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소담 출판사
' 인간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를 읽은 후 난 행복에 관한 고민에 빠졌다. 행복이 뇌에서 받는 단순한 전기적 자극이라면 머리에 전기 자극을 뇌에 전달하는 칩을 달고 살면 될까? 공상과학영화에 등장하는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가게 될까? 누군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물으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요'라는 답을 하던 나였다. 사람들을 만나서 묻기도 하고, 스스로도 행복에 관한 고민을 해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행복은 '단편적인 기억'의 형태라는 사실이었다.
혹시 '목표와 행복을 동일한 선상에 두고 살아가진 않을까?' 행복에 관한 고민을 계속하다 보니 이런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목표를 달성하면 행복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많은 사람이 목표를 달성했을 때 허무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 목표를 찾아야 하는 부담까지도 얻게 된다는 말도 있었다. 과정에서의 행복을 강조하던 나조차도 과연 과정이 행복했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고통을 인내한 경우가 더 많으니까.
1세 제곱센티미터의 양이면 열 가지 침울한 기분이 물러가요.
(p102)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는 소마라는 약이 등장한다. 소설 속에는 인간을 공장에서 생산한다. 인간 제조 공정에서 미리 계급을 나누고 제조(탄생) 후에도 세뇌의 과정을 거쳐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게 한다. 간혹 침울한 기분이 들면 소마를 먹으면 된다.
과거가 어떻든 앞으로가 어떻든지 간에 이것저것 따져봤자 골치만 아파져요.
소마 1그램이면 그런 걱정은 다 없어진다니까요.
(p171)
제조 공장이 아닌 인간에서 태어난 남자 주인공은 소마를 거부한다. 인간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공장에서 제조된 인간처럼 살지 않으려 한다. 이 대목에서는 인간은 '뇌에 세팅된 사항에 따라 느끼는 행복이 다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침울한 기분이 들 때 소마를 먹으면 된다고 세팅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행복은 다를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뇌가 받는 전기적 자극이라면 결국 같아지겠지만......
남자 주인공을 낳은 엄마는 공장에서 제조된 인간이다. 제조된 인간은 아이를 낳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이러한 생각은 여자가 죽을 때까지도 변하지 않는다. 야만인(공장에서 제조되지 않은 인간을 야만인이라 부른다)의 세계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아이를 낳는 남자 주인공의 엄마가 소마를 구할 수 없자 술을 마신 후 말한다.
1그램의 소마도 구할 길이 없답니다. 포페가 가끔 가져다주면 어쩌다 한 번씩 메스칼주를 마시기는 하지만요.
하지만 그걸 마시면 나중에 기분이 너무나 나빠져요. 메스칼주는 물론이고, 페요틀도 속을 뒤집히게 만드는 데가, 이튿날이면 훨씬 더 심한 수치심을 느끼게 해서 기분이 영 나빠지죠.
(p191)
소설에서는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이유가 '생존, 부양, 질병,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을 제거한 세계를 유토피아로 상정한다. 끝없이 행복을 추구하고, 더 나은 미래를 원하는 인간이 최종적으로 바라는 세상이 과연 그럴까?
강철이 없으면 자동차를 생산할 수가 없으며, 사회적인 불안정이 없으면 비극을 생산할 길이 없으니까요. 세계는 이제 안정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행복하고, 원하는 바를 얻으며, 얻지 못할 대상은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잘살고, 안전하고, 전혀 병을 앓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늙는다는 것과 욕정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즐겁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때문에 시달리지도 않고, 아내나 아이들이나 연인 따위의 강한 감정을 느낄 대상도 없고, 마땅히 따르도록 길이 든 방법 이외에는 사실상 다른 행동은 하나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리고 혹시 무엇이 잘못되는 경우에는 소마가 기다립니다. 그것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당신이 창밖에 던져버렸어요, 야만인 씨. 자유 말입니다!
(p223-334)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다. 억압과 자유, 불안과 안정,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인간. 그 안에서 행복이란 것을 찾아내기란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 과연 난 행복했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