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의 <위버멘쉬> 중에서
인간관계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저 사람 어때?"이다. 사람은 타인을 평가하길 좋아한다. 저마다 나름의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한다. 특정 인물을 별로라고 말하거나 좋은 사람 같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 머릿속에는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그걸 어떻게 알지?' 사람은 상대의 생각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말이나 행동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섣불리 타인을 정의 내리는 사람의 경우 보통 자신이 겪은 한두 가지의 에피소드를 빗대어 이야기한다.
"오래 보시죠!"
타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습관처럼 하는 말이다. 사람을 판단하는 일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좋았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고 안 좋아지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가장 많은 사례는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좋다고 느끼는 경우이다. 본인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싫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잘해주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잘해주다가 목적을 달성하거나 그렇지 못했을 경우 돌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만날 때부터 상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어떤 이는 직관으로 또 다른 이는 직감으로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안 좋은 사람이라고 단정하고 만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많은 경우 시행착오를 겪으며 상대를 인지해간다.
예를 들면, A 씨는 B 씨를 오래 겪어서 알고 있다. 처음 본 사람에게 접근하는 패턴부터 자신의 목적과 맞지 않을 때 취하는 행동까지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새로 알게 된 사람인 C 씨에게 B 씨가 비슷한 패턴으로 접근하고 잘해준다. A 씨는 B 씨의 패턴을 알고 있다고 해도 쉽게 C 씨에게 조언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C 씨 입장에서는 잘해주는 B 씨가 좋을 수도 혹은 고마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A 씨가 B 씨에 관하여 안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면 C 씨는 오히려 A 씨를 이상하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은 손절할 때조차 굳이 책 잡히지 않는다.
그는 차단하지 않는다. 소란도, 감정의 폭발도 없다. 그저 자신의 방향으로 조용히, 묵묵히 걸음을 옮길 뿐이다.
대신 마음을 거두고 시선을 거두고 침묵으로 이야기한다. 왜냐면 안다. 차단조차 에너지를 쓰는 일이라는 걸.
에너지는 함부로 쓰는 게 아니다. 기분이 아니라, 기준 있는 곳에 써야 한다.
누구를 밀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내 안에 들일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저 문을 닫는 것.
내 삶이 점점 단단해지는 이유는 사람을 덜 만나서가 아니라, 더 올바른 사람과만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자는 싸우지 않는다. 그는 거리를 두고, 자신의 고요함을 지킨다."
시끄러운 단절이 아니라 조용한 무관심이 가장 단단한 경계선이다.
함부로 끊지 말고, 쓸데없는 곳에 정을 주지도 마라. 모든 문제는 마음을 잘못된 사람에게 썼을 때 시작된다.
그러니 모두에게 친절하지 마라. 당신의 마음은 값싼 인연에 흘리기엔 너무 깊고 귀한 것이다.
모두에게 착할 필요는 없다. 세상은 사랑과 선한 마음으로만 가득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어디에 쓸지 더 신중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잘해주려 애쓰는 건, 결국 당신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해 보라. 당신이 정성을 다해 베푼 친절이 당연하게 여겨지거나 당연함을 넘어 오히려 더 많은 요구로 돌아온 적은 없었나? 이런 사람들에게 선의를 계속 베푸는 건 결국 당신을 소진시킬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 당신의 선한 마음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사람에게만 나누는 게 더 현명하다.
- 프리드리히 니체 <위버멘쉬> 중
결국 시행착오를 겪은 후 스스로 판단하도록 지켜볼 수밖에 없다. 왜 처음부터 이야기해주지 않았냐는 원망을 들을 때도 있다. 잘못 이야기하면 이간질하는 자로 비칠 수도 있고, 그들끼린 아주 잘 어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섣부르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위 인용에서 말하듯 '모든 문제는 마음을 잘못된 사람에게 썼을 때 시작된다.' 소중한 사람과 보내기에도 시간은 한없이 부족하다. 기존의 만남의 방향이 올바르지 않았다면 <당신의 선한 마음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이 현명하다 말할 수 있다.
한 사람을 바르게 판단하려면, 주로 그의 일상적인 행위를 검사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살펴봐야만 하는 것이다.
- 몽테뉴 <수상록>
-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