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즐거움을 포기하기엔 우리는 너무 오래 산다.
평균 수명 100세가 익숙해진 시대.
30대 중반의 공허함 앞에서도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지겠지 “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런데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앞으로 남은 시간이 60년쯤 된다.
통장 잔고는 조금씩 불어나고, 일은 점점 능숙해진다.
노하우와 지식은 하루하루 쌓여 가는 데, 가슴은 서서히 비워지고 있었다.
“이렇게 나이 드는 게 인생인가?”
그 물음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공허함을 이유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직업에 도전해 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곤란하다.
무엇보다 지금 하는 일을 나는 꽤 좋아한다.
문제는 일이 아니라 리듬이었다.
한쪽으로 쏠린 삶 무게를 바로잡아 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직장 근처의 유명한 디저트 카페 사장님이 가게를 접고 남편의 안식년(연구년)에 맞춰 1년 간 이탈리아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실패가 아니라 선택으로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깨달았다.
‘나에게는 안식년이 필요했구나.’
‘안식년’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으로 들어오자,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매일 같이 들었다.
안식년은 단순한 ‘쉼’이 아니다.
다음 구간을 위한 재충전, 방향 재정렬, 숨 고르기다.
‘쉬어도 되나?’라는 죄책감 대신 ‘다음 레이스를 준비한다’는 설렘으로 채우는 시간이다.
땅이 휴경기에 힘을 되찾듯, 마음도 의도된 공백에서 탄력을 회복한다.
오래 버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나아가기 위해 멈춘다.
이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키면서(?) 집에 돌아와 내년 달력 8월에 원을 그렸다.
그 시점은 임대차 계약이 끝나는 때다.
익숙한 풍경을 뒤로하고 낯선 공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약속의 표시다.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비워 둘 시간’을 먼저 확보하는 일, 즉 여백을 계획하는 결심 그 자체다.
땅과 사람을 주기적으로 쉬게 하던 생각에서, 대학은 일정 기간 교육을 내려놓고 연구와 재배열에 집중하도록 안식년(연구년)을 만들었다.
핵심은 생산을 멈추는 게 아니라 방향을 바로잡는 데 있다.
속도를 낮춰야 고개를 들고 방향을 살필 수 있다.
남은 60년을 살아갈 건강한 마음을 위해, 다음 호흡을 가능케 할 숨칸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년 8월의 안식년은 그 첫 번째 숨칸이 될 것이다.
지금의 내 직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직업의 반대편에서 균형을 회복하려 한다.
멀리 가려면 리듬이 필요하고, 리듬은 여백에서 나온다.
그래서 나는 안식년을 갖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