 나에게 엄청난 도파민과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예쁜 슈트를 차려입고, 수백 명의 하객과 직원들을 진두지휘하며 주말의 웨딩홀을 지배하던 시간. 나는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 인생은 이대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이 화려한 커리어의 왕관을 내려놓고, 기저귀를 갈며 젖병을 소독하는 삶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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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다빈이


수정 후 2주, 몸이 먼저 알아챈 기적의 시그널


운명은 언제나 인간이 가장 완벽하다고 믿는 순간, 조용히 방향키를 비틀어버린다.


어느 평범한 저녁이었다. 지인들과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던 자리, 시원하게 맥주 한 모금을 삼키려는데 갑자기 속에서부터 알 수 없는 거부감이 치밀어 올랐다.


"우욱-."


순간적인 헛구역질. 평소 주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술이었고, 안주가 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위장이 아니라 온몸의 세포가 알코올을 격렬하게 거부하고 밀어내는 듯한 기이한 감각.


순간, 뇌리를 스치는 직감이 있었다.


'설마... 임신인가?'


의학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중에 날짜를 역산해 보니, 그때는 착상도 채 이루어지기 전인 수정 후 고작 '2주 차' 무렵이었다. 임신 테스터기에도 반응이 나오지 않을 그 극초기의 찰나에, 나의 몸은 본능적으로 내 안에 새로운 우주가 탄생했음을 알아채고 내게 경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다음 날, 떨리는 마음으로 산부인과를 찾았다. 차가운 젤이 배에 닿고 초음파 기계가 돌아갔지만, 모니터는 고요했다.


"글쎄요, 아직 아무것도 안 보이네요. 임신인지 아닌지 지금은 알 수 없으니 2주 뒤에 다시 오세요."


의사의 건조한 대답을 듣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참으로 묘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안도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한 '실망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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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딸 수빈이


기다림의 2주,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다


병원을 다녀온 그날 밤, 남편과 식탁에 마주 앉았다.


"의사 선생님이 아직 모른대. 2주 뒤에 다시 오라더라."


내 말을 듣는 남편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애써 태연한 척하려 했지만,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는 숨길 수 없는 '기대감'과 '아쉬움'이 일렁이고 있었다. 6살이나 어린 남편, 아직 한창 자유를 즐길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심 나와의 결실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 2주라는 텅 빈 기다림의 시간 동안 내 안에서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제발 임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할 줄 알았던 나는, 매일 밤 배 위에 손을 얹고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아가, 만약 내 안에 네가 있다면 제발 단단하게 붙어 있어 주렴.'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던 과거의 나는 온데간데없었다. 내 몸안에 나의 유전자와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유전자가 섞인 생명이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가설 하나만으로, 나의 우주는 이미 뒤집혀 버렸다.


트라우마에 갇혀 지내던 내면의 아이가,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나도 엄마가 되고 싶어"라고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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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혈, 그리고 초음파 화면에 반짝이던 작은 점


약속된 2주가 채 지나기도 전, 나는 화장실에서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경험을 했다. 속옷에 붉은 피가 비친 것이다. 하혈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아니겠지? 아이가 잘못된 건 아니겠지?'


그 순간 내가 느낀 뼈저린 공포와 상실감은, 내가 이 아이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억대 연봉의 계약을 놓쳤을 때도 이토록 손발이 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채로 남편의 손을 부여잡고 응급실처럼 산부인과로 뛰어갔다. 숨을 죽이고 누운 초음파 베드. 침묵이 흐르고, 의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내 인생에서 들은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었다.


"축하합니다. 임신 맞네요. 피가 비친 건 유산이 아니라 아기집이 자리를 잡으면서 생기는 '착상혈'이었어요. 여기 반짝이는 거 보이시죠? 아기 심장입니다."


초음파 모니터 한가운데, 아주 작고 까만 아기집 안에서 콩알만 한 점이 쿵쿵 뛰고 있었다. 그 작은 점의 박동 소리가 진료실을 채우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둑이 터지듯 쏟아져 내렸다. 남편도 내 손을 꽉 쥔 채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세상 그 어떤 위대한 음악 교향곡도, 내 아이의 첫 심장 소리만큼 경이로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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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연봉의 타이틀을 기꺼이 내려놓다


임신이 확정되고 난 후, 내 삶의 우선순위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재편되었다.


그토록 목숨 걸고 매달렸던 웨딩홀 실장이라는 자리, 나를 콧대 높게 만들어주었던 억대 연봉이라는 숫자가 한순간에 아득하게 멀어졌다.


물론 바로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나를 믿고 예약을 한 수많은 신부들을 책임져야 했고, 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현장이었기에 뱃속에 아이를 품고도 나는 주말마다 하이힐 대신 굽 낮은 단화를 신고 웨딩홀을 뛰어다녔다.


입덧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도,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면서도 억울하지 않았다.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숨 쉬고 일하는 나의 첫아이, '수빈이'가 나를 지켜주고 있었으니까.


