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을 꿈꾸는 노인들

: 빵 한 조각에 자유를 팔아넘긴, 서글픈 '하류(下流)'의 겨울

by 유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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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치기 위해 마트에 간 노인


어느 추운 겨울날, 대형 마트의 보안 카메라에 한 노인의 모습이 포착된다. 굽은 등에 남루한 점퍼를 걸친 노인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매대에서 고작 3천 원짜리 빵 한 봉지와 통조림 하나를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보안 요원이 다가가 팔을 붙잡자, 노인은 도망치려 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안도하는 듯한 옅은 한숨을 내쉬며 순순히 보안실로 따라간다. 경찰이 출동하고, 합의를 해 주겠다는 마트 주인의 호의에도 노인은 고개를 젓는다.


"제발, 나를 감옥에 보내주시오."


자유를 박탈당하는 형벌의 공간, 감옥. 누군가에게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그 지옥이, 어떤 이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요새가 된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얼어 죽을 걱정이 없고, 제때 따뜻한 밥 세끼가 나오며, 자신이 쓰러지면 들여다봐 줄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비망록은 가난과 외로움이라는 날 선 채찍에 등 떠밀려, 스스로 범죄자가 되기를 선택한 우리 시대 '하류 노인(下流老人)'들의 비극적인 생존기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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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 노인(下流老人)의 탄생: 성실하게 살았음에도 벼랑 끝에 서다


'하류 노인'이란 빈곤선 아래에서 근우 겨우 생계를 유지하며, 질병과 고독 속에 방치된 노년층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이 서글픈 조어는, 이제 OECD 노인 빈곤율 1위라는 불명예를 수십 년째 안고 있는 대한민국의 가장 뼈아픈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흔히 가난을 '개인의 게으름' 탓으로 돌리려 한다. 하지만 감옥을 찾는 하류 노인들의 삶을 추적해 보면 그 공식은 무참히 깨진다. 그들은 젊은 시절 누구보다 뼈 빠지게 일했던 산업화의 주역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하류로 전락했는가?


그들은 '샌드위치 세대'의 가장 비극적인 희생양이다. 위로는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 여겨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고, 아래로는 자식들의 교육비와 결혼 자금, 심지어 집 장만을 위해 기둥뿌리까지 뽑아 바쳤다.


모든 것을 내어주고 빈 껍데기만 남은 노년. 정작 자신이 늙고 병들었을 때, 그들을 부양해 줄 자식들은 먹고살기 바쁘다며 연락을 끊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성실하게 가족을 위해 희생한 대가가 '폐지 줍는 리어카'와 '냉골의 쪽방'뿐이라는 사실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 복지망의 철저한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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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형 범죄: 자유보다 무거운 '하루 세끼'


경제력을 상실한 노인에게 세상은 너무나 가혹하다. 기초연금 30여만 원 남짓으로는 한 달 치 월세와 전기세, 약값을 감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병원비라도 필요한 날엔 그날부터 굶어야 한다.


이들에게 '자유'란 무엇일까. 그것은 곰팡이 핀 한 평짜리 쪽방에서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를 견디며, 쓰레기통을 뒤져 상한 음식으로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 '방치된 자유'다.


반면 교도소의 삶은 어떤가.


겨울엔 난방이 들어오고, 여름엔 선풍기가 돌아간다. 영양사가 짜준 식단으로 하루 세 번 따뜻한 밥과 국이 제공된다. 아프면 의무실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누울 수 있는 깨끗한 매트리스가 보장된다.


"바깥세상에서 나는 투명 인간이었습니다. 길에서 굶어 죽어도 아무도 모를 테죠. 하지만 여기(교도소)서는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습니다."


생존의 기로에 선 노인에게 범죄는 타락이 아니라, 국가가 제공하는 가장 확실한 '복지 시설'로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이 되어버렸다. 이 끔찍한 비용-편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 앞에서, 도덕과 양심은 배부른 자들의 사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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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보다 더 무서운 형벌, '절대 고립'


감옥을 택하는 노인들의 심리를 깊이 들여다보면, 빈곤만큼이나 거대한 또 하나의 괴물이 입을 벌리고 있다. 바로 뼛속까지 파고드는 '외로움'과 '고독사에 대한 공포'다.


하류 노인들은 철저히 사회로부터 단절되어 있다. 찾아오는 이도, 안부를 묻는 이도 없다. 하루 종일 누구와도 단 한마디 말을 섞지 못하고 일주일을, 한 달을 보낸다. 그들이 매일 밤 눈을 감으며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대로 숨이 끊어져 며칠, 몇 달 뒤에 부패한 시신으로 발견되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누군가에게 소속되어 있고,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기본적인 본능이다.


교도소는 역설적이게도 이 고립감을 완벽하게 해소해 준다.


