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비로소 '나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다

: 착한 아이의 반란

by 유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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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찻잔이 깨지다


평생 큰소리 한 번 낸 적 없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에게는 투정 한 번 부리지 않는 듬직한 맏이였고, 배우자에게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늘 먼저 양보하는 조용한 반려자였으며, 직장에서는 남들이 꺼리는 일을 군말 없이 떠맡는 호구, 아니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


그런데 마흔 중반을 넘긴 어느 명절, 혹은 평범한 주말 저녁. 늘 그렇듯 무례한 요구를 당연하다는 듯 던지는 가족 앞에서, 그는 갑자기 들고 있던 찻잔을 벽에 집어던진다. 산산조각 난 도자기 파편처럼 정적이 흐르고, 사람들은 경악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너 갑자기 왜 그래? 미쳤어?"


세상은 말한다. 평생 착하던 사람이 중년이 되더니 갑자기 변했다고, 갱년기 우울증이거나 바람이 났거나 미친 것이 분명하다고.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그것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수십 년간 꾹꾹 눌러 담아 폭발 직전까지 팽창했던 억압된 감정의 댐이, 마침내 임계점을 넘어 무너져 내린 것뿐이다.


오늘의 비망록은 평생 '착한 아이'라는 저주받은 가면을 쓰고 살다가, 인생의 중반부에 이르러 비로소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나쁜 사람'이 되기를 선택한, 그 장엄하고도 슬픈 반란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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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착한 아이 콤플렉스(Good Child Syndrome): 사랑을 구걸하기 위해 자아를 잘라내다


심리학자 도널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은 인간의 자아를 '참 자아(True Self)'와 '거짓 자아(False Self)'로 나누었다. 건강한 환경에서 아이는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참 자아를 발달시킨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이 '조건부'일 때 비극은 시작된다.


"말 잘 들어야 착한 아이지.", "네가 양보해야 엄마가 안 힘들어.", "너마저 속 썩이면 아빠는 못 산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내가 화를 내거나 슬퍼하면,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나를 버릴지도 몰라.'


생존의 위협을 느낀 아이는 살기 위해 자신의 진짜 감정(분노, 슬픔, 이기심, 욕망)을 무의식의 지하실에 가두어버린다. 그리고 부모가 원하고 세상이 칭찬하는 얌전하고 순종적인 모습의 '거짓 자아'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것이 바로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탄생이다.


이들은 타인의 감정을 읽는 레이더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있다. 상대의 미세한 표정 변화에도 기민하게 반응하며, 타인의 불쾌함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갈등이 두려워 늘 "미안해", "내가 할게", "괜찮아"를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전혀 괜찮지 않다. 남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한 그들의 내면은,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서서히 말라죽어가는 텅 빈 빈껍데기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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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예된 자아와 중년의 시한폭탄


왜 하필 '중년'에 폭발하는가? 여기에는 신체적, 심리적, 실존적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① 에너지의 고갈: 억압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무거운 스프링을 손으로 꾹 누르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20대와 30대에는 젊은 혈기와 체력으로 그 스프링(억눌린 감정)을 누를 힘이 있었다.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내가 참으면 평화롭겠지'라는 희망 고문으로 버텼다. 하지만 40대, 50대가 되면서 신체적 에너지가 저하된다. 더 이상 거짓 자아의 무거운 껍데기를 유지할 근력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꽉 누르고 있던 손에 힘이 빠지는 순간, 스프링은 무서운 속도로 튀어 오른다.


② 부모의 노화와 허상의 붕괴


평생 인정받고 싶었던 대상, 즉 '절대 권력'이었던 부모가 늙고 병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중년의 자녀는 기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저렇게 작고 초라한 노인에게 칭찬받기 위해, 나는 내 인생을 통째로 갈아 넣었던가? 부모의 기대라는 것이 사실은 거대한 허상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동안 참아왔던 억울함이 마그마처럼 끓어오른다.


③ 실존적 각성: "내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칼 융(Carl Jung)은 중년기를 '개성화(Individuation)'의 시기라고 불렀다. 사회적 가면(페르소나)을 벗고 온전한 자신을 통합해 나가는 시기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며, 사람들은 거울 속의 낯선 자신을 바라보며 묻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를 위해 살았는가?", "내게 남은 시간 동안에도 계속 남의 비위만 맞추다 죽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요"일 때, 거대한 반란의 서막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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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반란의 형태: "미쳤다"는 말을 듣는 용기


착한 아이의 반란은 주위 사람들에게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보이기 때문에, 종종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가족 단절과 절연


평생 경제적, 정서적으로 착취당하던 K-장녀, K-장남들이 어느 날 갑자기 부모와 형제의 연락처를 차단한다.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패륜아"라는 친척들의 비난이 쏟아지지만, 그들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것은 복수가 아니라, 썩어 들어가는 자신의 팔다리를 잘라내는 심정으로 행하는 생존을 위한 외과 수술이다.


황혼 이혼과 가출


"애들 클 때까지만, 남들 눈도 있으니까..." 하며 배우자의 폭언, 외도, 무시를 참고 견디던 이들이 어느 날 이혼 소장만 남겨두고 집을 나간다. 상대방은 "이제 와서 왜 이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라며 적반하장으로 펄펄 뛰지만, 착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이미 '이해'와 '관용'의 창구는 영구 폐쇄된 지 오래다.


