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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 뜨러 가는 산

가좌동, 2016

by 유광식

유년의 장소를 멀리 팽개쳐두더라도 이 장소는 여태 뾰족하다.

애당초 매끈한 모양이었을 코딱지 아닌 딱지는

태풍에 삐치기라도 했는지 허리가 꺾여 뜯겨 나갔다.

모난 성정을 폭발시키는 땅 밑 불의 산맥을 건드린 듯

벌건 자국이 군데군데 튀어 붙었다.


내가 산일 수는 없으니 대신 내 앞에 굴러온 것들이 태산처럼 무겁게 짓누를 일이다.

무척이나 용감하게 무모하게 애정 있게 맞서 보아도 보려 해도

진정되지 않는 용기만 번져 흰머리 모둠으로 밝아진다.

산은 자라는 것도 같지만 자꾸만 주변에 포획되어 작아진다.

이 도시는 나에게 한 편의 시가 되어 주길 주저하고 있는 것도 같다.

시라고 부르짖어도 하얀 촉수만 내민다.


산이 자라서 내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나는 그저 메아리 없는 입질의 그림자를 그리는 지도판의 용역일 따름이다. (무보수는 아니겠지)

약수 한 모금에 여름을 축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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