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영화) GO (가네시로 가즈키)
물론 이 소설이나 영화를 연애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아니 연애 이야기다. 분명 남녀 간의 연애를 다루고 있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말하려 한다.
영화와 소설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먼저 소설은 텍스트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묘사나 대화를 통해서 독자에게 이야기한다. 텍스트는 공간이나 시간 또는 기술적인 제한이 없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표현 방법이 다양하다. 배우의 목소리, 눈빛, 제스처부터, 각종 음향효과와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시각과 청각을 동원할 수 있어서 관객에게 정보를 빠르게 전달시킬 수 있다. <GO>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분명히 있다. 영화 시작 지점에 있는 지하철역의 달리기 장면은 소설에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이용해서 지하철을 뒤로하고 달리는 모습을 담아서 보여준다. 긴장감과 스릴이 동시에 느껴지면서 영화는 격렬하게 시작한다. 음식점에서의 대화 역시 소설의 주제와 매우 연관성이 높지만, 영화에서는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넘어간다. 간단하게 미토콘드리아 DNA에 관해서 증조할머니의, 증조할머니의, 증조할머니의, 증조할머니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같은 DNA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아래의 대화처럼 국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뿌리는 국적에 얽매이지 않는다.”
-P101
“국적이라든가 민족을 근거로 차별하는 인간은 무지하고 나약하고 가엾은 인간이야. 그러니까 우리들이 많은 것을 알고 강해져서 그 인간들을 용서해주면 되는 거야. 하기야 뭐 나는 그런 경지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P102
인상적인 영화의 장면 중 하나는 주인공 스기하라가 정일의 죽음 이후 사쿠라이와 호텔로 가는 장면이다. 이동의 흐름을 뒤섞어 놓아 인물들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한다. 식당에 있다가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가는 단순한 동선이 아닌, 시간을 뒤섞어 몽환적인 심리를 표현한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GO>는 플라톤의 관념론과 이어진다. “당신은 꽃을 그릴 수 있습니까?” 꽃을 그리라고 했을 때 우리는 흔히 장미꽃, 튤립, 해바라기 혹은 백합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름 붙여진 것들이 꽃인가? 장미라는 꽃의 이름은 누가 붙여놓은 것인가? 영어로는 Rose이다. 전혀 다르게 부르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꽃이라는 것은 관념이기 때문에 우리는 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누구도 꽃을 그릴 수 없는 것이다. 소설과 영화에서는 말하는 것도 바로 명명된 것에 대한 속박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는 메시지가 엿보인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다음 문장은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장미라는 이름의 꽃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그 향기는 변하지 않아.”
존재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현상이 변할 뿐이다. 그 현상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작품에서 정일이라는 인물은 끊임없이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문제아 스기하라가 일본 고등학교에 진학한다고 해서, 선생에게 맞을 때 정일은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민족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재일 외국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단적인 말이다. 관념의 형태로 남아 실질적인 삶에 영향을 주는 국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정일이는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면서도 자신이 다니고 있는 민족 학교의 선생이 되려고 한다. 민족학교에서 만담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목표로 도전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정일은 스기하라처럼 싸움을 잘 못한다. 그래서 스기하라를 동경한다.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도, 마음이 통하면 되는 것이다. 작가와 감독은 정일과 스기하라의 만남을 통하여 소통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 본질을 이야기하더라도, 정일은 어이없을 정도로 무의미하게 죽음을 맞는다.
스기하라의 아버지는 기득권을 상징한다. 어른의 세계, 이미 힘을 가진 세대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 몸소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를 빼앗기고, 열려한 마르크스 신봉자였던 자신이 하와이 여행을 간다. 그리고, 다음 세대인 스기하라의 미래를 위해 국적도 바꾼다. 타락한 자본주의를 회상하듯 국적은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미래에게 짐이 되지 않는 방법으로 한국이라는 국적을 택한다. 이것이 아버지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아들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에서도 넓은 세계를 보라고 한다. 그리고 “네가 정해!”라고 말한다. 소설과 영화의 주제는 이렇게 자신의 의지로 세상을 살라고 이야기한다. 권투 선수인 아버지는 스기하라의 권투 스승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기하라는 아버지를 이길 수 없다. 스기하라의 엄마도 말한다. “넌 절대 아버지를 이길 수 없어.” 기존의 세력에 도전하는 젊은 혈기는 무참히 깨진다. 그것은 폭력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미련한 방법을 통해서 이기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니 단념하라. 그리고, '네가 정한 세상을 살아라.'라고 말한다.
1968년에 태어난 작가와 감독, 이들이 32세, 33세에 만든 작품이다. 젊은 작가와 감독이 시대를 향해서 말하고 싶은 내용은 관념의 벽에 갇히지 말자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선택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이다.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