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에 무엇을 할까?

만족은 결핍이 채워지는 곳에서 온다.

by 유강

그럼 어떤 안식년을 보내야, 내가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을까?


오늘에 이르기까지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우선순위 두었던 것은 경제적인 이득과 예측가능한 안정성이었다.


그 결과가 보어아웃(Bore-Out)이었으니, 우선순위를 바꾸어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내가 오랫동안 하고 싶었지만, 돈이 되지 않고, 용기가 나지 않아, 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서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되돌아보았다.


그렇게 기억을 되짚어 보니, 등이 따듯하고 배부른 상태일 때마다, 즉, 심심할 때마다 즐거움을 위해 기웃기웃했던 것들이 몇 개 키워드로 정리되었다.


패션, 글쓰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세상이 제대로 닿아있나 확인해 볼 수 있는 ‘인플루언서’.


첫 번째 키워드, 패션.


10대에는 당연히 이성친구에게 인기가 많은 외적으로 멋진 연예인을 동경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외모를 꾸미는 것에 관심이 갔다.


20대가 된 후에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배우고, 다이어트를 해서 살을 빼고, 동경했던 연예인 느낌을 내보고 싶어서 프로필을 찍어보고, 일상을 영화처럼 포장해서 SNS에 틈틈이 올렸다.


누군가가 나의 외모를 칭찬해 줄 때마다, 내 안의 빈 부분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때는 잠시나마 만족감이 차올랐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결핍을 채우고 싶다는 간절함 하나로 몰입했다.


“나는 괜찮은 사람, 멋진 사람”이라는 인정을 바랐다.


그 마음은 부정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 내 동력이다


그렇게 외모에 관심을 가지게 되니, 나를 더 멋지게 포장해 줄 패션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하지만 기성복 안에서 내 몸은 자주 어긋났다.


팔이 길어, 어깨에 맞춘 셔츠의 소매는 늘 짧았고, 허벅지가 두꺼워 다리가 들어가는 바지는 늘 허리가 남았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은 나를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했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 이후로는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면 한 치수를 크게 구매해서 수선한 후에 입곤 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핏은 수선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옷의 색깔은 방법이 없었다.


겨울에 입고 싶은 빨간색 코트, 가을에 입고 싶은 노란색 코트, 그리고 운동할 때 입을 형광색 후드 등등, 내 취향을 만족시켜 주는 색을 가진 옷은 구할 수 없었다.


색감과 실루엣 모두 “내가 원하는 것”과 “세상에 있는 것” 사이에 틈이 있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내가 원하는 핏과 색을 가진 옷을 직접 만들어 입어보고 싶었다.


머릿속의 멋진 내 모습과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를 직접 설계하고 싶었던 것이다.


두 번째 키워드, 글쓰기.


나는 보통 한 가지가 결론이 나지 않으면, 해결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머릿속에 맴도는 감정과 생각들을 정리해서 글로 써 내려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같은 생각이 맴돌아 다른 생각을 하기 힘들었다.


이런 성격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기를 쓰는 습관이 생겼다.


내 생각과 감정들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반복되는 생각이 줄어들고 때로는 결론이 나와 답답함이 해결되기도 했다.


그러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독서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아갔다.


그러나 여전히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았다.


내가 궁금한 것은, 나의 생각과 감정이 타인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된 이후부터 쭉 내가 써내려 간 글들을 공개해보고 싶은 마음 있었지만, 부끄럽기도 하고 돈이 되지도 않으니 일기장에만 적어놨다.


세 번째 키워드, 인플루언서.


이렇게 돌아보니, 내가 입은 옷, 내가 품은 생각을 표현하고 타인의 반응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줄곧 내 안에 있었다.


장인의 정신으로 나만 알고, 나만 만족하면 되는 사람도 분명 있을 테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일단 나를 만족하는 결과물이 있다면, 이것이 세상에서는 어떻게 보이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내보이는 사람을 ‘인플루언서’라고 한다.


만족은 결국 결핍이 제자리를 찾을 때 온다.


스스로를 괜찮다고 여길 근거, 내 몸에 정확히 맞는 형태, 흩어지는 생각을 붙잡는 문장, 그리고 세계와의 연결.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결핍은 만족이라는 이름으로 채워진다.


안식년은 그 만족을 위한 시간이다.


잃어버린 리듬을 회복하고, 현재에 몰입하는 감각을 다시 켜고, 결핍을 채워 만족이라는 보상을 얻기 위한.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오래 원했고 두려워 미뤄 둔 선택들로 나를 다시 확인하려 한다.


돈이 되느냐를 기준에서 잠시 벗어나, 배우고, 만들어 보고, 말하고, 내보내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리듬은 성과에서 오지 않고, 감각의 재가동에서 온다.


그리고 나는 삶의 감각은 실행에서 켜진다고 믿는다.


처음 시도 해봤던, 여행 그림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