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을 어디서 보낼까?

편안함은 내가 누구였는지 말하고, 낯섦은 내가 누가 될지 묻는다.

by 유강

최신 유행의 드레스를 걸친 마네킹이 쇼윈도 안에서 미소 짓듯

300년의 시간을 버텨온 회색 건물들이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서 있다. 그 발치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낯선 냄새가 골목을 가른다. 하지만 시선을 들면 전혀 다른 풍경이 기다린다. 최신 유행의 드레스를 걸친 마네킹이 쇼윈도 안에서 미소 짓듯 서 있고, 지나가던 행인들의 발걸음은 잠시 멈춘다.

벽돌 위에 무심히 그려진 그라피티는 오래된 역사의 균열을 덮으려는 듯 색을 퍼뜨리고, 바로 근처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햇살을 받아 찬란한 무늬를 바닥에 흩뿌린다.

해야 하는 일들로만 쌓은 10년이 나를 안전하게 지키는 대신, 내 안쪽을 비워냈다.


해야만 하는 것들로 삶을 채우니, 삶의 동기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끝없는 권태로움과 지루함만 남았다.


그래서 조금 긴 시간을 가지고, 오래전부터 원했지만, 돈이 되지 않고, 두려워 망설인 일들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100세 시대를 건강하게 완주하려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번갈아 디딜 발판이 필요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찾기 위해, 30여 년 동안 끊임없이 맴돌았던 것을 되돌아보니 패션, 글쓰기, 그리고 인플루언서라는 키워드로 함축되었다.


이제 남은 건 ‘어디서’ 보낼지를 골라야 했다.


일단은 해외로 나갈 생각이다.


내 모든 것을 낯설게 만들어 줄 곳.


모든 게 낯설어진 그곳에서, 원하는 것 3가지만 마음속에 담은 채 살아보고 싶었다.


패션을 배울 수 있고, 내가 만든 옷을 입고 뽐낼 수 있으며, 글쓰기에도 적합하지만 낯선 장소.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른 장소는 프랑스 ‘파리’였다.


내 마음속에서 '패션'이라는 단어는 늘 '파리'와 맞닿아 있었다.


파리에 여행을 갔었을 때 느꼈던 것은 모순의 묘한 쾌감이었다.


300년의 시간을 버텨온 회색 건물들이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서 있고, 그 건물 1층에는 최신 유행의 옷을 걸친 마네킹이 도도하게 자세를 잡고 지나가는 행인을 유혹한다.


골목 사이 사이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빵과 향수 냄새가 뒤섞여 다가온다.


벽돌 위에 무심히 그려진 그라피티는 오래된 역사의 균열을 덮으려는 듯 색을 퍼뜨리고, 바로 근처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햇살을 받아 찬란한 무늬를 바닥에 흩뿌린다.


화려한 거리와 세계 곳곳에서 몰리는 설렘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나란히 존재하는 풍경이 내 허영심을 솔직하게 자극했다.


‘이곳이라면 실패조차 낭만이 될 수 있겠구나.’


처음부터 새로 짓고 싶은 욕망과, 그 과정을 멋스럽게 포장하고 싶은 욕망.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켜 줄 무대였다.


기초 하나 없이 파리에 가서 옷을 만들어 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패션 스쿨을 알아보았다.


내가 원하는 옷을 제대로 만들어보는 경험을 위해서는 정규과정에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찾아보니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밟으려면 적어도 2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고민을 조금 더 하다가, 학위까지 따오는 2년 코스를 밟기로 결심했다.


안식년이 끝나면 최소 5년은 멈추기 어려울 거라는 계산이 들었기 때문이다.


큰 용기를 내서 멈춘 김에 일 년 더 제대로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안식년의 기간을 2년으로 정했다.


문화의 도시 파리에서 패션을 배우고, 그 낯섦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을 글로 써서 풀어내고, 그 과정과 결과를 공유해 인플루언서가 된다.


물론 경제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익의 직선은 언젠가 곡선으로 꺾인다.


기술과 손맛, 언어와 시선이 쌓이면 곡선은 다시 상승한다.


내가 믿는 것은 빠른 성취가 아니라 리듬의 회복이다.


리듬이 돌아오면 집중이 가능해지고, 집중이 쌓이면 깊어진다.


깊어진 삶에는 명성과 돈이 흘러들어온다고 믿는다.


나에게 안식년은 연구소이다.


낯선 도시에서 스스로의 속도를 다시 맞추고, 하고 싶은 일로 하루를 채운 다음, 해야 하는 일과 균형을 새로 설계하는 실험을 해보는.


실패하면 어떠랴.


파리에서는 실패조차 스타일이 될 테니까.


중요한 것은 다시 반응하는 몸과 마음, 그리고 걷고 싶은 방향을 아는 나다.


그래서 나는 파리로 간다.


돌아올 때 내 손에는 학위와 몇 벌의 옷, 수첩 가득한 문장들, 그리고 세상과 연결된 작은 관객들이 남아 있기를.


그 정도면 충분하다.


뭔가 즐거운 안식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