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모험

6화

by 유병천

초록색 잎사귀들이 점점 노란색으로 변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잔디도 황금색으로 몸치장을 시작했다. 커다란 플라타너스 잎이 여기저기 떨어졌다. 바람이 불면 낙엽은 스스슥 소리를 내며 이동했다. 아침마다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낙엽을 쓸어 담는 청소부가 보였다. 과자를 주던 노인의 손에 지팡이가 들려있었고, 얼굴의 주름은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공원 비둘기에게 과자를 던지는 것도 힘겨운 모습이었다. 노인이 과자를 던지자 비둘기들이 모여들었다. 매번 같은 과자이지만 비둘기들은 맛있게 먹었다.

“언제까지 너희에게 모이를 줄 수 있을까 모르겠구나.”

노인이 혼자 말했지만, 비둘기들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노인에게는 그저 비둘기들이 구구구, 꾸르륵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쪼아대는 것을 볼뿐이었다.

“그래, 많이 먹어라. 많이 먹어.”

노인의 말에도 왠지 힘이 빠져있는 느낌이었다. 두줄이와 한줄이도 무리들 속에서 과자를 먹었다.

“사람이 주는 과자는 정말 맛있어! 한줄아 난 너와 영원히 이렇게 과자를 먹을 거야!”

두줄이가 한줄이에게 말했다.

도비아는 매일 발자국을 찾아갔다. 발자국과 아버지의 모험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도비아도 아버지처럼 모험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도비아는 답답한 도심 속 공원보다 산이 훨씬 좋았다. 모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날개가 들썩거렸다. 넓은 세상을 마음껏 날아보고 싶었다.

“아저씨, 저도 모험을 떠나고 싶어요!”

도비아의 말을 듣고 발자국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처럼 집안을 왔다 갔다 했다. 잠시 멈춰서 고개를 들기도 하고, 바닥을 보기도 하며 서성거렸다. 도비아는 그런 발자국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결심이 선뜻 발자국이 도비아 앞에서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도비아, 모험에 관한 내 생각은 좀 다르단다. 도비아가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구나.”

“하지만 여긴 너무 시시하고 재미가 없는 걸요! 아버지와 아저씨처럼 저도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어요!”

“아저씨도 이곳을 떠나면 낭만적인 모험이 기다릴 줄 알았단다. 하지만 여행하는 동안은 정말 위험의 연속이었단다. 곳곳마다 목숨을 노리는 커다란 새들, 숲 속에 사는 맹수들, 목마름과 배고픔. 휴우. 세상은 분명히 넓단다. 하지만 넓은 세상을 보는 것만으론 아무런 의미가 없어.”

“왜요? 저도 아버지처럼 모험 이야기를 들려주면 되잖아요.”

“도비아, 그건 좀 더 생각해보자. 먼저 아저씨처럼 너만의 집을 지어보는 것은 어떠니?”

“집이요?”

“그래. 네가 근사하다고 한 이 집처럼 너도 멋진 집을 지어보면 어떨까?”

“하지만 저는 집을 짓는 법을 몰라요.”

“아저씨가 알려주마. 누구든 처음부터 잘할 순 없단다. 말이 나온 김에 지금부터 시작해 보자꾸나.”

발자국은 도비아를 데리고 산속을 날아다녔다. 집을 지을만한 좋은 나무를 고르기 위해서였다.

“아저씨 집 옆에 있는 나무에 지으면 안 되는 거예요?”

도비아가 물었지만, 발자국은 대답하지 않고 나무 사이를 날아다녔다. 하루 종일 날아다니기만 했다. 도비아는 힘이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날아만 다니는 발자국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산을 거의 다 둘러본 후 발자국의 집으로 돌아왔다. 온종일 날아다녀서 그런지 집안은 더욱 포근하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집안에 모아둔 먹이를 꺼내 먹으며 발자국이 말했다.

“내일 좀 더 찾아보기로 하자.”

“산 전체를 다 돌아봤는데 왜 내일 또 찾아야 하나요?”

발자국은 대답 대신 미소만 지어 보였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미소였다.

“오늘은 여기에서 자도록 해라.”

종일 날아다녀서 그런지 도비아도 정말 힘들었다. 더는 날 수 없을 것 같아서 발자국의 말을 듣고 잠을 청했다. 눈을 감자마자 바로 잠이 들 정도였다. 물을 마신 후 발자국은 잠든 도비아를 보며 살며시 속삭였다.

“지치고 힘들 때 쉴 안전한 공간 필요하단다. 지금처럼 잠든다면 올빼미가 물어가도 모를 테니까 말이다. 잘 자거라. 귀여운 도비아.”

도비아를 재운 후 발자국은 집을 짓기 적합한 나무를 떠올렸다.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편안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벽면 나무에 도면을 그렸다. 안쪽 공간은 아늑하고 바깥은 외부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뾰족한 나뭇가지를 배치한 집이었다. 발자국도 지쳤는지 도면을 그린 후 바로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뜬 도비아는 벽면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발자국의 집보다 훨씬 근사한 모양의 집이 그려져 있었다. 도비아는 당장이라도 집을 짓고 싶었다. 잠자는 발자국을 깨우고 싶었지만, 너무 곤하게 자고 있어서 그만두었다. 벽 앞에 다가가서 안쪽의 도면을 자세하게 봤다. 커다란 나무에 깊은 홈이 파여 있어서 벽을 이루고 양옆으로 굵게 뻗은 나뭇가지는 든든한 바닥이 되어줄 수 있었다. 겉은 날카로운 나뭇가지로 촘촘히 엮여있었고, 나뭇가지마다 가시가 박혀있었다. 사이마다 나뭇잎이 있어서 얼핏 보면 가시나무 숲을 옮겨다 놓은 듯했다. 도비아는 벌써 집을 지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 보였다. 빨리 발자국이 일어나서 같이 집을 지으러 가길 바랐다. 하지만 발자국은 꼼짝하지 않았다. 도비아는 참을 수 없어서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벽면에 그려진 나무를 찾기 위해 날았다. 분명히 발자국이 봤다면 어제 갔던 곳 중 하나일 것 같았다. 도비아는 신이 나서 날았다. 어제와 다르게 찾아야 할 나무가 생겼다. 나무 사이사이를 옮겨 다니며 깊은 홈이 파인 나무를 찾으나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도비아는 다시 벽면의 그림을 떠올렸다. 굵은 가지가 연결된 부위에 깊은 홈이 있는 나무였다. 산을 한 바퀴 거의 다 돌았는데도 찾지 못했다.

