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by 유강


권태는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았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루틴, 같은 말과 표정이 조금씩 쌓이며 삶의 감각을 둔하게 만들었다.


몸은 움직이는데 마음은 반응하지 않는 상태.


지쳐 쓰러진 것도 아닌데, 기쁨과 의욕이 묽게 퍼져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름이 보어아웃(Bore-Out)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처음엔 버텼다.


“이 시기만 지나면 다시 괜찮아지겠지.”


새로운 세미나를 찾아 듣고, 장비를 바꾸고, 작업 방식을 조금 손봤다.


그러나 변화는 외곽을 스쳤을 뿐 중심에 닿지 못했다.


문제는 스킬이 아니라 리듬이었다.


예측 가능한 하루가 나를 자동 모드에 묶어 두고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의도적으로 리듬을 깨기로.


안식년은 도망이 아니라 설계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익숙한 일상을 잠시 멈추고 ‘낯섦’을 투입해 내 감각을 다시 켜 보려는 시도.


불확실하지만 살아 있는 반응을 다시 느껴 보기 위한, 계획된 공백.


그렇다면 무엇으로 ‘낯섦’을 만들 것인가.


“내가 망설이며 하지 못한 선택들을 해보면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는 안전하고, 예측가능하며, 돈이 되는 선택만 해왔다.


그래서 안식년에는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쌓아 두었지만, 돈이 되지 않거나,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미뤄 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수익도 성과도 약속하지 않는 일,


경력이나 명함에 적을 만한 것이 아닌 일,


그러나 떠올리면 심장이 작게라도 뛰는 일.


그런 것들로 안식년을 그런 것들로 채우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결심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내적 동기를 회복하기 위해서.


보어아웃은 성과, 호기심보다 효율로 하루를 채우면서 시작된다.


결과만 쫒다 보니, 과정은 견뎌야 할 쓴 약일뿐이게 된다.


쓴 약도 한 두 번이지, 약발(?)이 떨어지면 쓴 맛만 남는다.


그렇기에 돈이 되지 않는 시도, 자신 없어 미뤘던 시도는 결과 대신 과정의 즐거움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성과표가 아닌 감각을 기준으로 하루를 돌아보고, ‘잘했다’보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를 우선순위로 두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둘째, 낯선 환경과 일은 자동 모드를 끊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삶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


낯선 환경에서는 익숙했던 방식이 통하지 않기에 몸과 머리가 동시에 깨어난다.


익숙함이 주는 안정 대신, 서투름이 주는 각성이 찾아온다.


나는 피곤해지지만, 그 피곤함은 권태의 무감각과는 다르다.


피곤함은 얼마든지 버텨보고 싶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는 하루를 살 수 있다면.


셋째, 루틴으로 굳어버린 내 정체성을 확장해 보기 위해서.


‘일하는 나’만으로 설명되던 삶에 다른 이름들을 붙여보려 한다.


어수선하고 덜렁대는 나,


서툴지만 진지한 취미인으로서의 나,


내일이 기다려지는 삶을 사는 나.


정체성이 확장될수록, 같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입체적으로 변한다.


그런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같은 일을 하더라도 같은 삶을 살진 않을 것이다.


물론 안식년을 가고자 하는 마음이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다.


“현실을 피하려고 예술가 놀이를 하는 건가?”


“쉴 거면 그냥 쉬지, 왜 거창하게 이름을 붙이나?”


하지만 이전의 경험들을 통해, 잠깐 일탈하는 것으로는 삶의 리듬이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휴식은 에너지를 채워 주지만, 방향은 바꿔 주지 않는다.


보어아웃을 끊기 위해서는 다른 각성, 다른 언어, 다른 행동이 필요했다.


낯섦을 의도적으로 초대하는 시간, 그래서 안식년은 필요하다.


나의 안식년은 놀이터가 아니라 작업실이 될 것이다.


성과표 대신 실험 노트가 쌓이고, 계획표 대신 호기심 목록이 업데이트될 것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드는 작은 실패들과, 아무에게도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작은 성취들이 하루하루를 물들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잊어버렸던 설렘, 두려움, 걱정, 성취감 등의 감각들을 다시 배우고 싶다.


그럼 내가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미뤘던 것들, 좋아했지만 감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은 어떤 것일까?


쳇바퀴도 리듬을 가지고 굴려야 오래 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