사회적 일탈과 퇴사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우거나, 그동안 억눌렀던 욕망을 기행(기이한 행동)으로 표출하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은 "늦바람이 무섭다", "사춘기가 마흔에 왔냐"며 비웃는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타인의 시선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평생 남의 눈치를 보느라 잃어버렸던 자신의 목소리를, 악을 써서라도 내보고 싶은 간절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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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분노 이면의 슬픔: 지하실의 '내면 아이'를 만나다


반란의 시기, 겉으로는 분노와 적개심이 불타오르지만, 그 이면에는 바다보다 깊고 어두운 '슬픔'이 자리하고 있다.


심리 상담실을 찾은 중년의 내담자들은 처음에는 부모와 배우자를 향해 핏대를 세우며 욕을 하다가, 어느 순간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운다. 그것은 마흔 살, 쉰 살의 어른이 우는 것이 아니다. 일곱 살, 열 살 시절 무의식의 지하실에 갇힌 채 단 한 번도 위로받지 못했던 '상처 입은 내면 아이(Inner Child)'가 수십 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와 터뜨리는 오열이다.


"나도 그때 무서웠어."


"나도 장난감 갖고 싶었어."


"나도 동생처럼 안아달라고 떼쓰고 싶었어."


이 슬픔을 온전히 마주하는 애도(Mourning)의 작업은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잃어버린 자신의 청춘, 남을 위해 희생하느라 텅 비어버린 시간들에 대한 장례식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고통스러운 눈물의 강을 건너지 않고서는 결코 새로운 나로 태어날 수 없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그동안 버려두었던 나의 불쌍한 내면 아이를 꼭 끌어안고 "이제는 내가 너를 지켜줄게"라고 약속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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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진정한 독립: 미움받을 용기를 넘어, '온전한 나'로


반란의 폭풍우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면, 폐허가 된 관계의 터전 위에서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한다. 착한 아이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타인을 공격하는 악당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감정과 나의 감정 사이에 건강한 '경계선(Boundary)'을 세우는 작업이다.


① 거절의 근육 키우기


이제는 "No"라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무리한 부탁을 받았을 때,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뛰더라도 "그건 좀 어렵겠습니다", "그 말은 기분이 나쁘네요"라고 담담하게 내뱉어야 한다. 처음엔 죄책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거절의 근육이 붙기 시작하면, 타인이 나를 미워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한낱 환영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다.


② 타인의 실망을 견디는 법


내가 변하면 주변 사람들은 반드시 저항한다. 자신들에게 편리했던 '착한 호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너 이기적으로 변했다", "실망이다"라는 말로 나를 조종하려 들 것이다.


이때 명심해야 한다. 그들의 실망은 그들의 몫이지,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내가 누군가를 실망하게 할 용기가 없다면, 나는 평생 타인의 욕망에 기생하는 노예로 살아야 한다.


③ 착한 사람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


건강한 성인은 완벽하게 착한 사람이 아니다. 때로는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부당한 대우에는 분노할 줄 알며, 자신의 약점과 찌질함을 부끄럼 없이 인정하는 사람. 빛과 그림자를 모두 껴안은 '온전한 사람(Whole person)'이야말로 중년의 반란이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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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이 되기로 한 당신의 두 번째 스무 살


착한 아이의 반란은 파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이 자신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 벌이는 가장 숭고한 창조의 과정이다.


마흔이 넘어, 혹은 쉰이 넘어 처음으로 부모에게 소리를 지르고, 시댁과 처가에 발길을 끊고, 부당한 관계에 이별을 고한 당신.


세상의 시선에 상처받아 밤잠을 설치고, "내가 너무 심했나?" 하며 무거운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당신은 미치지 않았다. 당신은 이기적인 것도, 패륜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당신은 그저 수십 년 만에 당신 인생의 운전석에서 불법 점거자들을 몰아내고, 비로소 진짜 주인의 자리에 앉았을 뿐이다.

착한 아이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진 당신의 어깨가 조금은 홀가분해지기를 바란다.

이제 남은 인생은 눈치 보지 말고, 약간은 뻔뻔하게, 그리고 지독하게 이기적으로 살아도 좋다. 당신은 이미 과거의 시간 동안 타인을 위해 충분히, 아니 차고 넘치게 헌신했으므로.


당신의 그 아프고도 찬란한 반란을, 열렬히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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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착한 딸', '든든한 아들',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이자 족쇄에 묶여 살아온 당신.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겉으로는 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야 했던 당신의 그 깊은 병을,

세상 사람들은 '착하다'라고 불렀습니다.

참으로 잔인한 칭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늦은 나이에 터져 나온 당신의 분노는 누군가를 망치기 위함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살리기 위한

처절하고도 거룩한 생존 본능입니다.


그러니 당신을 향해 날아오는

"변했다", "독해졌다"는 비난을 훈장처럼 달게 받으세요.

그 비난이야말로 당신이 마침내 타인의 노예가 아닌 당신 삶의 진짜 주인이 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니까요.


부디 죄책감이라는 유령에 다시 발목 잡히지 마십시오.

남은 당신의 생은, 기꺼이 미움받고 찬란하게 자유로워지기를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당신의 삶을 사세요.


Written By Yood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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