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얼마입니까?

경계 밖에서 자아는 성장한다.

by 유강

파리에서 패션을 배우고 그 과정과 결과물을 글과 콘텐츠에 담아 인플루언서가 된다.


계획은 그럴듯했다.


이제 그럴듯한 계획에 얼마가 드는지 계산해 볼 차례였다.


선선한 저녁 바람에 머리를 식히고 싶어, 창문을 반쯤 열어 두고 책상 앞에 앉았다.


모니터 속에는 ‘파리 2년 유학 예산표’라고 적힌 창이 띄워져 있다.


파리라는 도시에 처음으로 마음을 빼앗긴 건 스물셋, 대학생이던 시절의 일이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아름다운 그리움으로 가득한 기억만이 남았다.


그리운 것은 파리가 아니라 그때의 나겠지만, 내 마음은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저 그리울 뿐이다.


회상을 뒤로하고 모니터 속의 현실과 마주했다.


가장 눈에 들어온 건 등록금 항목이었다.


학교 이름은 셀 안에서 이니셜로만 남겨 두었다.


환율에 따라 요동치는 가격으로 인해서, 구체적인 숫자 대신 ‘약 삼천만 원 ’이라는 메모 달아 놨다.


그 아래에는 재료비와 실습비가 붙어 있었고, 합계 옆엔 ‘약 천만 원’ ’이라고 적혀 있었다.


바로 옆 칸, 집세 셀은 노랗게 반짝였다.


파리 원룸은 환율에 따라 오르내리지만 ‘백만 아래로는 어렵다’가 결론.


모니터 속에서 0이 한 칸씩 늘어났다.


하지만 숫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왕복 항공료, 보험료, 비자 비용, 교재비, 소소한 여가생활과 교통비까지 더하면 최소한의 비용을 잡더라도 억 단위의 돈이 필요했다.


뒤통수가 저릿했다.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더 벌고 더 아끼면 될까?’


이리저리 셈을 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리던 찰나에, 스무 살 초반의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도 파리 여행은 비싼 꿈이었다.


그래도 떠났고, 즐거웠다.


“즐거웠지.”


‘즐거웠지’라는 단어가 내 마음을 일깨웠다.


계산기로 모두 판단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이 길을 걷지 않았을 것이다.


계산으로 계산되지 않는 무언가를 찾고 싶어서 택한 안식년 아니던가.


돈은 현실이었다.


꿈을 이루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현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숫자 이상의 의미였다.


파리에서의 유학이 단지 비용만 드는 게 아니었다.


그 2년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될지도 몰랐다.


어떤 숫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가치가 담긴 선택이었다.


다시 화면 앞으로 돌아와 숫자를 차분히 정리했다.


구체적인 액수가 눈앞에 뜨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최소한의 비용 그리고 거기에 작은 여유 한 칸.


구체적인 금액이 눈앞에 뜨자,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얼마나 들지 대략적으로만 짚고 넘어가도, 내가 앞으로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킬지 판단할 수 있었다.


숫자는 구체적이지만 꿈이라는 단어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꿈을 실현할 방법은 언제나 구체적인 현실 속에 숨어 있다.

안식년은 ‘쉬는 시간’이라기보다 ‘방향 감각을 되찾는 시간’이다.


구체적인 현실 위에 불확실한 꿈을 얹는다.


둘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준다.


숫자가 계단을 놓아주고, 꿈이 그 계단을 오르게 만든다.


필요한 만큼은 벌고, 불필요한 건 덜고, 남은 에너지로 배우고 만들고 쓰고 보여주자.


숫자는 내가 가려는 길을 막는 장벽이 아니라, 내가 딛고 올라야 할 단단한 계단이었다.


그리고 계단이 많을수록, 그 과정에서 이야기 소재가 끊이지 않을 테니, 오히려 좋다.


현실은 딛고 올라가야 할 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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