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나는 당신들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노라!” 삶에 불만이 많았던 시인이 자신의 무덤에 새기게 한 글귀였다. 아가테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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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다가올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사고로 갑자기 죽는 경우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겠지? 어떤 사람은 죽음을 맞이한 뒤에도 의지가 살아남아서 이어진다.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삶의 불만이 많았다는 시인처럼 타인들에게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는데 지나치게 의식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지. 그렇다고 안하무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는다. 무덤에 "당신을 만나서 즐거웠습니다!"라는 글귀를 새길 수 있길 바라는 삶이 조금은 더 낫지 않을까.
얼마 뒤에야 그녀는 자신을 산란하게 했던 것 속에 자신이 생생하게 떠올리려고 했던 바로 그것이 표현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그녀 자신이 쓸모없는 잉여존재라는 근본 감정이었는데, 이것을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삶은 그녀 없이도 완벽하다는 것이다. 삶 속에서는 그녀가 아무 할 일이 없을 정도로. 이러한 참담한 감정은 기본적으로 절망도 상심도 아니라 아가테가 항상 알고 있듯이 가만히 듣고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었다. 어떤 충동도 없이, 전력을 다할 어떤 가능성도 없이. 질문 던지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 놀랄 때가 있는 것처럼 이러한 배제의 상태에는 안전한 보호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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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테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존재에 관한 의문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살면서 무언가는 하며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인데, 먹고, 자고, 싸면서 존재에 관한 고민만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세상에 내가 없다면?'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결국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지켜야 하는 모든 것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물어도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도움을 좀 드릴까요? 사람은 자신의 아픔을, 심지어 제가 지금 여기서 보고 있는 것처럼 자아의 깊은 동요 같은 고통조차 아무 관련이 없는 낯선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쉽게 털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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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의지를 잃어버린 사람은 타인이 보기에도 뭔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지는가 보다. 힘든 순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한 명의 사람만 있어도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그 사람은 정말 소중한 사람일지 모른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가까운 사람이 떠나고 나면 오롯이 혼자 남는다. 그럴 때 낯선 사람의 한 마디가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평소에 가까운 사람에게 잘하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