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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세상

소설,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문열)

by 유병천

서울에서 시골의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는 한병태. 원하지 않아도 시골로 전근을 내려가는 아버지. 가족 구성원으로 함께 운명을 같이 해야 하는 공동체. 어린 한병태는 합리적인 사고가 통하는 서울이란 곳에서 엉뚱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시골로 전학을 간다. 자의가 없이 타의에 의해서 따라간 곳이다. 적응하지 못하는 한병태가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시골을 벗어나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환경변화에 대한 인간의 첫 반응은 회피이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지?’ 이런 생각이 지배적으로 들면서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울로 가자고 하는 병태에게 아버지는 약한 놈이라며 핀잔을 준다. 강하지 못해서 시골로 오게 된 아버지와 같은 모습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회피의 시도가 무산된 후 저항의 단계가 온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저항을 해보지만, 기존의 세력은 만만하지 않다. 아무도 저항하지 않는 절대 권력자에게 맞서는 일은 순탄치 않다. 다른 아이와의 싸움에서도, 자신의 편을 만들려는 노력에서도, 혼자서 강해지려고 하는 모든 방법을 비겁한 방법으로 방해한다.


다음 단계로 굴종이 찾아온다. 거대한 힘에 순응하여 기존의 질서에 따르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굴종은 달콤하다. 인간이 가진 정치적 본능에 관한 이야기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도 정치적 본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상황 수용소 안에서 피스톨을 중심으로 한 파괴적 집단이 등장한다. 인류는 눈이 먼 상황에서도 집단을 형성한다. 그러나 장님 세계에서는 애꾸가 왕이다. 결국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에 의해서 피스톨 집단은 해체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도 엄석대는 장님 세계의 피스톨을 가진 자와 같다. 결국 애꾸눈이 왕이 되는 것처럼, 새로 부임한 선생님은 엄석대의 세계를 붕괴시킨다. 옳지 않은 일을 권력에 의해서 감당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어린아이를 통해서 실감 나게 보여준다. 힘을 가진 사람이 주는 불합리를 견디고, 맞서 싸우는 것보다, 굴복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달콤하다. 그러나, 새로운 선생님이라는 변화와 부정 시험에 관한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무너지는 잘못된 권력의 모습은 의외로 약하다. 쟝 보드레르가 말한 가상의 세계에 살아가는지도 모르다. 영화는 원작에 충실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선입견이 가지는 말할 수 없는 폭력, 무책임한 어른들의 대충주의, 진실을 말하는 노력을 외면하는 모습, 비합리에 맞서는 합리적인 인간.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는가?


모사적 이미지가 현실을 뛰어넘는 시뮬라르크가 어쩌면 이 작품에서도 나타나는지 모른다. 그러나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닌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기존의 질서라는 것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이고, 그것을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다. 서울에서 온 선생님의 이야기는 무척 인상적이다.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뺏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또 불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어. 그런 너희들이 앞으로 어른이 되어서 만들 세상은 상상만 해도 끔찍해.

잘 못 된 것을 잘 못 되었다고, 말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힘 앞에서는 용기만으로 부족할 수 있다.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힘보다 더 큰 힘이 있어야 비로소 생겨나는 용기도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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