작은 감방 안에는 동료 재소자들이 있다. 싫든 좋든 그들과 말을 섞어야 한다. 교도관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점호를 하며 자신의 수인번호와 이름을 불러준다. 쓰러지면 즉각 누군가 발견하고 병원으로 이송해 준다.


바깥세상의 무관심한 침묵보다, 교도관의 호통 소리가 이들에게는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따뜻한 위로가 되는 것이다.


범죄를 저지르고 수갑을 찰 때, 그들은 비로소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다. 경찰이 묻는 말에 대답하며 그들은 오랜만에 사람과 '대화'라는 것을 한다. 이 얼마나 서글프고 기괴한 소통의 방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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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범죄(Silver Crime)의 딜레마와 교정 시설의 붕괴


이러한 노인들의 생존형 범죄, 이른바 '은빛 범죄'의 급증은 국가 형사사법 체계에 거대한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경찰과 판사들도 이들의 사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빵 몇 조각 훔친 노인을 구속하고 징역을 살게 하는 것이 법의 형평성에 맞는지, 그것이 국가 예산을 올바르게 쓰는 것인지 회의감을 느낀다. 하지만 "제발 구속해 달라"며 난동을 피우거나, 풀려나면 또다시 경찰서로 오기 위해 유리창을 깨는 노인들을 사회로 그냥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대한민국의 교도소는 '세계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노인 요양원'으로 변질되고 있다.


휠체어를 탄 재소자, 치매에 걸려 벽에 똥을 칠하는 재소자, 혈액 투석을 받아야 하는 늙은 재소자들이 넘쳐난다. 교도관들은 범죄자를 교화하는 본연의 업무 대신, 기저귀를 갈고 밥을 떠먹이는 요양보호사의 역할까지 떠맡으며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복지 시스템이 감당해야 할 몫이 무너져 내리자, 그 하중이 고스란히 교정 시설로 전가되고 있는 끔찍한 도미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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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타살: 우리는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물건을 훔치는 건 나쁜 짓이지."


따뜻한 방 안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누군가는 이렇게 쉽게 댓글을 단다. 물론 범죄는 정당화될 수 없다.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한 명백한 불법 행위다.


하지만 인간이 생존의 한계선 너머로 밀려났을 때, 도덕률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다.


장발장이 빵을 훔친 것은 그의 인성이 타락해서가 아니라 조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하류 노인들은 자신이라는 조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쇠창살 안으로 들어가는 현대판 장발장들이다.


이들의 범죄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가 만들어낸 사회적 타살'이자 무언의 시위다. 부양의무자 기준이라는 낡은 잣대로 기초수급의 기회를 박탈하고, 찾아가는 복지 대신 책상물림 행정으로 일관한 사회가 그들을 마트의 진열대 앞으로 등 떠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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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철창 너머로 번지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안도감


육중한 철문이 닫히고, 자물쇠가 잠기는 둔탁한 금속성 소리가 교도소 복도에 울려 퍼진다.


수갑을 푼 노인은 좁은 감방 구석에 웅크려 앉는다. 빳빳하고 거친 관급 수의가 몸을 감싸지만, 바깥세상의 칼바람을 막아주기엔 충분하다. 배식구로 들어온 김이 모티락 나는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노인은 그제야 얼어붙었던 얼굴 근육을 풀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살았다..."


자유를 잃고서야 비로소 생존의 안도감을 느끼는 그 기막힌 역설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할까.


지금 우리의 사회는 늙어가고 있다.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감옥을 꿈꾸는 저 노인들의 굽은 뒷모습은, 남의 나라 이야기나 소설 속의 한 장면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운이 나쁘면 맞닥뜨리게 될 우리의 20년 뒤, 30년 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범죄자가 되어야만 밥을 먹을 수 있는 사회에 내일은 없다.


철창 밖의 세상이 철창 안보다 따뜻하다는 것을 증명해 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겨울은 해가 갈수록 더 잔혹하고 시려질 것이다.


늙음이 죄가 되고 가난이 형벌이 되는 세상, 이제는 그 슬픈 굴레를 끊어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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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차 한 잔을 곁에 두고 이 글을 쓰면서도,

창밖의 매서운 바람 소리에 자꾸만 가슴이 시렸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청춘을 바쳐 이 나라를 세우고, 자식을 키워낸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

그들의 노년이 곰팡이 핀 쪽방과 쓰레기통,

그리고 종국에는 교도소의 쇠창살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저를 너무나도 부끄럽고 아프게 만듭니다.


"감옥에 가고 싶다"는 그들의 서글픈 독백은, "제발 나를 좀 살려달라"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처절한 비명이었습니다.


늙고 병들고 가난해졌다는 이유로 사회의 투명 인간이 되어버린 그들을

범죄자라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우리의 무관심이 그들의 손에 수갑을 채운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부디 우리의 노년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맞이할 미래는

늙음이 두려움이 아닌 온전한 쉼이 될 수 있는 세상이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기도합니다.


Written By Yood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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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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