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낙제점' 엄마였어요

by 유인숙

26년 차 원장도 사실은 ‘육아 우등생’이 아니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시는 부모님들께 고백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26년 동안 수천 명의 아이를 돌보며 '베테랑 원장' 소리를 듣는 저도, 정작 제 두 아들을 키울 때는 매일매일이 '낙제점'인 엄마였다는 사실을요.


그 시절 제 별명은 아마 '빨리빨리 귀신'이었을 겁니다. "빨리 일어나!", "빨리 입어!", "빨리 좀 가자!" 제 입에서 나가는 말의 80%는 속도 조절 명령이었죠. 어느 날, 일곱 살 큰애가 눈물 콧물 다 짜며 "엄마, 난 엄마의 '빨리빨리'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라고 절규했을 때,

저는 제가 키운 것이 아이가 아니라 엄마의 '초조함'이었다는 걸 깨닫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아, 원장 명함은 어린이집 문앞까지만 유효하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저 역시 '정답 없는 세상'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초보 엄마일 뿐이라는 걸 말입니다.


부모님들, 지금 혹시 아이가 밥을 늦게 먹어서 속이 터지시나요? 어린이집 등원길에 개미 구경하느라 멈춰 선 아이 뒤에서 시계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계신가요? 괜찮습니다.

여러분만 그런 게 아닙니다. 26년 전의 저도 그랬고, 지금 이 순간 전국의 수많은 MZ 부모님들이 똑같은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까요.


이제 저는 준엄한 교육자로서의 훈계는 잠시 접어두려 합니다.

대신 여러분의 '옆집 언니'가 되어 따뜻한 차 한 잔 나누며 수다를 떨 준비를 마쳤습니다.

애착 형성이 안 된 것 같아 밤잠 설치며 검색창만 뒤지는 밤, "내가 부모 자격이 있나" 싶어 울컥 눈물이 나는 날, "원장님" 말고 "언니"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AI는 알려주지 않는 육아의 찌질하고도 찬란한 뒷이야기들, 26년 전 제가 흘렸던 눈물만큼의 위로를 담아

여러분의 고충을 묵묵히 들어드리고 싶습니다.

AI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분석해주고 최적의 커리큘럼을 짜주는 시대라지만, AI는 절대로 해줄 수 없는 일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와 함께 흙탕물에 발을 담그고, 아이의 엉뚱한 농담에 배꼽이 빠지게 웃어주고, 아이의 똥 기저귀를 능숙하게 처리하지 못해 서툴게 처리하며, 아이의 늦은 걸음마를 보며 남몰래 가슴을 졸이는 ‘서툰 사랑'이 아닐까요?


부모라는 역할에는 은퇴가 없지만, '아이의 어린 시절'은 눈 깜짝할 새 은퇴를 선언하고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니 부모님들, 조금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슈퍼 컴퓨터'가 아니라, 조금은 허술해도 내 옆에서 같이 웃어주는 '내 편'이니까요.

훗날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 엄마(아빠)는 참 바빴지만, 그래도 내가 부를 때면 늘 나를 바라봐줬어"라는 따뜻한 기억 하나만 남겨줄 수 있다면,

여러분의 육아는 이미 ’백 점‘을 넘어 '천 점'입니다.

지금 이 책을 덮고 나면, 곁에 있는 아이의 눈을 3초만 가만히 바라봐 주세요.

AI는 죽어도 모르는 그 깊은 눈망울 속에,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세상의 모든 정답이 들어있을 겁니다.

"오늘도 참 애쓰셨어요. 고생 많았어, 동생들!"

여러분의 서툰 걸음마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옆집 언니 같은 원장이 이 길 끝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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