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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Feb 17. 2024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22)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우리는 뭔가에 동참하는 동안만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417




27. 얼마 지나지 않아 아가테가 슈툼 장군으로 인해 모임에 모습을 드러내다


"포이어마울은 ‘인간은 선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오. 한마디로 그 드랑잘 교수가 후원하는 게 바로 그 테제요. 인간이 선하다는 거 말이오. 사람들은 그게 유럽의 테제라고 말하죠. 포이어마울은 미래가 아주 탄탄하다고들 하고. 드랑잘 교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의 과부인데, 그 배경으로 포이어마울을 유명인으로 만들려고 해요. 어찌 됐건 당신 사촌이 지도력을 잃고 드랑잘 부인의 살롱이 그걸 넘겨받을 위험이 상존해요. 그 집 살롱에도 유명한 사람들이 죄다 들락거리고 있으니까."
-422


'선하다'는 언어는 무척 어려운 개념이다. 시대, 배경, 관념, 문화, 환경 등에 따라 개념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동기가 없는 상태의 선함을 이야기한 철학자의 주장을 실천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모두가 자신 안에서 선함을 정의 내리며 살아간다. 자신의 행동에 이유를 만들어 주며 합리화시키는 과정을 핑계를 대는 게 아니라는 말로 포장한다. 유명한 사람이 모인 자리를 쫓아다니는 것이라던가 그들의 말을 맹신하는 것은 판단의 기준을 타인을 통해서 배우려는 의도와 자신의 행동에 동질감을 찾으려는 욕망이 공존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8. 너무 지나친 명랑함


“너도 발터를 알 거야. 우린 오래전부터 서로를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내가 발터 때문에 화가 나고, 발터도 나 때문에 화가 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친구를 보고 있으면 마치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은 사랑스러운 느낌이 들 때가 많아. 봐, 사람은 서로 이해하기 전에 이미 그 사람과 합의가 되어 있다는 건 동화처럼 아름답고 무의미한 이야기야. 마치 봄철에 물이 사방에서 계곡으로 흘러들듯이!”
-435


발터와 울리히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처럼 보인다. 오랜 친구 사이에 자주 발견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어릴 적 생각의 모양이나 크기가 비슷할 때엔 모르다가 성인이 된 후 서로의 생각의 모양과 크기가 달라지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 인간의 성향이라는 관점에서는 불편함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오래된 친구보다 비슷한 관심사의 친구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사랑은 원래 단순한 접근 충동이자 장악 본능이야. 사람들은 사랑을 신사 숙녀라는 양극으로 나누었고, 그 두 극 사이에서는 광기의 긴장과 압박, 경련, 변성이 생겨났어. 오늘날 우리는 음식학처럼 우스꽝스러워진 이 과장된 이데올로기에 물렸어. 아가테, 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피부 자극과 전체 인간 사이의 이러한 연결이 다시 철회된다면 무척 반가워할 거라고 확신해! 조만간 단순한 성적 동지애의 시대가 찾아올 거야. 예전에는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던 망가진 낡은 태엽 더미 앞에 이제 소년 소녀들이 영문도 모르고 사이좋게 서 있는 시대지!”
-436


이분법. 세상을 둘로 갈라놓은 이 법칙은 다양한 분야를 장악하고 있다. 개인 간의 다툼에서 참혹한 전쟁까지 이분법적 사고가 낳은 결과가 아니던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많은 사람의 목숨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분리되고 또 하나가 되려는 노력을 하다가 분리되는 과정을 겪으면서도 학습되지 않는 것은 사피엔스의 진화 과정에서 혹은 생존과정에서 유전자 깊숙한 곳에 새겨져 있기 때문일까. 영문도 모르고 사이좋게 서 있는 시대가 온다고 해도 다시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기대가 생기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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