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과자

1화

by 유병천

1988년,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었다.




이 이야기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비둘기에 관한 이야기다. 이미 비둘기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좀 특별한 비둘기인 도비아의 모험 이야기다. 도비아를 만난 건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공원에서 어린아이가 과자봉지를 열다가 과자가 모두 쏟아졌다. 과자들이 바닥에 흩어질 때 주위의 많은 비둘기가 달려들어서 먹었다. 그런데 유독 한 마리의 비둘기만 나뭇가지 위에 앉아 과자를 쪼아 먹는 비둘기들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갈색 얼룩무늬 깃털에 새빨간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우리 함께 도비아의 모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힘차게 날아올라 산들산들 부는 봄바람을 만끽하며…….




겨울 동안 거무튀튀한 모습으로 무겁게 공원을 지키던 나무에도 새싹이 돋고, 황토색 잔디에도 연초록의 기운이 올라왔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자리에 있는 나무에는 벌써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따뜻한 날씨는 사람들을 공원으로 나오게 하는 마법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강아지와 함께 뛰어노는 아이도 있었고, 유모차를 천천히 끌며 조용히 대화하는 젊은 부부도 있었다. 벤치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사람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인공으로 만들어놓은 산책로에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가는 노인도 있었고, 걷다 서기를 반복하며 잠시 허리를 펴는 노인도 있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견딘 후 서로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었다. 표정이 밝아 보이는 노인이 과자봉지를 열자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순식간에 비둘기가 모여들었다. 노인은 과자를 한 손에 움켜쥐고 비둘기를 향해서 뿌렸다. 과자가 떨어지는 곳마다 비둘기가 다투며 쪼아댔다. 마치 한 달을 굶은 것처럼 정신없이 과자를 먹었다. 과자 하나를 세 마리의 비둘기가 쪼기도 했다. 부리가 닿을 때마다 부서지는 과자는 순식간에 비둘기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랫동안 모이를 먹지 못한 모양이구나.”

과자를 주던 노인이 말했다. 과자를 다 먹은 비둘기들은 땅을 쪼며 노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마치 다 먹었으니 과자를 더 달라고 시위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노인은 다시 한 손 가득 과자를 움켜쥐고 허공에 과자를 뿌렸다. 노인의 손을 떠난 과자가 땅에 떨어지기 무섭게 비둘기가 움직였다. 과자 봉지가 텅 빌 때까지 비둘기들은 그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내가 뭐라고 했어! 나무에서 새싹이 돋아나면 분명히 우리에게 과자를 줄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 했잖아. 내 말이 맞았지?”

한껏 과자를 먹은 비둘기 한 마리가 소리쳤다. 회색 날개에 두 개의 검은색 줄무늬를 가지고 목 부위가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비둘기였다. 두 줄의 날개 무늬가 무척 선명해서 그 비둘기를 두줄이라 부르기로 했다. 두줄이는 다른 비둘기와 사이가 좋아 보였다. 과자를 부리로 집어서 던지면 다른 비둘기는 다시 그 과자를 쪼았다. 두줄이 주변의 비둘기들은 모두 목덜미가 무지개색이었지만 날개의 무늬는 제각각이었다. 대부분 회색 날개에 작은 점 모양이 불규칙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두줄이과 가장 사이가 좋아 보이는 비둘기는 날개에 하나의 줄무늬를 가진 비둘기였다. 선명한 하나의 줄무늬 때문에 그 비둘기를 한줄이라 부르기로 했다. 목을 비비며 다정한 모습이 두줄이의 연인처럼 보였다. 맛있는 과자를 발견할 때면 두줄이는 한줄이에게 가장 먼저 가져다주었다. 한줄이가 모이를 먹을 때 다른 비둘기가 다가오면 두줄이가 나서서 물리치곤 했다. 두줄이가 한줄이를 툭하고 건드린 후 일 미터 정도 날아가면, 한줄이도 바로 따라서 날았다. 배불리 모이를 먹은 후엔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서 일광욕을 즐기기도 했다.

도비아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날개의 색이나 눈의 색깔이 달라서가 아니었다. 전깃줄 위나 땅을 걸어 다니는 비둘기와 달리 녀석은 항상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다른 비둘기가 사람이 던져준 과자를 받아먹고 있을 때 도비아는 땅속 벌레를 잡아먹거나 무심한 듯 비둘기 떼를 바라보고 있었다. 매일 아침 노인이 던져주는 과자도 도비아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다른 비둘기가 과자를 향해 날아갈 때 오히려 도비아는 붉은색 눈을 부릅뜨고 살아있는 먹잇감을 찾았다. 도시의 공원에는 도비아가 먹을 만한 열매나 벌레가 많지 않아 보였다. 배가 고플만한데도 절대 과자를 먹지 않는 모습이 결연한 독립투사 같았다.

“야! 너도 내려와서 과자를 같이 먹자!”

두줄이가 도비아에게 말했다. 다른 비둘기와 달리 두줄이는 도비아에게 관심을 보였다. 두줄이 주변의 비둘기들은 모두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과자를 먹으러 모일 때만 함께하는 것 같았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질수록 두줄이의 몸도 살이 점점 올랐다. 상대적으로 말라 보이는 도비아를 보며 두줄이는 마음이 쓰였다. 한줄이는 두줄이에게 무심하게 말했다.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잖아.”

두줄이는 더는 도비아에게 말하지 않았다. 도비아는 나무 위에서 두줄이를 봤다. 도비아의 눈에는 살찐 두줄이의 모습이 뒤뚱거리는 돼지처럼 보였다. 도비아는 공원에서 사는 삶이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공원의 다른 비둘기와 다른 색깔을 가진 것처럼 도비아는 자신의 삶이 다른 비둘기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더욱 멋진 삶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도비아는 나무에서 뛰어내려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날고 또 날아도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었다. 지칠 때까지 날다가 나무로 돌아오면 그나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잠시 휴식을 취하니 도비아도 배가 고파졌다. 하지만 두줄이들이 먹는 과자를 먹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느끼한 기름 냄새는 토할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도비아는 벌레를 찾아 나섰다. 공원에서 벌레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비 온 후라면 지렁이나 달팽이가 기어 다니지만 해가 강하게 뜨는 날이면 흙 속을 뒤져야 했다. 운이 좋은 날이면 쥐며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한 번은 도시로 먹이를 찾아 나선 적이 있었다.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위에서 살아있는 곤충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바퀴벌레였지만 도비아는 바퀴벌레를 먹지 않았다. 도시는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가로수 사이에 흙이 있었지만, 그곳에는 곤충이 살지 않는 듯했다. 봄이 아니라 가을도 마찬가지였다. 도비아가 먹을 수 있는 열매는 도시엔 많지 않았다. 플라타너스나 은행나무가 대부분이었고, 은행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의 냄새는 정말 고약했다. 특히 도비아는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을 정말 싫어했다. 얼핏 보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가로수 잎사귀는 온통 검은 먼지로 가득했다. 도비아는 도시도, 도시의 나무도 싫은 듯 보였다. 다시 공원으로 날아가도 사람이 던져주는 과자를 기다리는 비둘기들만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