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영화) 인생 (위화)
<삼국지>, <초한지>, <손자병법> 등의 소설이나 <영웅문> 같은 무협지를 제외하고, 중국 작가의 소설을 읽은 것은 <인생>이 처음인 것 같다. 문학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위화라는 작가를 만날 수 있었을까. 푸구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인간의 운명과 역사를 담담히 보여준다. 먼저 한 인간의 운명을 새옹지마처럼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결국 자신의 가족의 죽음을 모두 지켜보게 된다. 소설에서 인상적인 내용은 배고픔과 싸우는 과정이다. 체제의 변화, 인간의 노력도 배고픔 앞에서는 무력화된다. 도박으로 모든 재산을 날리고, 처음으로 느낀 배고픔부터, 전쟁을 지나 살아가는 동안 이어지는 배고픔과의 투쟁은 처절하다. 우리나라의 조선 말기와 한국전쟁까지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혁명, 전쟁은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한다. 공공의 식당을 이용하기 때문에 솥을 가져가는 모습에서, 배급이 되지 않자 예전처럼 솥을 이용해서 밥을 먹으라는 장면은 당시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한다. 당의 명령에 복종하고, 열심히 일한 마을 대장도 추후 집권 세력이 바뀌면서 지위를 상실하고 고문을 당한다. 이는 소련의 레닌 시대와 스탈린 시대의 모습과도 유사하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나오는 이야기의 일부가 <인생>에서도 그려진다. 넓은 땅과 많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인간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등장시킨 춘성이라는 인물도 인상적이다. 소설과 영화에서는 조금 다르게 표현되었지만, 친구가 원수가 되기도 하고, 원수처럼 원망하던 사람이 삶의 희망을 잃었을 때, 자신들에게 빚진 목숨을 생각해서 살라고 이야기한다. 우연히 만난 춘성과 전우애를 쌓고, 춘성이 현장이 되어 돌아오고, 현장의 아내를 위해서 푸구이의 아들이 죽는다. 그리고 춘성도 결국 자살한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려고 하는 의지를 잃었을 때 죽는다. 푸구이라는 인물은 살아가려는 인간의 본능을 잘 실현하는 인물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래서 삶은 한 편의 비극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죽을 때는 순서가 없다. 푸구이는 사고와 병으로 가족을 잃는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소설 속 푸구이처럼 담담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자전이란 인물은 당대의 여성을 표현한 것 같다. 어머니로써, 아내로서, 국민으로서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순종하면서도 미련할 정도로 의지가 강한 여성. 푸구이의 삶에서 자전이 없으면 어땠을까? 인생의 진리를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자전의 대화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바가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느끼는 가족.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 역시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민공사와 문화 대혁명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영화와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지도자에 대한 우상화이다. 살아있는 절대자를 통해서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태도는 현대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주자파라고 하여 어린 사람들이 기존의 실력자들을 박해하는 모습은 계급을 타파하려는 공산주의 혁명에 반대되는 또 다른 계급의 존재를 설파한다.
작가의 해학이 돋보이는 부분은 영화와 소설 모두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가 되는 점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특히 영화에서 3일간 굶은 의사에게 만두를 사줘서 그로 인해서 딸이 죽음을 맞게 된다는 방식은 극단적인 설정이다. 지식이나 경험이 전무한 젊은 간호사들이 의사를 핍박하는 것에서부터 사고 발생 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은 체제의 엉성함이 낳은 비참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열심히 살아가고,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엉뚱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슬픈 현실을 견디고 살아가는 푸구이의 인생은 오늘을 견디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