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싶다면, 아름다운 바다를 보여 주어라
아침 햇살이 얇은 커튼 사이로 스며든다.
알림이 울리기 5분 전, 기분 좋게 눈이 떠졌다.
창문을 열자 오래된 건물 사이로 바람이 흘러들고, 갓 구운 고소한 빵 냄새가 들어온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파리의 아침 공기가 유난히 달콤하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어제 까지 밤늦도록 바느질을 하며 완성한 옷들을 입고, 처음으로 룩북 촬영을 하는 날이니까.
거울 앞에 선다.
몸에 꼭 맞는 재단, 내가 고른 색, 그리고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나만의 디테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이 내 어깨 위에 얹힌 순간, 그간 느껴온 모든 고생과 감정들이 단숨에 씻겨 내려간다.
오늘의 나는 내 삶 속에서 가장 멋있는 '나'다.
골목을 지나 센 강 다리 위에 서자, 친구가 카메라를 든다.
"Regarde ici, lève un peu le menton… parfait! (여기 봐, 턱을 조금만 들어… 완벽해!) ”
셔터 소리가 연속으로 터진다.
“Arrête… reste comme ça… magnifique ! (멈춰… 그 자세 그대로… 멋지다!)”
진지하지만 밝은 표정으로 나에게 큐잉과 칭찬을 번갈아가며 쏟아내는 친구의 말에 나는 점점 고무되어 더 과감하고 도도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모습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힐끔 쳐다본다.
패션잡지 속 화보처럼, 파리라는 배경이 내 옷을, 그리고 나를 더 돋보이게 한다.
순간은 짧지만, 사진 속에는 영원히 남는다.
나는 브이로그를 켜고 웃으며 속삭인다.
“여러분, 드디어 오늘 첫 룩북 촬영을 하러 나왔어요! 너무 긴장되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다시 입어보고 촬영하니 뿌듯하네요.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응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패션 스쿨의 일상과 꿈을 담은 내 채널이 알고리즘을 타고,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멋’을 인정해 주며, 나의 옷과 한정판 룩북을 사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렇게 어느덧 실제 수익이 나기 시작한다.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내가 가진 감각과 시도가 시장의 언어로도 통했다는 증명이다.
얼마 뒤, 나에게 초대장이 도착한다.
화려한 금박이 새겨진 봉투.
꼭 가보고 싶었던 패션쇼의 초청장이다.
나는 떨리는 손끝으로 봉투를 열고, 거울 앞에 다시 선다.
초대장을 보낸 브랜드의 옷을 골라 입고 포토존으로 향한다.
걸음이 멈춘 순간,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로 눈이 부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위축되지 않는다.
나는 관객이자 동시에 무대의 일부다.
쇼가 끝나고 이어지는 애프터 파티.
적당히 신나는 비트 속에서, 스크린으로만 보던 유명인사들이 눈앞에 실제 한다.
나는 긴장된 미소로 샴페인 잔을 든다.
우연히 마주친 디자이너가 나를 보며 눈웃음을 건네고 인사를 한다.
"Bonsoir. I think I’ve seen you earlier at the show, right?(좋은 저녁이에요. 아까 쇼에서 뵌 것 같은데, 맞죠?)”
그 인사에 조금 용기를 얻어 대답해 본다.
“Yes, it was such an amazing collection. (네, 정말 멋진 컬렉션이었어요.)”
그렇게 긴장이 풀리며, 다양한 사람들과 스몰토크를 이어나간다.
깊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내가 하는 말이 그들에게 닿는 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마지막 상상.
어쩌면, 만에 하나 기회가 닿는다면, 나는 모델로 런웨이에 설지도 모른다.
화려한 조명이 눈부신 무대 끝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히는 순간.
심장은 미친 듯이 뛰지만, 발걸음은 단단하다.
그 순간, 나는 오롯이 현재에 산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만 남아있다.
"미치도록 즐겁다"
런웨이가 끝난 후, 늦은 밤 메이크업이 채 지워지지 않은 얼굴로 집에 도착한다.
창문 밖에 보이는 파리의 밤하늘은 여전히 모순으로 가득하다.
화려하면서도 지저분하고, 낯설면서도 따뜻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분명히 반짝이고 있다.
그리고 내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