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머클래스 첫날

필요한 건 '완벽'이 아닌, 처음의 불완전함을 견디며 나아가는 용기였다.

by 유강
차곡차곡 쌓아둔 준비물

썸머 클래스 준비물 목록을 엑셀로 정리해 보니 30개가 넘었다.


이름 중에는 아는 것도 있고 처음 듣는 것도 있었다.


직접 살 시간은 없어 모두 온라인으로 주문했고, 며칠 사이 집 앞엔 소포가 가득 쌓였다.


베란다에 차곡차곡 올려두었다가 출발 하루 전, 하나씩 뜯어 큰 가방에 정리했다.


짐을 싸고 난 뒤에,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두근거림과 불안이 교차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었다.


저 가방 끈 결국에 끊어져서 두 손으로 안고 다닌...


썸머클래스 첫날, 30분 일찍 도착했다.


교실 앞에는 2주 동안 나뉘는 반의 명단이 붙어 있었다.


나는 B반.


내 이름 주변엔 처음 보는 이름들이 빼곡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이름들.


새삼 이름 뒤에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가장 먼저 도착했기에, 선생님이 잘 보이는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수업을 기다렸다.


10분쯤 지나자 빈자리가 하나둘 채워졌다.


첫 수업은 ‘패턴 디자인’으로 시작했다.


첫 주에는 스커트를 만들고, 두 번째 주에는 셔츠를 만들어 완성시키는 게 목표라고 하셨다.


패턴디자인이 무엇인지 설명을 들어보니, ‘종이접기’가 떠올랐다.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강아지 종이접기 도면처럼, 어디를 자르고 접고 붙이라고 표시된 지도를 따라가면 완성에 다다르는 방식.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천 위에 그 종이접기 지도를 옮기는 일이었다.


다트를 이용해 주름을 만들고, 걷기 편하도록 뒤트임을 내고, 겹치는 선이 어색하지 않게 방향을 조정하고, 힙 라인을 생각해 뒤판을 조금 더 키우는 계산들.


글로 쓰면 간단해 보이지만….


“다트 점을 허리선 기준으로 3cm 이동해 다시 찍어주세요. 제도 지를 반으로 접어 시접선 방향으로 다트를 접고, 룰렛으로 표시해 볼게요.”


설명이 들리긴 하는 데, 이해는 1도 안 됐다.


선을 다 못 그은 채 종이를 접다 다시 펴고, 표시를 놓쳐 되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괜히 내 탓에 진도가 늦어질까 눈치가 보여 쉽게 질문도 못 했다.


‘ 허허허….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무엇인가를 처음 배울 때 당연히 뒤따르는 어색함, 생각대로 되지 않음, 뒤처짐에 대한 초조함이 합쳐진 스트레스에 심장이 뛰고 머리가 지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스트레스의 끝에는 작은 해방감이 있었다.


지도를 따라 한 단계를 통과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조각 하나가 맞춰지는 듯한 순간.


비록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었지만, 조금씩 규칙이 눈앞에 선명해졌다.


그때 느낀 건 두려움이 아니라, 자유였다.


그래도 여전히 질문을 하려다 주춤하는 순간이 있었다.


이것도 이해 못 한 내가 우스워 보일까 봐, 멍청해 보일까 봐, 재능 없다고 단정 지어질까 봐.


그러던 중, 옆에 있던 한 학생이 한참을 머뭇머뭇하다가 나에게 물어봤다.


“저…. 이거 어떻게 하셨어요?”


무엇을 물어보나 봤더니, 나도 몰라서 방금 물어보고 온 것이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처음이구나.’


혼자 뒤처지고 있다고 느낄 때, 사실은 모두가 같은 지점에서 같은 두려움을 겪고 있었다.


처음이라는 무게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이 경험은 배움 뿐 아니라 삶에도 닿아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완벽하게 준비된 뒤에야 시작해야 한다’고 믿었지만, 정작 시작하고 보니 완벽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작이란 늘 어설프고, 배움은 늘 시행착오 속에 있었다.


그래도 주저하지 않고 부딪히면, 조금씩 규칙이 보이고, 두려움은 자유로 바뀐다.


결국 중요한 건, 완벽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처음의 불완전함을 견디며 나아가는 용기였다.

첫 날 수업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