“이상하다. 왜 안 보이지?”

발자국의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다. 도비아가 돌아왔을 때 발자국은 깨어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오는 도비아를 보며 발자국이 말했다.

“아침 일찍 어딜 다녀오니?”

“벽면에 그려진 나무를 찾다가 왔어요!”

밝은 목소리로 도비아가 대답했다.

“오호! 그랬구나. 그래. 나무는 찾았니?”

“아니요. 산을 한 바퀴 다 돌았는데도 찾지 못했어요.”

시무룩한 표정으로 도비아가 대답했다.

“이런. 못 찾았구나.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

“그럴 리 없어요! 정말 열심히 찾았는걸요. 나뭇가지 사이에 홈이 있는 나무는 단 한 곳도 없었어요!”

모든 나무를 살폈다는 듯이 강한 자신감으로 보이며 도비아가 말했다. 발자국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찾지 못했는지 말해줄까?”

“네! 제가 못 본 곳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당장 날아가 볼게요!”

“홈이 파인 나무를 찾으니 못 찾는 게 당연하지. 그 홈은 네가 팔 홈이란다. 하하하.”

크게 웃는 발자국을 보며 도비아가 말했다.

“제.가.요?”

발자국의 말은 사실이었다. 도비아의 집을 짓는 공사는 다음 날부터 바로 시작했다. 집을 지을 나무는 발자국의 말대로 발자국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림과 다른 점은 홈을 팔 자리를 중심으로 총 4개의 나뭇가지가 사각형을 이루며 뻗어있다는 점이었다. 발판 이외에도 지붕을 튼튼하게 지을 수 있는 그런 나무였다. 나뭇가지 중심에 홈을 파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어떻게 파나요?”

“어떻게 파긴, 부리로 파야지. 네 작고 귀여운 부리로 말이다. 하하하.”

“부리로 나무를 팔 수 있어요?”

“물론이지. 딱따구리처럼 빠르게 파진 못하겠지만 열심히 파면 팔 수 있단다.”

“딱따구리요?”

“딱딱거리며 나무에 구멍을 뚫고 집을 만든 후 그 안에 들어가서 사는 새란다. 여행 중에 봤는데 그곳은 정말 안전해 보이더구나. 네 집도 딱따구리의 집을 생각해서 그린 거란다.”

“부리가 부러지진 않을까요?”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일단 시작해보아라. 난 내일 다시 오마.”

발자국이 날아가고 도비아는 혼자 남았다. 근처에 있는 나무였지만 발자국이 그려놓은 그림과는 달랐다. 과연 자신이 커다란 홈을 팔 수 있을지 자신도 없었다.

“난 모험가의 아들이야!”

도비아는 힘차게 소리친 후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커다란 나무껍질은 단단했다. 나무를 쫄 때마다 부리가 아팠다. 딱딱 소리를 내며 나무를 계속 쪼았다. 나무껍질은 너무도 단단해서 흠집조차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온몸에 땀이 나고 움켜잡은 발톱도 무척 아팠다. 배가 고파서 잠시 쉬며 열매를 따서 먹었다. 구멍을 파기 전에 발톱과 부리가 다 부러져버릴 것만 같았다.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홈파기를 시작하니 쉬기 전보다 발톱과 부리가 훨씬 아팠다. 여전히 나무는 그대로였다. 몇 년을 파도 그림 속의 홈은 파지 못할 것 같았다. 도비아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때 발자국이 날아왔다.

“잘 되어가고 있니?”

“아니요. 아직 흠집도 못 냈어요.”

“네 부리가 아직 약해서 그럴 거다. 잠깐 비켜보아라.”

발자국은 나뭇가지 사이에 자리를 잡더니 부리로 나무를 파기 시작했다. 견고해 보이던 나무껍질이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했다.

“도비아, 어떠니? 벗겨지지 않는 나무껍질이란 없단다.”

나무껍질이 벗겨지는 모습을 보며 도비아는 다시 한번 힘을 냈다. 껍질이 벗겨진 나무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껍질을 쫄 때보다 부리도 아프지 않았다. 도비아는 신이 나서 나무에 홈을 팠다. 아주 작긴 하지만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도비아 잘했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다시 이어서 하자구나. 집이 완성될 때까진 아저씨 집에서 살도록 해라.”

도비아는 부리와 발톱이 끊어질 것처럼 아팠지만 발자국의 칭찬을 받고 무척 기뻤다. 발자국의 집에 도착하자 엄청난 허기가 몰려왔다. 발자국이 내어 온 음식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평소 먹던 양의 두 배는 족히 먹은 것 같았다. 도비아도 자신이 그렇게 많이 먹을 줄 몰랐다. 배가 부르자 도비아는 발자국의 이야기를 들을 힘도 없었다.

“아저씨, 너무 졸려요. 저 먼저 잘게요.”

“그래. 잘 자라. 내일이면 오늘보다 더 아플 거란다. 좋은 꿈 꾸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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