결국 나는 배가 남산만 하게 불러온 만삭의 몸이 되어서야 웨딩홀 실장이라는 무거운 왕관을 내려놓았다. 동료들은 아쉬워했고, 나도 내심 아쉬웠지만 일을 물러설때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수많은 부부의 새로운 시작(결혼)을 열어주던 내가, 이제는 진정으로 내 삶의 새로운 시작(엄마)을 향해 걸어 나가는 숭고한 퇴장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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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떠나신 부모님, 그리고 치유되는 내면의 아이


내 배가 점점 불러오고 태동을 느낄 때마다, 나는 자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다. 가장 보고 싶은 두 사람, 일찍 내 곁을 떠나신 친정 부모님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딸들은 임신을 하면 친정엄마를 찾는다. 입덧을 할 때 엄마가 해주던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울고, 출산의 두려움을 엄마의 품에 안겨 위로받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전화를 걸어 "엄마, 나 임신했어"라고 어리광을 부릴 대상이 없었다. 그 지독한 그리움과 결핍은 늦은 밤마다 나를 소리 없이 울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를 품으며 나는 부모님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 척박하고 가난했던 시절, 나를 낳고 키우기 위해 우리 엄마 아빠는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셨을까. 지금의 나처럼 이 작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셨을까.


계모의 상처 뒤에 가려져 잊고 살았던 '나를 향한 친부모님의 지독한 사랑'이 시공간을 넘어 내 가슴으로 스며들어왔다. 아이가 내 뱃속에서 자라는 10개월은,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상처받은 꼬마 유다람이 친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고 치유받는 회복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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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떠나신 부모님, 그리고 치유되는 내면의 아이


2015년 2월, 드디어 나의 첫 번째 천사 수빈이가 세상의 빛을 보았다. 그리고 3년 뒤, 둘째 다빈이가 태어나며 나는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가끔 남편과 거실에서 깔깔거리며 뛰어노는 두 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만약 그때, 억대 연봉이라는 달콤함에 취해, 혹은 상처받기 두려운 이기심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돈은 더 많이 모았을 것이고, 몸은 편했을 것이며, 일년에 두 번씩 해외여행을 다니며 화려한 인스타그램 피드를 장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첫째 아이가 내 삶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나밖에 모르는 1인분의 이기적인 인간, 영원히 상처를 핑계 삼아 방어벽만 치고 사는 '덜 자란 아이'로 남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은 내 뼈와 살을 깎아내는 고통이었다. 내 커리어는 단절되었고, 통장 잔고는 줄어들었으며, 무릎 관절은 삐걱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지불하고 '진정한 어른'이 되는 티켓을 샀다. 나를 희생해서라도 지키고 싶은 절대적인 존재가 생겼다는 것. 타인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눈물 흘릴 줄 아는 넓은 가슴을 갖게 되었다는 것.


수빈이와 다빈이는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두 아이가 나를 다시 낳아주고 길러주었다. 엄마라는 이름의, 진짜 어른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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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타이밍은, 사랑하기로 결심한 바로 그 순간이다


임신과 출산 앞에서 망설이는 수많은 후배 부부들에게 나는 내 이야기를 자주 들려준다.

완벽한 경제적 준비, 흔들리지 않을 커리어, 완벽한 심리적 안정 상태. 그런 '무균실' 같은 완벽한 타이밍은 우리 인생에 영원히 오지 않는다.

사랑은 계산기를 두드려서 나오는 정답이 아니다.

두려움을 안고서라도 기꺼이 내 우주를 깨뜨리기로 결심하는 것. 내가 가진 가장 빛나는 왕관(돈, 시간, 커리어)을 기꺼이 바닥에 내려놓고 작은 생명의 손을 잡기로 다짐하는 것.

그 결단의 순간이 바로 가장 완벽한 타이밍이다.


※ 글에 조심스레 덧붙인 사진들은 제 삶의 가장 빛나는 주인공들인 아이들에게 먼저 허락을 구하고 올립니다. 아이들의 일상을 지켜주고 존중하려는 엄마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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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엄마의 커리어를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엄마의 세계를 확장시켰습니다


"내가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혹시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혹은 지금 쥐고 있는 커리어가 아까워서 아이 낳기를 망설이는 분이 계신가요?

저 역시 그 두려움의 한가운데를 지나왔기에 그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막막한지 너무나 잘 압니다.

억대 연봉이라는 달콤한 타이틀과 내 안의 웅크린 상처를 핑계 삼아,

저는 오랫동안 '엄마'라는 거대한 문 앞을 서성였습니다.


하지만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단순히 내 시간과 돈과 커리어를 희생하는 '뺄셈'의 과정이 아닙니다. 내 안의 상처받은 꼬마를 위로하고, 일찍 떠나신 부모님의 크나큰 사랑을 비로소 깨달으며, 나라는 세계를 무한히 확장해 나가는 위대한 '덧셈'의 시간입니다.


수빈이와 다빈이가 없었다면, 저는 영원히 상처를 핑계 대며 나밖에 모르는 반쪽짜리 어른으로 늙어갔을지도 모릅니다. 세상 그 어떤 화려한 명함도, 두 아이가 저를 부르는 "엄마"라는 단어만큼 묵직하고 찬란할 수는 없습니다.

혹시 지금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생명을 향한 두드림이 느껴진다면, 두려워 말고 기꺼이 그 문을 열어보세요. 그 문 너머에는, 당신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진짜 어른'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상처를 넘어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 엄마, 유다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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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itt.ly/yoodaram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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