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만과 편견(제인 오스틴)
결혼은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두 사람이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 인류의 생존에 관련해서도 남자와 여자의 결합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과거에는 문화나 환경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결혼이 있었다. 남자 한 명이 여러 명의 부인을 둔 경우도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혹은 오늘날에도 지구촌 어느 곳에는 이러한 문화가 있을 수 있다. <오만과 편견>은 남성 위주의 영국 결혼에 관한 상황을 보여준다. 소설 속 사회는 여성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딸만 있는 가정의 경우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에게 재산이 상속되었다. 이러한 문화에서 다섯 명의 딸을 가진 베넷가에서는 결혼은 가장 중요한 이슈이다.
한 부모 아래서 태어났더라도 다른 성격을 지닌 다섯 자매는 가치관도 다르고, 그에 따른 배우자를 고르는 방법도 다르다. 고른다는 표현이 당시 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시대 환경에서 소유권을 갖지 못한 여자에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질 리 없을 것이다. 평생을 살아온 집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고스란히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어 집에서 쫓겨나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엘리자베스 베넷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치관을 굽히지 않는다. 피아노, 그림 등 당시의 여자들이 해야 한다고 믿는 것들을 잘하지 않고, 책을 읽으면서 소양을 키워나간다. 당시의 다른 여자들에 비해서는 굉장히 진보적인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는 콜린스의 청혼을 거절하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남성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엄청난 재력가이며, 다소 거만한 태도의 다아시와는 첫 만남부터 어긋난다. 제목이 말하듯 오만은 편견을 낳고, 편견은 반대로 오만을 양산한다.
세상 사람들은 그 재산과 사회적인 지위에 아주 현혹되어 있습니다. 혹은 그 고압적인 태도에 눌려서 그가 보이고 싶은 만큼밖엔 보지 않는 거예요.
-제인 오스틴(오만과 편견) P97
백 명의 사람을 만나면 백 명의 내가 존재한다. 물리적으로는 하나의 육체이지만, 타인의 생각 속의 '나'란 존재는 백 명이 된다. 다아시가 오만하다고 판단하게 된 원인을 생각해보면, 다아시가 보여주고 싶은 만큼이 그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오해에서 시작된 인식을 바꾸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소통의 기회가 많지 않다면 더욱 어렵다. 보여주는 만큼 본다고 하지만, 사실 보여주는 것보다 적게 이해한다. 열을 보여 주었는데, 상대가 둘 만 이해한다면, 이해한 사람 입장에서는 열이 아닌 둘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결혼이라는 매우 중요한 이슈가 아니더라도 소통은 무척 중요한 문제이다.
베넷 부인은 모든 상황을 자신의 생각대로 해석한다. 타인의 시선이나 관점은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반대로 큰 딸인 제인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만의 소통 방식이 있다고 하지만, 공감을 배제한 상태의 소통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엘리자베스 베넷과 다아시와의 결정적인 오해로 작용하는 빙글리와 제인의 관계, 위크햄의 과거를 장문의 편지로 알린다.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소통의 도구로 편지를 선택했다. 편지는 텍스트 형태라서 감정을 배제한 상태에서 쓸 수 있고, 읽을 수도 있다. 편지를 외우다시피 읽은 엘리자베스 베넷은 자신의 편견을 인식하게 된다. 모든 변화가 자기 인식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천만 번 이야기해도 부족하지 않다. 엘리자베스 베넷과 다아시는 모두 자신에겐 문제가 없다는 생각에서 편견을 생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 인식 이후에는 편견의 생산자는 바로 본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자기 인식은 모든 것의 출발이다.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